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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어 수업에서 삶을 만나다

김현규( icomn@icomn.net) 2020.11.0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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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성분에는 주성분과 부속성분, 독립성분이 있다. 주성분은 문장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성분으로 주어, 서술어, 목적어, 보어가 있다. 그중 서술어는 핵심적인 문장 성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장에서 서술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꼭 필요로 하는 문장 성분의 개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서술어는 주어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어떤 서술어는 목적어나 보어가 꼭 필요하다. 따라서 주성분은 네 개지만 서술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요해 보이는 것 중에서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보통은 급한 걸 우선 순위에 넣고 바쁘게 살지만 급하더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고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도 얼마든지 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중요해 보여서 갈피를 잡지 못하면 어느새 ‘급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하느라 늘 시간에 쫓기는 일도 생긴다. 그리고 욕심이 끼어들면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빠져 삶을 낭비하기도 한다.

같은 주성분이더라도 목적어, 보어보다 주어, 서술어가 더 중요하고 서술어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서술어’는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내 삶의 ‘서술어’로 삼아야 할까. 오늘 여러분이 배운 내용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중요하다. 하지만 인생은 시험보다 더 중요하다. 축구 좋아하는 사람은 축구에서 인생을 본다. 국어 가르치는 나는 문법에서 그걸 보고 여러분에게 말했다. 사실 세상 모든 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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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설이나 시, 수필을 읽거나 연극,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철학한다. 우리가 수업 시간에 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사실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몸에 좋지만 맛이 너무 써서 먹기 힘든 약에 달콤한 설탕옷을 입힌 당의정처럼 문학은 감동과 재미를 입힌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재밌게 읽은 소설에 철학이 있다니까 뭔소린가 싶을 것이다. 철학은 인간이나 세계에 대한 지혜나 원리를 탐구하는 행위이고 학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사건 속에서 갈등하고 풀어가는 과정을 보며 우리는 등장 인물에게 자기 자신을 대입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어떤 심정일까?

그럼으로써 간접적으로 소설 속 사건과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소설은 아주 오래된 가상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이 벌이는 수많은 사건과 갈등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니 문학을 읽는다는 건 낯선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여러 일을 겪는다. 옛말에 경험만한 스승이 없다고 하니 문학을 읽는 동안 어느새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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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수업을 열심히 들어서 더 많은 지식을 외우고 수행평가를 잘 봐서 높은 점수를 얻고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들어갈 문장 몇 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중요하다. 아마 지금 당장은 그게 제일 급할 거다. 진학은 현실이니까. 하지만 너희들이 수업에서 지식을 배우고 더 나아가 삶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한 수업에서 배운 지식과 그걸 배우는 동안 터득한 지혜와 통찰이 너희가 살면서 문득 만나게 될 어둠밤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길 바란다.book-knowledge-development-reading-training-library-culture-classic-open-boo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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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 오늘도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지고 볶으며 가르치고 또 배우며 사는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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