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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징계 이뤄져야

[미투 칼럼] 징계 없이 사직서 받아 준 전주시청, ‘가해자의 셀프 처벌’ 조력한 것

박지선 (전주 시민)( jbchamsori@gmail.com) 2018.04.04 16:26

지난 3월 6일 연극배우 A씨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2년에 있었던 성폭력 사건을 폭로하였다. A씨가 폭로한 성폭력의 가해자는 전주시립예술단의 시립극단원이자 ‘문화영토 판’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백모씨다. 백 대표는 3월 6일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열자마자 당일 시립예술단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전주시청은 이틀 후인 8일에 사직 처리하였다. 또 시청에서 보조하여 가해자가 대표로 있는 ‘문화영토 판’에서 진행하는 사업을 중지 시켰다. 성폭행이 중대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관련 기사 - 전북 연극인 미투, "자책 아닌 책임을 묻겠다" >

전주시청은 왜 사직서를 접수하고 이틀 만에 처리하였는가? 피해자의 기자회견이 있었던 당일 완산경찰서에 사건이 신고, 접수 되었고 조사 중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주시청은 이 사건이 언제 마무리 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직처리를 늦추거나 하지 않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주시청의 면피용 변명이다. ‘전주시립예술단 설치 및 운영 조례’ 14조 5항에 명시되어 있는 ‘예술인의 품위를 손상’에 해당되어 징계 의결을 요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사직 처리가 진행된 것은 전주시청이 처벌의 의지가 전혀 없었고 가해자의 신변 정리를 도와준 것과 다름없다.

이에 대해 전주시청은 이렇게 설명한다. ‘전주시립예술단 설치 및 운영 조례’에 의하면 ‘예술단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징계는 해임으로 가해자가 받게 될 퇴직연금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처리가 늦어질수록 임금만 발생하기 때문에 사직 처리했다‘는 의견이다. 연금 수령 여부만 따져서 전주 시민의 이익을 운운하는 입장은 전주시청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전주시청의 변명이 징계를 하지 않은 이유가 될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아무런 징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주시청이 말하는 전주시민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상황에서 어떤 이익을 취한 것인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일상적인 사직처리는 어떻게 하면 쉽고 빠른 방법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할 것인가만 고려한 결정이다. 마치 가해자와 전주시청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한 이러한 결정은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이며 이와 같은 범죄가 계속 양산되는 사례를 만든다. 징계 처리가 전주시청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판단은 매우 잘못되었으며 인권도시를 말하는 지방자치단체로서의 자격이 없다. 

가해자의 ‘셀프처벌’이 과연 처벌인가. 스스로 사직한 것은 처벌이 아니다. 처벌이라 함은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도 아니지만 가해자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것도 아니다. 한 사회에 범죄가 발생하였을 때 구성원들에 의해 벌이 내려지는 것은 범죄 재발을 막는데 가장 기본이 된다. 물론 징계 수준은 최고일 수 없지만 섬범죄의 경우 그 최소한의 처벌마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전주시는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가해자의 입장에 섰다. 처벌의 본질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개선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회의 구성원이 나서는 것이고 실질적으로 가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전주시는 그러한 책임을 방기하였다. 잘못된 결정임을 인정하고 사직 처리를 철회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안다. 폭로 후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이러한 조직적인 은폐와 2차 가해이다. 폭로전에는 나의 잘못이 아닌가 하는 자책으로 괴로웠지만 폭로 후에도 여전히 일상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가해자를 보고 다시 한 번 좌절한다.

또한 이런 성범죄의 패턴 중에 하나는 한 명의 가해자로 인한 피해자가 복수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피해자들은 움츠려 들 수밖에 없다. 시립극단 내에 이런 가해자가 있었다는 것도 문제지만 전주시청이 일상적 사직처리를 한 것은 앞으로도 성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전주시청은 이 사건이 중대범죄임을 잊지 말고 가해자와 이익을 함께하는 공범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전주시청이 형식적으로 인권센터를 만든다고 저절로 인권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전주시민은 가해자를 위한 인권도시는 필요 없다.

 

참소리는 앞으로 지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미투 칼럼을 지속적으로 연재합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성폭력 근절을 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시민은 언제든 jbchamsori@gmail.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세요. 참소리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보다 많이 소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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