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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뉴스 문정현 신부 “헌정공연? 쑥스럽구만”

김용욱( newscham@newscham.net) 2010.10.27 14:08

▲행사포스터

 

유신시절부터 군사독재시절, 그리고 지금의 신자유주의 시대까지. 섬뜩하고 엄혹했던 사회를 거쳐 경쟁과 파괴의 시대로 오는 동안 많은 사람이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싸웠으며, 또란 파괴를 막기 위해 싸웠다. 그 시간동안 어떤 이는 포기하기도 했으며, 어떤 이는 변질하기도 했다. 그만큼 ‘지킨다는 것’이란 싸움을 하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문정현 신부의 ‘헌정공연’은 그리 의아한 일이 아니었다. 인권재단 사람이 ‘가을의 신부, 길위의 신부’라는 타이틀로 문정현 신부 헌정공연을 한다고 나섰을 때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할 때가 됐다’라는 인식이 더 컸을 테다. 70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길 위에서 살아온 문정현 신부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다.

헌정공연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문정현 신부를 취재하러 가기까지는 많은 각오가 필요했다. 이미 수습시절, 4대강 단식을 진행하던 문 신부의 인터뷰를 시도했다가 ‘무서운 신부님’이라고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번 인터뷰 역시 구구절절한 긴 말은 듣지 못했다.

“나는 잘 몰라. 그리고 말 그대로 헌정공연인데, 내가 어떻게 내입으로 사람들한테 와서 구경하라 그래?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해줄 말이 없네”

손에서 현판 작업을 놓지 않은 채 문 신부가 멋쩍게 웃었다. 인터뷰 내내 조각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신부님은 목판에 성경 글씨를 새겨 넣고 있었다. 어떤 작업이냐 물으니 ‘기도’라고 답했다.

“내가 명동성당에 8월 10일에 들어왔어. 들어올 때 정말 절망적인 심정으로 들어왔지. 4대강? 저들은 절대 멈추지 않아. 앞으로도 우리가 어떤 짓을 해도 멈추지 않을 거야. 아무리 싸워도 저들은 사업을 밀어붙이잖아.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니까 이제 자기 기도로 들어가게 되더라고. 그래서 명동성당에 자리 잡고 앉아서 매일 기도를 드리는거야.”

문 신부는 용산 철거민들과의 철거 투쟁이 끝난 직후, 4대강 저지 투쟁에 뛰어들었다. 지난 5월 17일부터 명동성당에서 ‘4개강사업 중단 촉구 전국사제단식기도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천주교를 비롯한 기독교, 불교 등 종교 단체들의 단식과 기도회가 이어지고 범국민 집회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정부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대교구 교구청과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의 4대강 사업 반대 결정을 외면하고 있다. 문 신부가 “지금의 명동성당은 세상과 벽을 쌓고 있다”면서 “서울대교구 교구청, 그리고 명동성당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행태는 바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영향이라고 믿는다”는 비판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사제단의 전종훈 신부는 서울대교구의 ‘징계성 인사’로 사제인사발령에서 제외돼, 3년째 안식년 상태에 있다. 때문에 문 신부는 결국 가장 간절한 ‘기도’를 택했다.

▲[사진=참세상]

 

 

햇빛이 내리쬐는 명동성당에서, 문 신부는 현판 조각을 멈추지 않았다. 명동성당의 방문객들이 문 신부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기도를 해도 햇빛이 내리쬐는 곳을 골라 앉아 기도를 드리는 문 신부를 보면서 ‘길 위의 신부’라는 별명이 떠올랐다. 이번 공연 역시 ‘가을의 신부, 길 위의 신부’라는 타이틀이었다.

“별명? 좋지. 다르게 불리고 싶은 별명도 없고. 근데 이번 공연에서 나한테 토크쇼를 하라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말야. 준비 해 놓은 것도 없고. 참 걱정이네.”

총 3일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공연에서 첫 번째 마당은 ‘토크쇼’로 이뤄져 있다. 이야기 손님으로 공선옥, 노순택 작가가 출연해 문 신부와 함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형식이다. 문 신부는 준비한 이야기가 없다지만, 문 신부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꼬박 일주일이 모자랄 지경이다.

 

▲[사진=참세상]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 된 이후, 문 신부는 인권과 민주회복을 위해 뛰어들었다. 인혁당 사건을 비롯해 미군기지 반대 운동, 새만금 반대 운동, 파병 반대 운동, 평택 대추리 투쟁, 용산 투쟁 등 말 그대로 한 평생을 길 위에서 살았다. 85년부터는 거리의 지적장애 아이들을 모아 ‘작은 자매의 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때문에 인권재단 사람에서도 이번 공연의 취지에 대해 ‘우리 사회에 억압받고 소외된 자들의 정의와 인권을 위해 사제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문정현 신부에게 위로와 존경을 드리는 자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이번 공연을 통해 신부님이 살아오신 인생이 인권활동가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하고, 또한 인권 운동에 모든 걸 바치셨던 신부님에게 위안과 존경의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우리 사회를 인권사회로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이 인권과 새로 건립되는 인턴 센터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 신부는 아직도 ‘헌정 공연’이란 것이 쑥쓰러운 모양이었다.

“이 공연이 ‘인권재단 사람’에서 하는 건데, 왜 하필 나를 골라잡았는지 몰라. 다른 사람도 많을 텐데...(웃음). 근데 인권재단이 힘들지만 열심히 인권운동 하는데야. 이번에 인권센터도 만든다네. 이번 공연 수익금도 다 센터 건립에 들어 갈 텐데. 근데 이걸 어쩌나, 공연료가 후불제야. 돈이 많이 모여야 할 텐데.”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화암홀에서 11월 4일부터 3일간 진행되는 문정현 신부 헌정공연은 ‘길 위의 신부를 만나다’, ‘저항의 신부를 만나다’, ‘가을의 신부를 만나다’라는 총 3개의 마당으로 나눠져 있다. 첫째 날은 저녁 8시부터 토크쇼가 이어지며, 둘째 날은 명계남, 여균동이 출연하는 연극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이 공연되며, 셋째 날에는 저녁 7시부터 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아마 문 신부님이 직접 마이크를 잡는 첫 날의 토크쇼에는 신부님의 삶 뿐만 아니라 사람과 생명에 대한 생각, 그간 만나왔던 민중들의 삶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문 신부는 ‘많은 인터뷰를 못해서 어쩌냐. 기사는 어떻게 쓰냐.’며 걱정했지만, 문 신부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들은 토크쇼를 독자들에게 전해질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성당에 무서운 신부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 신부가 미사를 드릴 때면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고 많은 신부들이 성당을 거쳐 갔지만 그 신부만큼 얼굴이며 말투며 생생하게 떠오르는 신부가 없다. 지난 한 주간, 기자는 문 신부님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물론 ‘인터뷰를 어찌해야 하나’라는 걱정 때문이었지만 아직도 문 신부의 얼굴이며 말투가 생생히 떠오른다. 아마 길 위에 문 신부를 만난 사람들도 그런 문 신부를 잊지 못해 ‘헌정공연’을 준비하게 된 것이 아닐까?(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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