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사회 “수형자 선거권 박탈, 민주주의 근간 훼손”…헌법소원 청구 나서

인권단체·진정인들 “유엔도 위반 지적…국제의무 이행해야”

관리자( jbchamsori@gmail.com) 2025.09.02 16:21

천주교인권위원회.png

<사진자료=천주교 인권위원회>

1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은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또다시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인권단체와 수형자들은 해당 조항이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과 국제인권규범에 위배된다며 위헌 심판을 청구하고, 정부와 국회가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전쟁없는 세상, 천주교인권위원회는 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형자 선거권 박탈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보통선거의 원리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심판 청구 취지를 밝혔다. 이번 소송에는 지난 6월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한 수형자 10명이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받아 그 집행이 종료되지 않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되지 않은 자’는 선거권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한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집행유예자의 선거권 제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선거권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국회는 2015년 개정 과정에서 수형자와 가석방자의 선거권 박탈을 그대로 유지했다.

헌재는 이후 여러 차례 청구 사건에서 “공동체의 기본 의무를 저버린 범죄자에게 통치조직 구성에 참여할 권리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합헌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범죄의 성격, 형량, 사회적 위험성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논란을 넘어 국제사회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지난해 3월,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아 선거권을 박탈당한 청구인들이 제기한 개인진정 사건에서 “한국의 공직선거법은 유엔 자유권규약 제25조가 보장하는 보통·평등선거권을 침해했다”고 결정했다.

위원회는 특히 범죄의 성격이나 개별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형량만을 기준으로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합리성과 비례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이 규약 선택의정서에 가입해 개인진정을 수용한 만큼 국제법적 의무를 진다.

이에 정부는 자유권위원회의 권고를 존중하고 국내 법제를 개선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천주교인권위원회 강성준씨는 “형벌 그 자체로도 이미 사회적 제재를 받고 있는 수형자에게 참정권까지 박탈하는 것은 이중 처벌이자 시민권 박탈”이라며 “이들은 여전히 공동체의 일원이고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채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변호사는 유엔 개인진정 사건 결과를 소개하며 “한국 정부가 국제적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현행법을 그대로 둔다면 국제사회에서 인권 후퇴 국가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청구인으로 직접 참여한 박유호 씨는 “나는 병역거부로 수형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한 명의 시민이었다. 그러나 투표할 권리조차 빼앗겼다”며 “헌법재판소가 과거의 판례를 고집하지 말고 국제인권 기준에 맞는 새로운 판단을 내려 달라”고 호소했다.

헌법소원 청구인단과 주최 단체들은 △형량만을 기준으로 한 일률적 선거권 박탈 규정 삭제 △범죄의 성격과 공공안전 위험성 등 개별 사정을 고려한 합리적 기준 마련 △유엔 자유권위원회 결정에 따른 국제적 의무 이행을 촉구했다. 또한 “수형자의 정치적 권리 보장은 단지 이들의 권리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라며 국회의 책임 있는 입법 활동을 요구했다.

이번 헌법소원은 헌재가 수형자 선거권에 대해 기존 합헌 입장을 유지할지, 국제인권기준을 반영해 새로운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인권단체들은 “헌재가 다시 한 번 ‘합헌’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한국이 국제인권법과 충돌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라며 “헌법과 국제규범의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