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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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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한복판인 것 같은데 어느덧 입춘이다. 수라갯벌에서 계절의 변화는 이별과 만남이기도 하다. 늦가을부터 기다린 기러기들은 수천 마리가 수시로 오가고 머리 위로 지나갈 때는 기룩기룩 하며 날개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흰뺨검둥오리, 쇠오리, 청둥오리, 고방오리, 넓적부리, 혹부리오리, 가창오리, 비오리, 흰죽지를 만난 올해는 비슷하게만 보였던 오리들의 이름을 열심히 배웠다. 이름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상착의다. 얼굴은 어떤 색인지, 머리깃이 있는지, 어깨와 몸통은 어떤 색인지, 무늬가 있는지 없는지, 날아갈 때 배쪽에 무늬가 있는지 없는지, 소리는 어떤 소리를 내는지, 다리가 긴지 짧은지, 꽁지깃은 어떤지, 날아갈 때 크기는 어떻게 보이는지 등등. 책에서는 알 수 없는 현장에서의 생동하는 느낌의 데이터를 매번 업로드 한다. 때로는 이름을 잘못 알고 있다가 스스로 교정할 때도 있고, 햇볕의 방향 때문에 새로운 종을 발견한 줄 알고 뿌듯했다가 집에 와 다시 보니 원래 알던 새일 때도 있다. 이런 저런 느낌데이터가 쌓이는 속도는 AI를 따라갈 순 없겠지만 그래도 쌓이고 있기는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번 겨울에 수라에서 새롭게 보게 된 새는 댕기물떼새다. 뒷통수에 검은 머리깃이 삐죽 올라와 있고 짙은 녹색이나 갈색의 윤기나는 깃털에 대비되는 흰배를 갖고 있는 아주 작고 귀여운 물떼새다. 주로 오리나 기러기 맹금류들만 찾아 보다 갯벌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니 댕기물떼새 수십 마리가 열심히 갯벌을 뜯어 먹고 있었다. 가끔 만나는 새인 줄 알았는데, 자주 찾아 보지 않았던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 바로 생명이다.

독수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맹금류들은 사냥을 하는데, 새들도 사냥감 중 하나다. 어느 날 흰꼬리수리가 날아가 앉는데 바로 앞에 댕기물떼새와 고방오리가 있었다. 어찌보면 잡아먹힐 수도 있는 관계이지만 어쩌면 벌써 사냥이 끝난 다음인지도 모르지만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추운 겨울날 비추는 햇볕을 쬐고 있었다. 포식자와 피식자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자연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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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나고 봄이 다가올수록 겨울 손님들은 떠나갈 것이다. 그리고 또 봄의 손님들이 당도할 것이다. 올해의 봄에는 큰뒷부리도요를 찾아 수라갯벌과 뉴질랜드를 잇는 ‘새, 사람’의 여정을 떠난다. 3월 25일경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큰뒷부리도요의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는 환송식에 참여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큰뒷부리도요를 환영하는 환영식을 4월 4일 진행하려 한다. 큰뒷부리도요와 이동하는 모든 철새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다가오는 겨울이 다 가기 전 한번 더 수라갯벌에 서자. 그리고 다가오는 봄을 함께 기다리자.

 

 

 

* 이 글은 팽나무도요새클럽에서 매월 발행하는 [월간수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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