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승복 요구의 불편함에 대해

[화요일의 참소리] "결정에 대한 항의는 헌법과 법률의 한계 안에서 해야"

송기춘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 jbchamsori@gmail.com
2017.03.14 13:45 추천 수 0 댓글 0

박근혜씨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그 동안의 실정과 악행을 보면 마땅한 결과다. 파면 말고 다른 결정을 예상할 수 없었고, 헌법재판소는 국민이 이미 내린 결론을 충실하게 담아 파면결정을 선고하였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을 잘 뽑고, 박근혜씨 등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충실한 수사를 통해 엄정한 처벌을 기대한다. 


그런데 파면결정 전후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 승복을 요구하는 캠페인 비슷한 게 벌어지고 있다. 아마도 파면이나 탄핵소추기각결정이 가져올 극단의 충돌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승복’을 요구하는 것이 무척 불편하다.

 

재판이나 정치적 싸움에서 지고 승복한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졌는데 왜 이유가 없겠는가? 필자도 잠시 동안이지만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뒤 법원의 결정에 항의하는 농성에 참여한 적이 있다. 법원의 결정이라고, 법률에 따른 선거 결과라고 승복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도 박근혜씨가 당선되었던 대통령선거에 대해 부정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이 사람들은 지금도 박근혜씨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러한 법원의 결정은 '유권적'이기 때문에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고 안 따르려 해도 안 따를 수가 없다. 그걸 부인하자니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버거운 일이다. 대통령선거무효확인소송을 청구했으나 아직 대법원에서 소송기일을 열지도 않았잖는가. 그리고 안 따른다고 해도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활동을 주시당하고 있는 터에 법률을 위반하면 더 큰 화를 자초할 것이므로. 법 집행과 판단에서 관련되는 사람들의 승복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법률상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법원이나 헌재 결정에 항의를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또 승복은 진 사람이 스스로 하는 것이지 이긴 사람이나 제3자가 승복하라고 할 말은 아니다. 진 것도 억울하고 슬픈데 게다가 진 것은 받아들인다는 말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것이기도 하다. 며칠 전 헌재 결정을 앞두고 어느 방송의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방송 진행자가 '헌재 결정이 나면 이 결정에 승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기에 말이 꼬인 적이 있다. 탄핵기각 결정이 내려진다면 나는 승복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파면 말고는 다른 것을 예상할 수 없는 사건에서 탄핵소추를 기각한다고 하면 왜 승복하겠는가? 또한 파면결정이 내려진다 해도 파면된 사람에게 승복하라고 요구하는 게 옳지 않기 때문이다. 승복은 진 사람이 스스로 해야 할 말이고 행동이다. 그러니까 질문에 답을 하기보다는 질문 자체에 대해 반론을 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진 사람이 '승복'한다고 하는 것은 지더라도 일어날 '기운'을 모으는 의미이고, 멋지게 지고 다시 이길 기회를 모색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법률이나 법 판단기관을 존중하고 결정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또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이 내려질 때 그것을 정당화하는 근거도 되기 때문이다. 또 국민간의 대립이 초래된 상황에서라면 국가기관의 판단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제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물러나는 정치인이라면 그것이 정치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봉사일지도 모른다. 


파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승복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걸 두고 비판이 많다. 그러나 승복한다는 말은 당연히 해야 하거나 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런 고상한 말은 하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사실 박근혜씨가 그런 말을 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 대목에서 승복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그래도 앞으로 정치적인 문제의 해결과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될 테고 그것은 나름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삶을 생각하는 정치인이라야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4년 동안 무지와 무능 그리고 무책임으로 일관한 사람에게 또 그러한 집단에게 일말의 국가와 국민을 위한 언행을 파면 이후에서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이제 이들은 서서히 죽어갈 세력일 뿐이다. 그들이 승복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결정에 항의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헌법과 법률의 한계 안에서 하길 바라고 법률을 위반하면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싶을 뿐이다. 백색테러는 권력의 뒷받침을 받는 자들의 소행이니 이제 죽은 권력을 믿고 날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직은 죽지 않은 권력인가?

 

<편집자 주 - 송기춘 공동대표는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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