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전북형 일제고사가 되어버린 '학력 진단평가'"

[금요일의 참소리] "학력 진단평가, 전북도청의 ‘하청프로그램’인가"

정은균 (군산 영광중 교사) jbchamsori@gmail.com
2017.03.31 15:19 추천 수 0 댓글 0

지난 21일 전라북도 내 중학교 1~3학년 학생들이 ‘학력 진단평가’라는 이름의 시험을 치렀다. 놀랍게도 ‘일제고사’처럼 진행되었다. 전북도내 209개 중학교 중 202개교가 참여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1교시당 45분씩 5교시에 걸쳐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과목의 문항 110개를 풀었다. 몇몇 ‘범생’ 학생들이 평가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시험 전날부터 당일 아침까지 무슨 시험이냐, 성적표를 집에 보내느냐, 석차를 어떻게 내느냐 등등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은 무슨 시험인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문제를 푸는 압박감 속에서 보냈을 것이다.

시험 관리가 수능에 준해 이루어졌다. 각 지역교육지원청에서는 십여 쪽이 넘는 ‘실시요강’을 첨부한 공문을 각 학교에 보내 시험 관리와 감독에 만전을 기하라고 안내했다. 따로 교감회의까지 개최해 평가에 관항 행정 사항들을 자세히 설명해 준 듯하다.

시험은 경건한 예식처럼 준비되고 진행되었다. 이런 형태의 ‘일제고사’를 치를 때 으레 그러하듯 공문 표지를 ‘고사 시간표 준수’니 ‘고사 감독 철저’니 ‘학생 부정행위 사전 예방 대책 수립 및 평가 관리 철저’니 하는 무시무시한 관료 용어들로 채웠다.        

학교와 교사와 학생들이 하루종일 까닭 없이 주눅이 들을 만했다. 공문과 지침에 순종하는 ‘착하고 성실한’ 교사들은 고사 시간표에 따라 짜인 감독표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일과계 담당 교사는 감독 업무의 책무성을 살리기 위해 감독표를 첨부해 내부결재까지 맡았다.

나는 이번 시험을 ‘전북형 일제고사’(?)로 명명하고 싶다. 도내 중학교 대다수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평가 대상을 ‘도내 중학교 1, 2, 3학년 희망학교 재학생’으로 해두었음에도 대다수 중학교가 참가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표면적으로 이번 평가의 목적은 교육적인 측면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학교마다 중학생 학업성취수준 진단으로 학습습관을 개선하고 진로결정력을 배양하며, 학업성취수준 진단에 따른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교실수업 개선과 평가문항 개발을 통한 평가방법 개선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문제해결능력 신장 따위가 그것이다.

전북형 일제고사가 이런 ‘아름다운’ 목적을 살릴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 얼마 전북도청과 전북인재육성재단에서 <2017년도 글로벌체험 해외연수 장학생 선발 안내>라는 제목의 공문을 각급 학교에 보내 글로벌 해외 체험학습 장학생 선발 필수 요건으로 본 진단평가의 결과를 요구했다고 한다. 공문상의 ‘자격기준 및 접수’ 항목에 “학력진단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학생은 접수 불가”라고 명기함으로써 학생들의 ‘불이익’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학교가 시험에 ‘의무적으로 참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전북도청과 전북인재육성재단에서 장학생을 선발할 요량이라면 자체적으로 기준을 정해 선발 전형을 실시하면 되지 않는가. 학교마다 ‘성적관리위원회’ 같은 것이 있으니 가정형편과 학업 몰입도와 내신 성적과 교사 평가 등을 두루 고려해 학교별로 일정 수의 학생들을 추천 받은 뒤 최종 선발하는 방식도 활용할 수 있다. 평가와 선발 과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염려된다면 전북도청이 전북교육청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자체적으로 지필고사든 논술고사든 면접고사든 실시해도 된다.

전북교육청은 전북도청과 전북인재육성재단이 진단평가 결과를 자체 장학생 선발 기준의 하나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는 했다고 한다. 진단평가 결과를 점수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으며, 전북도청 실무 담당자와의 통화에서 평가 결과 자료를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절대 불가 표시를 하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었음에도 전북도청과 전북인재육성재단은 대안이 없다는 말과 함께 전북도교육청과 관계없이 단위 학교에 일방적으로 공문을 발송해 버렸다.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거의 대다수 중학교가 ‘일제고사’를 치르게 되었으니, 오늘 도내 중학교 교사들은 전북도청의 장학생 선발 수단 확보를 위한 ‘하청 프로그램’에 무일푼으로 동원된 ‘하수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3시간 시험 감독을 하면서 소진해 버린 내 감정과 심리를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러려고 교사 노릇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온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똑같은 이름의 시험이 9월에 한 번 더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전북교육청과 전북도청과 전북인재육성재단이 머리를 맞대 무슨 수든 마련해야 하지 않나 싶다. ‘전북형 일제고사’ 거부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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