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이제 우리도 자동차 레몬법을 도입하자"

[화요일의 참소리] '낙장불입', "자동차 결함 책임 언제까지 구매자가 떠안아야 하나"

오길영(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jbchamsori@gmail.com
2017.05.02 18:21 추천 수 0 댓글 0

레몬을 그대로 먹기란 그리 쉽지 않다. 특별한 입맛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표정이 일그러지며 몸서리를 치게 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레몬을 오렌지라고 착각하여 먹었다면 그 표정은 어떠할까?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신맛에, 그 몸서리는 당황을 넘어 일시적 고통에 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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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결함, 구매자가 책임지는 한국”


이렇듯 운이 없게도, 레몬을 오렌지로 알고 구매한 이를 구제하기 위한 법제를 ‘레몬법’(lemon law)이라고 한다. 즉 소비재에 대한 품질보증법제를 말하는데, 요즘에는 주로 ‘자동차’에 대한 품질보증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미국의 주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미국은 다른 제품과는 달리 자동차에 대해서만큼은, 각 주마다 주법의 형태로 개별입법을 취하고 있다. 자동차 대국이라는 미국에서, 왜 이런 독특한 입법형태를 채택한 것일까? 이는 아마도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고충을 이미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시동 꺼짐’으로 골프채를 들기도 하고, ‘트랜스미션 결함’으로 언덕을 오르다가 멈추기도 하며, ‘매연 처리장치 고장’으로 주행 중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급기야 ‘제어불능 상황’의 발생으로 인해 온 가족이 몰살당하기도 하는 경험들 말이다. 어딘가 물이 새거나, 차체나 부품에 녹이 슨다거나, 엔진 실린더 내면의 손상으로 소음진동이 난다는 정도는, 그저 ‘뽑기’를 잘못하거나 운이 없는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지기가 일반적이기도 하다.


자동차 레몬법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신차의 교환·환불을 담당하는 현실적인 법제도가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인데 이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고시’에 불과하다. 따라서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큰 스트레스 없이 방어가 가능하므로, 별로 답답할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자동차의 교환․환불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극에 달한 구매자들의 분노이다. 제조사들의 대응이 부적절함은 물론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소위 도를 지나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낙장불입, 화투판만의 문제 아냐”


한편 자동차를 몇 번 구매해 본 사람이라면, 출고되자마자 번호판을 바로 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번호판을 다는 순간, 더 이상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등록증이 나오면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인데, 어떤 근거에서 이러한 말이 나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판매자도 구매자도 이런 말을 어렵지 않게 하는 것을 보면, 최소한 현실적인 상식으로 통용되는 모양이다.


번호판을 통한 ‘낙장불입’의 결정, 이것이 바로 현재 자동차 구매에 있어서의 우리네 통념이다. 덕분에 요즘은 번호판의 등록 전에 ‘신차 검수’를 해주는 서비스가 성업이라고도 한다. 등록증이 발부된 이후에 하자와 결함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이제는 ‘팔자’가 되어버린다는 구조적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 이러한 구조가 타당하기나 한가?


이러한 뜬금없는 통념은, 판매 후 책임회피로 일관해온 제조사들의 오래된 관행을 유지하기 위한 ‘숙성된 전략’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전략에 동원되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해 볼 수 있겠다.
먼저 다른 소비재와는 달리 유독 자동차에 대해서만 ‘단일 제품’이라는 일반적 인식을 부정하고, 수많은 부품의 조합으로 산출된 하나의 ‘결합 제품’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차량의 운행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 아닌 대다수의 경우, 그 논의를 자동차 자체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 구성부품에 국한된 문제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환불이나 교환은 불가능하며, 오직 수리만 가능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라면, 각종의 가전제품도 동일한 것 아니겠는가? 공구를 들고 분해해보라. 필자의 경험으로는 오직 한가지의 부품으로 구성된 전자제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 고장 난 가전제품을 새로 사서 ‘집안에 설치했다’는 이유로 교환받을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관문 앞에서 박스채로 작동실험을 하는 이를 본적이 있는가? 이는 논리적 왜곡에서 비롯된 명백한 오류이다. 


다음으로 현재 구매자가 자동차를 실제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신차의 교환·환불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이미 등록을 하면서 소유주가 발생하였으니 그 차는 이미 중고차가 되어버렸다는 것인데, 아마도 가장 주요한 논거가 아닐까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자동차는 다른 일반 소비재와는 달리 등록을 한다. 등록부의 기재가 존재하는 한 중고차임을 부인할 수 없고, 따라서 제조사의 입장이 일반 가전제품의 경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번호판을 운운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필자의 해석으로는 그 차원이 동일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상이한 차원이란 결국 등록부의 기록 때문에 새 제품으로 둔갑시켜 재판매를 할 수 없다는 것인데, 오히려 이러한 논리야말로 위법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등록의 요부를 불문하고 일단 판매한 제품이 반품되었다면, 그 제품이 가전제품이건 자동차이건 모두 중고인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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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레몬법 국내 도입, 구매자 권리 제대로 보장해야”


그렇다면 그 ‘중고화’의 책임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자 등의 이유로 반품 받은 제품을 재판매하는 경우를 일컬어 ‘리퍼브 제품’(refurbished product)이라고 한다.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제품을 정품에 비해 저렴한 값에 구매할 수 있어 ‘누이’가 좋고,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생산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불량으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어 ‘매부’도 좋은 것이다.


‘리퍼브’ 시장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제품의 생산이라는 것이 아무리 최선을 다하여도 불량의 가능성을 완전히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자는 제품의 판매가격 결정에 있어 불량으로 인한 손실분을 미리 계상하여야 한다. 즉 생산제품의 하자로 인한 손실의 고려는 본래 제작자의 몫인 것이고, 구매자는 그 부분까지 고려되어 책정된 가격을 주고 구매를 하게 된다.


따라서 등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부담의 주체가 갑자기 구매자로 전환될 수는 없다. 불량생산에 대한 대가를 이중으로 부담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차원을 달리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고, 따라서 이 또한 모순이다.


긴 자동차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은, 아마도 이미 이러한 경험들을 해보고서 결국 나름의 입법적 결단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일반 소비재에 대한 방식으로는 감당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에, 자동차를 전담하는 입법을 별도로 마련한 것이 아니었을까? 즉 다른 레몬들과는 달리, 유독 ‘레몬-자동차’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고도 특별하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구매자의 권리를 제대로 담보해낼 수 있는 자동차 레몬법을 가져야 한다. 살핀 바와 같이 요상한 통념에 터무니없이 시달려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수리는 가능하나 교환·환불은 불가능하다”는 제조사의 염불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길영 교수는 정보통신법 분야를 전공하고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법학자이다. 또한 자동차 매니아로서, 자동차와 관련된 시민사회 운동을 병행하고도 있다. 한편 목가적인 삶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접 나무를 자르고 망치를 치는 ‘DIY’를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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