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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헌법재판소 낙태불합치결정과 낙태법제의 개정방향

신옥주( icomn@icomn.net) 2019.04.19 16:29

신옥주(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낙태죄는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 등으로 악용되기도.... 

 

낙태에 관한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원칙적 낙태금지와 예외적 낙태정당화를 두 개의 법에서 이원화하여 규정하고 있다. 형법에서는 자기낙태(형법 제269조 제1항)와 산모의 촉탁을 받아 전문가가 실행하는 낙태(형법 제270조 제1항) 모두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한다. 그리고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태아의 우생학적 사유, 강간으로 인한 임신 등 범죄적 사유, 친족간 임신 등 윤리적 사유, 임산부 건강상 사유 등 낙태를 정당화하는 사유를 규정하고 낙태를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설시하고 있듯이 형법상 낙태죄는 임산부의 낙태갈등 상황에서 실효적으로 태아의 생명보호를 하지 못하며,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여성이 낙태 범죄로 기소된 경우는 연간 10건 이하에 불과하여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 평가되어 왔다. 또한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든 낙태가 전면적·일률적으로 범죄행위로 규율되고 있어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낙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고, 낙태수술과정에서 의료 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려우며, 비싼 수술비를 감당하여야 하므로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낙태죄 조항은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가사·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는 2019.4.11. 결정에서 낙태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처벌됨에 따라 형법상 자기낙태죄와 의사에 의한 촉탁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부담, 출산과정에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당할 뿐 아니라 이에 더하여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고통까지도 겪을 것을 강제당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어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고 보았다. 동재판소는 낙태죄가 위헌으로 선고되는 경우 발생될 수 있는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을 피하기 위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하면서 입법자가 2020. 12. 31.까지 법률을 개정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조만간 형법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지 66년 만에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임신중단을 둘러싼 법제의 정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종전결정(2012. 8. 23. 2010헌바402합헌결정)에서는 낙태를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충돌문제로 파악하고 생명권에 절대적 우위를 두었었지만 이번 결정에서는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권과 이를 위한 국가의 생명보호의무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생명보호를 위한 입법적 조치를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그 보호정도나 보호수단을 달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고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임신한 여성의 임신유지 또는 종결에 대한 결정을 여성이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 결정으로 파악한 점도 매우 중요한 시각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입법자는 향후 낙태결정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결정가능기간의 종기를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현을 최적화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결정가능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까지를 포함하여 결정가능기간과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 등에 관하여 낙태의 형사처벌에 대한 규율을 새로 정하게 될 것이다. 이때 입법자는 헌법재판소가 설시한 한계 내에서 입법자가 입법재량을 갖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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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법제 정비,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합의 도출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헌법재판소의 결정이후 새로운 낙태관련 법제를 정비를 함에 있어서 사회적 공감대형성과 합의를 도출하여 법제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낙태는 가치와 이념, 문화, 바이오의약·바이오의료의 발달과 바이오시장 등 여러 요인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나라마다 임신, 출산, 낙태에 관한 법·정책이 상이하다. 향후의 법제 정비를 위한 기본 방향을 정립하기 위하여 다음의 사항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낙태 관련한 법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문제이다. 제1안으로는 현행처럼 이원화를 유지하여 형법에는 현행과 같은 낙태금지와 예외적 불처벌조항을 두고 모자보건법상 낙태정당화 규정을 개정하여 정당화 사유를 확장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여성의 인권인 자기결정권의 행사로서 임신중단이 아니라 ‘궁박한 사유에 따른 최후수단으로서 낙태’라는 현재의 입법태도를 고수하는 것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2안으로는 독일과 같이 형법에 낙태죄와 낙태로 보지 않는 임신중단을 규정하고, 임신중단에 대한 갈등을 겪는 여성을 지원하기 위하여 제정된 임신갈등법에서 임산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성건강 교육 등과 더불어 임신갈등상담을 위한 상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방안을 채택한다면 모자보건법 제14조 낙태정당화 사유가 형법으로 이동되어 형법에 모두 규정되고 모자보건법에는 임신갈등여성을 위한 법제가 삽입되게 될 것이다. 제3안으로는 여성의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궁박’에 처한 여성이 탈출구로서 찾는 것이 낙태가 아니라 임신한 여성은 임신중단도 당연히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형법에서 낙태죄 규정은 부동의 낙태죄만 남기고 자유로운 임신중단은 모자보건법(공공보건법(프랑스))에서 보장하게 될 것이다. 제4안은 네덜란드와 같이 형법상 낙태금지규정은 그대로 두고 낙태법을 제정하여 여성의 자기결정에 따른 자유로운 낙태를 보장하는 방법이다.

 

둘째,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보장을 위한 기간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첫째, 임신의 기간(수정 후 12주씩)에 따라 낙태가 자유인 기한방식이 있다. 미국에서 임신초기, 중기, 말기로 나누어 낙태자유를 인정하는 방법이다. 오스트리아도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둘째, 프랑스나 네덜란드처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여 낙태의 기한제한이 없거나 수정 후 24주내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셋째, 독일방식이 있다. 이는 낙태 사유에 따라 기한을 달리 정하는 것이다. 먼저 임신(수정후) 12주까지는 임산부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다. 그리고 의학적 사유로 인한 낙태는 기한제한이 없으며, 범죄적 사유로 인한 낙태는 임신 12주 이내까지 허용된다. 또한 임신 후 12주-22주(최후 생리 14-24주 사이) 사이에는 임산부가 상담을 하였음을 증명하면 의학적 사유 없이 하는 낙태 자체가 불처벌 된다. 그러나 의사는 처벌될 수 있는데, 임산부가 낙태시 특별한 궁박상태가 있었다는 점이 확정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셋째, 자기결정권은 임산부가 어떠한 외부 압력 없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므로 정보의 접근이 쉬워야 하고 가능한 한 많은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여성의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나라에서 낙태전 상담은 필수적이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에서는 낙태를 실시하지 않는 의사가 낙태, 후유증 등에 대하여 상담을 진행한다. 독일의 경우 형법의 위임을 받아 제정된 임신갈등법에 따라 임신갈등상담소에서 체계적 · 조직적 · 전문적으로 매우 광범위한 상담을 하는데, 임신, 출산 및 신뢰출산(제한적 익명출산), 제한적 익명출산 시 향후 법원절차동반,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모든 급부,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넷째,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낙태가 허용되는 경우 현재 모자보건법상의 정당화 사유를 유지할지가 문제된다. 먼저 태아의 우생학적인 사유는 장애를 가진 생명과 장애를 갖지 않는 생명에 대한 차별로서 이는 결국 유엔 장애인차별철폐협약에서 금지하는 장애인 차별이 되는 것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낙태정당화 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삽입할 것인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일정한 기간 내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임신 22주(수정후 24주)내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낙태가 가능하고, 또 건강상 낙태정당화 사유에서 건강개념을 생명, 신체, 정신적 건강으로 넓게 이해한다면 새로이 사회·경제적 정당화사유를 넣을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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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주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
전 한국젠더법학회 회장, 
현재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 
헌법재판소 헌법 및 헌법재판발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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