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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난민_’내’가 ‘나’인 것을 어떻게 증명하죠?

전수연( icomn@icomn.net) 2019.05.13 19:50

말을 상실하면…

‘말을 상실하면 사람은 세상으로부터도,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떨어져 나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말’ 이라는 매체가 사라지면 사람은 고립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고립된다. 절대적 외로움의 상태에 빠진다.’ 최근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인데,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저의 의뢰인인 난민신청자 한 분이 떠올랐습니다[1]. 이 분이 처음 사무실에 찾아오셨던 것은 2015년 겨울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난민분들은 처음 변호사를 만나게 되면 본인들의 이야기를 말그대로 ‘쏟아’놓습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하는 사회적 혹은 관계적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닌, ‘외침 혹은 절규’에 가깝습니다. 한국에서는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도 그다지 궁금해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들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는, 난민분과의 첫 만남에서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토해낼 시간을 먼저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없이는 인터뷰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토해냄의 과정을 몇 번이나 드렸지만, 여전히 본인의 말과 감정만 쉴새없이 쏟아내는 난민신청인분이 계셨습니다. 종종 답답한 상황들이 생기면 사무실로도 전화가 와서 제게 하소연을 하면서 화도 냈다가, 나중엔 흐느끼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습니다. 관계의 말을 잃은 채 본인의 세계 안에 갇힌 분을 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들은 1심이 마무리되는 최근까지 거의 3년여가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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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지위 인정을 받는 어려움

난민신청 후, 출입국사무소에서 14시간 정도(대부분의 난민들은 1-2시간내에 인터뷰를 마치는 것에 비하면 극히 이례적인 경우입니다)의 인터뷰를 하고 가능한 모든 증거자료를 제출하였지만, 난민지위불인정이 되었고, 이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면서 다시금 관련 증거들과 의견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결과는 난민불인정.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소송 내내 피고가 던지는 박해가능성의 증거들을 답해내는 것은 숨막히는 일이었습니다. 제출한 거의 모든 증거들은 피고측으로부터 위조의심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박해증거로 A문서를 제출하면, 진본인지 의심된다고 하여, a2를 제출하면, a2도 의심된다, a2가 진본임을 입증하기 위해 a3를 제출하면 a3도 의심된다... 의심된다, 의심된다, 의심된다. 소송과정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한입증책임은 거의 원고측인 난민분과 난민분의 소송대리인인 저에게만 지워졌습니다.

 

5%가 안 되는 난민인정율의 의미는

누군가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며 여기 이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을 증명해보라면… 저는 당장 할 말이 없어질 것 같습니다. 비논리적이 됩니다. 이 사람은 당연히 ‘나’고, 이 주민등록증은 ‘내 것’인데, 오히려 ‘내’가 무얼 더 증명해야하는지를 반문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난민들이 법정에 서게 되면, 존재의 당위는 거세된 채 마치 선과 면과 무게를 지닌 덩어리가 쪼개고 또 쪼개어져 조각들의 합이 애초의 덩어리와 정확히 일치해야만 ‘당신은 난민이군요’ 라는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나마 이마저 듣지 못하고 모든 것이 허물어진 채 끝나버리는 사건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매년 5%도 채 안되는 난민인정율이 그 답을 대신하지요(한해 전국 법원에서의 난민사건 승소건은 두 자리 숫자도 안될 정도입니다). 다행히도 위 의뢰인의 사건 1심은 예상치 못한(?) 승소로 마쳤지만, 피고의 항소로 또 다시 지리한 싸움을 해나가야 합니다. Wish us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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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연: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등의 인권을 옹호하고 감시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안의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방인(strangers)’들이죠. 그러나 우리 또한 어디에선가는 이미 이방인이며, 혹은 이 땅에서 언젠가는 이방인이 될 것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We are all strangers”.

 


[1] 소개글에 적었지만, 한국사회의 취약한 이주민을 돕고 있는 저희 단체에서 하는 일 중 하나는 한국에 찾아온 난민들의 난민신청 지원 및 관련 소송을 무료로 수행하고 지원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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