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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려면 일을 하라는 국가의 요구는 당연한가?

 

봉준호 감독 덕에 칸 영화제의 최고 작품에 주어진다는 황금종려상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영화 ‘기생충’과 유사하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2016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영국의 부조리한 복지제도와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버텨낸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냈다.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우리 눈에도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비쳐지는 것은 한국이 영국의 복지모델을 뒤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에서 비판적 시각으로 그리는 조건부 수급제도는 한국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에,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국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근로연계복지, work와 welfare의 합성어인 워크페어(workfare)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여 취업할 수 있게끔 복지로서의 수급을 근로와 연계하는 제도이다. 일할 능력은 있으나 일자리를 얻지 못해 빈곤에 빠진 이들에게 일자리를 찾게 하여 스스로 자활하도록 한다는 이상은 바람직하나, 이 제도의 문제는 공공부조의 제1 목표인 인간의 존엄한 삶 보장이 아니라 수단에 해당하는 자활과 취업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발생하다. 최저생활을 보장하여 누구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한다는 목적은 도외시한 채 수급의 조건으로서의 근로를 강요하다 보니, 조건을 미이행할 경우 제재조치로 최저생계 유지에 필요한 수급권조차 제한받게 된다.

 

영화 속 다니엘이 수급비를 받기 위해 직면한 장벽들은 세부적으론 다르지만, 한국에서 故최인기님이 겪은 과정과 대체로 유사하다. 현재 국가배상소송을 진행 중인 최인기님의 사건을 ‘한국의 다니엘 블레이크 사건’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속 영국의 복지제도와 한국의 다니엘 블레이크 사건을 3가지 측면에서 비교하며 조건부 수급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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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편의적이고 형식적인 근로능력평가

 

영화 속 주인공 다니엘은 목수로 오랜 세월 일하였다가 심장병으로 의사로부터는 일을 쉬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래서 질병수당을 신청하였지만 해당 관서에서 심사를 통해 “일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고 질병수당 대상자에서 탈락한다. 영화 초반, 심사과 직원이 질문을 하며 다니엘의 상태를 평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심사직원은 다니엘의 건강상태와는 무관하게 “팔을 들어 올릴 수 있는지” 등의 구조화된 질문만을 반복한다. 무의미하다고 느낀 다니엘은 짜증을 내며 불성실하게 대답을 하였지만, 심사직원은 각 답변에 따라 점수를 매겨 다니엘에게 “일할 수 있다”는 판정을 내린다.

 

최인기님은 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하다가 대동맥이 부풀어 오르는 흉복부대동맥류 진단을 받은 후 두 차례에 걸쳐 인공혈관교체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심혈관계 기능은 회복되지 않았고, 조금만 경사진 곳도 금방 숨이 차서 올라갈 수 없었다. 당연히 일은 할 수 없었고, 막대한 수술비로 가계가 급격히 어려워져서 결국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이후 8년 가까이 근로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 수급자로 지내다가 2013. 11. 근로능력평가가 국민연금공단에 위탁된 이후 갑자기 ‘근로능력 있음’ 평가를 통보받아 조건부 수급 대상자가 되었다.

 

근로능력평가는 의학적 평가와 활동능력 평가로 이뤄진다. 최인기님의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는 사실상 3단계, 적어도 2단계로 평가되어야 할 정도였는데, 당시 국민연금공단에서 의학적 평가 중 가장 좋은 1단계로 평가받았다. 이것은 최인기님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그것도 이전 수술 내역이 기재되지 않은 최근 2달치 진료기록을 가지고 평가했던 탓에 잘못된 평가를 한 것이다. 활동능력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행정편의적으로 구조화된 각 문항은 개별적인 특성을 세세히 반영하기 어렵다. 최인기님의 경우 활동평가항목 중 “취업가능성”에 대해 0점을 부여받았으나, 알콜중독, 자기관리, 집중력 등이 높았다. 그 결과 잘못된 의학적 평가와 활동능력평가의 점수를 합산한 결과, 실제로는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상태가 아니었음에도 ‘근로능력 있음’ 평가를 받은 것이다.

 

판정의 이유도 알 수 없고, 불복하기 어려운 이의신청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질병수당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다니엘은 결정에 이의신청을 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소위 ‘영혼’ 없이 친절한 관료들은 지침만을 강조한다. 이의신청을 하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은 되지 않고 지치도록 벨소리를 들으면서 기다려야 했고, 컴퓨터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 마우스 사용법도 모르는 다니엘에게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라고만 안내할 뿐이다.

 

최인기님은 자신이 ‘근로능력 있음’ 평가를 받은 세부적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통지서에는 단지 근로능력 있음 내지 없음만 나와 있기 때문이다. 통지서에 판정결과에 불복하려면 이미 제출한 서류 외에 기타 주장하는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추가서류를 제출하라고 작게 써있으나, 어떤 부분을 추가로 제출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주민센터에 건강상태를 호소해 보았지만, 불복에 대한 안내는 없었고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최인기님같이 행정절차에 익숙지 않은 일반 시민이 불복 신청을 해서 뜻을 이루기까지는 문턱이 너무 높은 실정이다.

 

조건부 수급제도: 일하지 않는 자는 국가가 돌볼 책임이 없는가?

 

영화에서 다니엘은 힘겹게 질병수당 판정에 이의신청을 하고, 그 공백 기간 동안 실업수당이라도 받고자 신청한다. 하지만 실업수당은 구직 활동을 전제 조건으로 하기에 병든 다니엘은 무의미한 구직활동을 해야 했다. 실제로는 일할 마음이 없지만, 구직활동을 했다는 확인을 받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증빙하는 서류를 갖추기도 쉽지 않다. 이후에는 결국 구직자 수당마저 박탈당하고, 가난으로 인해 점차 고립되어 가던 다니엘은 질병수당 자격심사 항고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조건부 수급자 판정과 동시에 당장 고용센터의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계급여가 중단된다고 고지 받은 최인기님은 어쩔 수 없이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아파트 지하주차장 환경미화원으로 취업하였다. 그러나 몇 년 만에 추위를 무릅쓰고 일을 시작한 탓에 감기와 부종이 끊이지 않았고 3개월 만에 결국 쓰러져 사망에 이르렀다. 다니엘 블레이크와 최인기님의 마지막 동선을 쫓아보니 너무도 씁쓸한 닮은꼴이다.

 

한국의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

 

故최인기님이 사망한 3주기 기일인 2017년 8월, 유족인 망인의 배우자는 보장기관인 수원시와, 근로능력평가를 위탁받아 시행한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청구했고, 필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소송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근로능력 평가, 그리고 잘못된 평가에 대한 구제절차의 미비라는 제도의 실무적인 문제점이 쟁점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조건부 수급제도 자체가 정당한 것인지 재고해보아야 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며(헌법 제34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그 목적이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제1조). 생활능력을 상실한 국민의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헌법상 의무인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본적인 취지 역시 이들에게 근로를 강요하여 급여지급 대상자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의 최저생계를 위한 수급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헌법과 법률에 의해 국가 및 보장기관에 부여된 보호의무를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의 수상소감에서 “우리는 다른 세계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외쳐야만 한다”라고 했다. 켄 로치 감독이 말한 다른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일자리를 강제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질 좋은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 수급권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하여 빈곤층을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내몰기 전에, 먼저 일할 만한 좋은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또 수급 대상자가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으려 수치심을 무릅쓰고 자신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당연한 자격을 보장받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최근 빈곤사회연대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선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여기에 켄 로치 감독과 제작진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다니엘 블레이크임을 함께 선언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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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동천은 로펌변호사의 프로보노 활동을 활성화하고 공익단체, 활동가 및 예비공익변호사를 지원, 양성하는 한편, 공익법 연구 및 법률구조, 제도개선, 입법지원활동을 함으로써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공익법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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