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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북교육청은 2019년 6월 20일 상산고에 대한 자사고 재지정 평가 결과 교육청이 제시한 80점의 기준 점수에 미달하여 재지정 취소절차를 밟겠다고 발표하였다. 올해에만 24개의 자사고가 재지정 평가를 앞두고 있다. 지금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와 관련하여 논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다음 4가지 관점에서 자사고 평가 논란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1. 형평성과 적법성 논란?

 

교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사고라는 제도 자체가 교육적 형평성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자사고는 입시에서 우선선발권의 특혜가 오래 동안 주어졌고(지금은 후기로 일반고와 동시 선발하는 것으로 변경됨), 수업료는 일반고에 비해 3배까지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 없으면 실력이 있어도 갈 수 없는 학교가 자사고이다. 그래서 귀족학교라는 별명이 붙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일반고와 비교해볼 때 자사고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재지정 평가 합격의 기준점수로 다른 지역이 70점인데 비해 전북교육청은 80점을 설정하였다. 이에 대해서 나는 정서적 관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의하면 자사고 지정, 취소, 평가 등에 대한 권한은 각 지역교육감에게 주어져 있다. 지방자치 제도에 따라 주민직선제로 선출된 교육감에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교육청에 따라 기준 점수는 달라질 수 있다. 실제 5년 전(2014년)에도 다른 지역 교육청의 평가 기준점수가 60점인데 비해 전북과 서울교육청은 70점이었고, 이 70점 기준으로 상산고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상산고는 80점을 조금 넘는 점수를 획득하여 자사고 재지정을 승인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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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주상산고등학교 홈페이지, 한국사 국정교과서 논란당시)

 

2. 우선 선발권 폐지, 그래도 자사고 없어져야 하나?

 

자사고는 2018년까지 계속 유지되어오던 입시우선 선발권이 폐지되고 일반고와 동일하게 후기에 학생을 모집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우선선발권 폐지만으로 지금의 자사고와 관련된 논란과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고등학교가 외고 과학고 등의 특목고와 자사고 중심으로 서열화 되어 있다. 그간 이들에게 주어졌던 특권은 고교서열화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서열화의 구도를 깨지 않으면 입시경쟁은 더욱 치열할 것이고, 이 경쟁 때문에 사교육비의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2018학년도 서울대학교 입학처 보도자료에 따르면 자사고 특목고 출신이 서울대 입학생 비율의 40.7%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학생 중에서 자사고와 특목고 학생의 비율이 4%정도 되는데 소수의 특정학교 출신들이 서울대 입학생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나친 양극화 현상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사고와 특목고는 고등학교 입시에서 성적이 우수한 중학생들을 거의 싹쓸이하여 일반고를 슬럼화시켰다는 지적도 많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교육생태계의 모습이다.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에게나 출발선이 공정해야한다. 따라서 특권을 모두 제거하고 선발방식에서 평준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다만 교육과정은 학교마다 자율성을 주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또한 다양성 측면에서 보면 학교간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학교 내에서의 다양한 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교육내용과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아직 준비는 덜되었지만 “고교학점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태동된 제도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권에 의한 학교자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3. 입시 중심 교육, 자사고 없으면 달라지나?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어도 입시위주 교육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의 교육환경과 토대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지금과 같은 대학입시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교육으로 달라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대학 입학에 더 유리할 수 있도록 대학 입시제도를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이야기 하며 창의 융합형 인재의 육성을 말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30년 동안 지속되어온 객관식 형태의 수학능력시험을 지속해야 할 것인가부터 고려해야 한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해 꼭 유지되어야 한다면 문제풀이 중심의 수능시험을 절대화하고, 정시보다는 수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입시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다양화를 위해 학생종합기록부(학종)에 의한 대학입시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한 학벌중심의 대한민국 문화도 달라져야 하며, 대학서열화를 깨는 일도 함께 진행되어야만 입시중심의 교육이 달라질 수 있다.

 

학교란 본래 대학입시만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다.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등 자신의 삶에 대해 탐구하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즉 비전과 꿈을 만들고 실현해 가는 곳이어야 한다. 대학입시는 자신의 진로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기승전대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유초중고등학교의 모든 단계의 교육이 결국은 대학입시로 귀결되고 만다. 이러한 현실에서 입시위주의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의 중심에 서있는 대학의 변화가 절실하다. 대학입시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둔체 다른 것들에 대한 개혁과 혁신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개혁의 핵심이 대학입시의 개혁이고 대학서열화의 파괴에 있음을 정부와 교육관련자들은 뼈아프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4. 지역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은 없는가?

 

상산고는 전국단위로 학생을 모집한다. 2019년 상산고 입학전형을 보면 전북외 학생들이 80%, 전북출신 학생이 20%가 입학한다. 80%의 타지역 출신 학생들이 전주에 와서 생활하기 때문에 전주의 경제적 유발효과는 다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부정적인 영향이 적지 않다.

 

상산고는 교육적, 지역적 관점으로 보면 지금 전북에서 섬처럼 존재한다. 전북 고등학교 진학담당자들의 모임이 있는데 여기에 상산고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지역에서 학교간의 협력이나 교류가 거의 전무하다. 또한 전북지역 학생들 20%가 상산고에 입학하여 실제 어떤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가에 대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일부 교육자와 학부모들의 말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전북출신의 학생들이 하위성적을 유지하는 가운데 성적 상위 학생들의 내신 성적을 올려주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볼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자사고 때문에 지역의 있는 학교의 졸업생에게 오히려 더 불리해 질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금 지방대학과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지방대학 육성법”)에 따라 의대 한의대 치대 약대 등에서 지역인재를 30%까지 선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방대학 육성법의 제15조에 의하면 "지방대학의 장은 지역의 우수인재를 선발하기 위하여 의과대학, 한의과대학, 치과대학, 약학대학 및 간호대학 등의 입학자 중 해당 지역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졸업예정자를 포함한다)의 수가 학생 모집 전체인원의 일정비율 이상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과거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역에서 다녀야만 입학지원 자격이 주어졌는데 올 입시부터는 고등학교만 지역에서 졸업하면 입학 지원 자격이 주어지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었다.

 

이렇게 되면 이 지역출신 학생들에게는 더 불리해 진다. 얼마 전에 전북대학교 의대 교수의 인터뷰가 방송에 공개되기도 하였는데 그는 “이런 제도 때문에 타지역 학생들이 입학을 많이 하게 되고, 그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자기 고향이나 큰 도시로 떠나버려 의료 공백현상이 걱정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 전북대 의과대학전문대학원(의전원)의 사례를 볼 때 이러한 우려는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

 

오랫동안 지역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전북의 경우 지역위기와 지역소멸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다. 지금이야말로 전북은 지역인재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어차피 붙잡으려 하여도 떠날 사람은 떠날 수 밖에 없다. 이제 지역에서 살면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컨텐츠와 가치를 재생산하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지역인재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인재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전북교육의 숙제중의 숙제 아니겠는가?

 

5. 맺으며

 

자사고 재지정 취소 사태와 관련하여 피상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 이면에 충돌하고 있는 교육적 상황과 배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란의 와중에 교육적 가치로서 형평성, 자율성, 효율성 등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이 그 중심에는 “특권교육을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특권교육을 해체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이 충돌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현재의 자사고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보장, 사학 자율성의 제고, 교육과정의 다양화라는 설립취지와 목표와는 달리 사회양극화의 확대, 명문고(입시사관학교)의 부활, 사교육비의 증가,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등 그 악영향이 더욱 강화되어 우리나라의 교육생태계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교육은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교육에서 기회균등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며 헌법의 가치로 보장된다. 초중고등학교의 보통교육 단계에서 아이들이 차별없이 성장 할 수 있도록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것은 어른들의 역할이고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출발선에서 공평하게 서더라도 부모의 경제력이나 정보력 때문에 격차가 생기기 마련인데, 출발선부터 불공정한 현 자사고 시스템은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끝으로 사족을 하나 더 붙이자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자사고 폐지(일반고 전환)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 의제는 대통령 당선 후 100대 국정과제로도 제시되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이 각 교육청에 평가를 맡기기 보다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바꿔,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장에서의 논란이 빠르게 해소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계기로 입시제도의 개혁, 대학서열화 해체 등 산적해 있는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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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성 : 전주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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