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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익산시장의 발언을 바라보는 시선

권영실( icomn@icomn.net) 2019.07.09 01:19

익산시장의 발언이 화제에 올랐다. 지난 5월 11일 원광대학교에서 진행된 ‘2019년 다문화 가족을 위한 제14회 행복나눔 운동회’에서 시장이 축사를 하던 도중 “생물학적, 과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잡종강세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똑똑하고 예쁜 애들을 사회에서 잘못 지도하면 프랑스 파리 폭동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이주 관련 단체들이 반발하자,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튀기들이 얼굴도 예쁘고 똑똑하지만 튀기라는 말을 쓸 수 없어 그리 한 말이다”며 “‘당신들은 잡종이다’라고 말한 게 아니라 행사에 참석한 다문화 가족들을 띄워주기 위해 한 말이다”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6월 25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전국 이주여성쉼터협의회 등 6개 단체 회원 그밖에 각지에서 모인 이주여성 150 여명이 익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후 28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추가 집회를 하고 진정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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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익산시장의 인종차별 발언 후 실시한 익산시 전직원 다문화인권교육 모습 왼쪽 세번째가 정헌율시장, 익산시 홈페이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의 양상

 

익산시장은 별다른 악의 없이 내뱉은 말, 더욱이 잘되라고 한 말로 이렇게까지 뭇매를 맞아야 하냐며 억울해할지 모르겠다. 그의 발언은 ‘다문화가족들이 전부 사회의 악이라거나, 위험하니 익산시에서 내쫓아야 한다’ 등과 같이 직접적인 혐오표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의 기저에는 다문화가족을 이미 열등한 지위에 상정해놓고, 다문화가족의 자녀들을 잠재적 위험한 존재로 묘사하여, 결국 그 외의 선주민의 자녀들을 다문화자녀들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후에 익산시장이 언론에 공개한 공식 사과문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나타난다. 사과문에서 본인은 “다문화이주민플러스센터를 건립하였고 다문화가족 인권 신장에 앞장서 왔다며, 이러한 사태가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이주배경을 가진 주민들에게 시혜적 관점에서 ‘이 정도면 잘해주고 있다’는 생각하는 그의 사고의 틀에는 이미 인종차별적인 가치 질서가 확립되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을 둔 다문화사업이라면 우월한 선주민이 자칫 다문화자녀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종차별적 표현의 위험성

 

어떤 사람들에게는 익산시장의 발언이 사소해 보이거나 인종차별이라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소수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 발화자에게 악의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익산시는 전북 내에서도 결혼이주민의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당일 행사도 600여명이 모여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공적인 인물의 공식적인 발언은 그 안에 내재된 가치 질서를 정당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자리에서 익산시를 대표하는 시장이 이주민의 자녀를 잠재적 위험요소로 치부하고, 이들은 언제든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관리가 필요한 대상이라고 표현했으니 그 어머니들이 화가 나지 않을 리 없다. 이후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사죄도 없이 미온적 태도로 자신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더욱 공분을 야기했다. 당시 행사에 참여하였던 다문화가족 및 이주민뿐만 아니라 이후 언론 등을 통해 이 사건 발언 내용을 접한 이주민들의 인격권도 침해당한 셈이다.

 

인종차별적 혐오표현, 현행법으로 규제 가능할까?

 

현행법상 인종차별적 혐오표현을 구체적으로 규율하는 국내법은 아직 부재한 상황이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 제7조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 어떠한 차별의 선동에 대하여도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하고,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0조 제2항은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에 해당하는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옹호는 법률에 의하여 금지되어야 한다.”는 의무를 당사국에게 부여하고 있다.

 

또한 한국이 1978년 가입하고 비준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이하 「인종차별철폐협약」)은 더욱 구체적으로 인종차별적 혐오표현을 규제하도록 당사국에 요구하고 있다. 인종차별철폐협약 제4조에서는 인종우월주의에 바탕을 둔 관념의 전파, 인종차별을 고무하고 선동하는 조직적 활동과 참여 등을 모두 금지하고 있고, 특별히 국가 또는 지방 당국과 공공기관의 인종차별의 고무 또는 선동을 금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위원회는 ‘비시민권자에 대한 차별에 관한 일반권고 제30호’에서 “인종, 피부색, 혈통 및 민족이나 종족, 비시민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특히 정치인, 공무원, 교육자 및 언론, 인터넷 및 여타 전자 통신 매체에 의해 사회 전체에서 표적화, 낙인화, 고정관념화 혹은 프로파일 하는 경향에 대응하기 위한 단호한 행동을 취한다(para. 12).”라고 하였다. 즉, 정치인 등 공적인물의 발언의 경우 그 발언이 가지는 힘과 영향력으로 인해 더 큰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으며, 파급력을 고려하여 더욱 단호하고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익산시장의 이번 발언은 인종 간에 차이가 있다는 인종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주민을 선주민과 구별하여, ‘이등시민’으로 대상화하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등의 편견을 발생시키는 공개적인 발언이었다는 측면에서 인종차별철폐협약을 비롯한 국제인권법상 금지되는 행위에 해당한다. 더욱이 차별의 모든 선동 또는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한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에 의한 발언이었기에 더욱 주요한 규제의 대상이 된다. 현행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익산시장의 발언이 혐오표현에 해당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사죄를 권고할 것을 기대한다.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노력 – 자아성찰과 규범화

 

필자는 인종이라는 개념이 관념에 불과한 것일 뿐 실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회적 개념으로서의 인종을 상정하였을 때 이미 우리 사회는 ‘다인종 사회’에 도입하였다. 누구든 자신을 인종주의자라고 지목한다면 불쾌해 한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일상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은 생각만큼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인종주의적 편견을 일반화하여 내뱉는 조롱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특정 집단은 열등하다는 인식 하에 불쌍하니 도와줘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자신은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전에, 일상의 사소한 인식에서부터 스스로를 점검해볼 일이다. 필자를 포함한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무의식적 또는 비의도적인 차별적, 혐오표현은 무엇보다 인식의 변화, 즉 잠재된 편견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내에서 이번 사건을 시발점으로 삼아, 인종차별적 혐오표현이나 차별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 이러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기 위한 공동의 행동 규칙을 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피해가 발생하였다면 어느 수준의 제재를 가할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기준을 마련하고 제도화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부터의 이러한 움직임이 결국에는 인종 외에도 출신국가, 종교, 문화 등에 기초한 차별을 막기 위해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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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동천은 로펌변호사의 프로보노 활동을 활성화하고 공익단체, 활동가 및 예비공익변호사를 지원, 양성하는 한편, 공익법 연구 및 법률구조, 제도개선, 입법지원활동을 함으로써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공익법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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