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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립대학은 누가 키울 것인가

고영남( icomn@icomn.net) 2019.11.24 08:32

고등교육재정에 인색한 한국 정부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학입학정원을 확보하지 못한 사립대가 증가하면서 사립대에서도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지 오래다. 이미 재정난에 휩싸인 사립대학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정상적인 학사운영이나 ‘질 높은 교육’의 가능성은 그저 춘몽에 불과하기도 하다. 입학정원에 포함되지 않는 외국인유학생을 캠퍼스로 적극 유인하지만, 이는 교육재정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고육지책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고등교육에 관한 국가의 재정 부담은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점 또한 최근 발표된 자료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2016년 대학(고등) 공교육비(등록금 등 학비) 관련하여 OECD 평균 가운데 정부재원 지출 평균은 66.1%이며 민간 지출은 31.8%를 차지했다. 반면 한국의 대학 공교육비의 정부재원 지출 비율은 37.6%에 그쳤다. 다만 가계·사립대학 등 민간재원 지출 비율은 62.4%로 나타나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정반대가 되었음이 드러났다. 그동안 시민사회나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국가재원의 확대는 요원할 것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맺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민간에 의한 재정부담은 이제 한계에 봉착하였고 이를 극복하려는 지혜는 모두의 과제로 등장하였다.

 

대통령의 ‘공영형 사립대학 육성방안’공약은 어디로 갔나?

 

국가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고등교육을 위한 재정을 민간이 국가보다 더 부담하여야 하는, 이러한 비정상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이어져 올 수밖에 없었다.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하고 지역에 필요한 사립대를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전환하여 육성’한다는 정책이 2017년 대선을 거쳐 현 정부의 주요 고등교육정책으로 제시되었다. 특히 사립대에 국가 부담의 재정을 적극 투입함으로써 지역별로 ‘공영형 사립대학’이 다수 육성된다면 고등교육과 연구의 공공성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믿음이 여기엔 있었다. 고등교육에 관한 민주진보진영은 한 목소리로 이 공약을 지지하였다. 주요 사립대의 교수(협의·평의)회들이 스스로 <전국공영형사립대학추진협의회>를 결성하여 ‘공영형 사립대학’의 정체성을 연구하였고 일부 대학에서는 대학 당국자들도 이 제도의 도입을 고민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에는 이 공약을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임기를 생각할 때 이 공약이 조금이라도 구현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국립대 육성사업’에 치중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학에는 원래 주인이 있다’는 주장이 전혀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보고 있자면, 그리고 ‘망해 가는 사학에 왜 국민 혈세를 붓느냐’는 회의론이 제기되어도 늘 침묵하는 대통령과 장관을 보고 있노라면 결국 이 공약은 전형적인 정치적 선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학의 지배구조를 혁신하고 질 높은 고등교육을 구현하는 꿈을 포기할 것인가? ‘사립대학은 누가 키울 것인가’란 질문을 주저하거나 그 대답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2018년 2월 어느 날의 <한겨레> 칼럼을 재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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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8월28일 청와대 분수 앞 기자회견, 교수노조 사진자료실)

 

‘사립대학은 누가 키울 것인가’

 

사립대학에 국가의 재정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멀리 떨어져, 질문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았다. 물론 철학과 운영원칙이 제대로 정립되고 운영된다면 한국의 현실에 적절하고 적정한 규모의 대학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재정 문제로 귀결되긴 하나 이는 여러 고민거리 중 하나에 불과하고, 정작 중요한 것은 지역에 왜 대학이 필요하며 이를 누가 운영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였다. 이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립대학의 개혁에 관한 일본에서의 고민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사립대의 역할과 구조가 한국과 매우 흡사한 일본에서의 최근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일본에서는 우선 ‘도야마 플랜’이라는 이름 아래 국립대를 법인화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국립대의 개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나 그 성과에 관해서는 논란이 여전하다. 우선, 총장의 자율권이 강화되면서 예산 집행의 자율성이 강화되었으며, 산학협력 등이 활발하게 이루진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그러나 재정 부족, 대학의 기업화로 인한 교육·연구 기능의 약화, 수업료 인상으로 인한 교육기회 불평등 확대 등 부정적 평가도 존재한다.

 

일본 사립대 개혁의 시작

 

한편 일본의 사립대 개혁은 국립대와 다른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2014년도는 사립대 592개교 중 219개교(37%)가 적자이며, 특히 지방·중소규모 학교는 304개교 중 138개교(45.4%)가 적자대학이다. 이 적자대학의 비율은 1997년 11.3%였으나, 2005년 30.2% 이후 매년 상승하여 2011년에는 42.2%까지 달했다. 2012년은 35.4%로 하락했지만, 2013년(36.3%)·2014년(37%)의 2년 연속 상승하고 있다. 또한 1989년부터 2016년까지 사립대의 입학정원미달대학의 추이를 보면, 1999년-2001년에 급증한 후 2005년까지 30% 미만으로 제자리걸음 상태를 보이다가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다시 증가하고 절반의 사립대가 입학정원미달사태에 직면하였다. 2016년에도 전체 집계대학 수 577개교 중 257개교가 미달사태를 보였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은 대학학령인구가 계속하여 감소하는 데 있지만, 수도권 대학의 경우 미달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억제한다고 해서 지방의 사립대가 계속 존립할 수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로 인식된다. 드디어 사학이 파산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경우처럼 사학운영에서 비리가 발생해서 폐쇄된 게 아니고, 재정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학과 정부가 사립대 파산에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나 정작 현실적인 대안은 대학이나 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오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사립대의 위기와 맞물리자, 청년층을 포함한 인구가 대도시권으로 유출되어 지역이 공동화되는 현상을 막으려는 지자체의 고민 또한 시작되었다. 지역에서 청년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지역에서 취업과 기본 생활이 가능해야 하므로,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자신의 재정으로 그 지역에 적합한 사립대학을 유치하거나 기존의 사립대학을 공립대학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지자체에 의한 대학 유치가 진행되었다. 지자체가 설치비용을 부담한 사립대는 그 부담 비율에 따라 ‘공사협력대학’ 또는 ‘공설민영대학’으로 구분되었다. 지자체가 토지와 교사 등 건물과 설비의 일부를 현물 또는 자금으로 준비하고 학교법인에게 경상비의 일부를 보조하는 ‘공사협력대학’의 모델이 그것이다. 이를 계기로 신설된 공사협력대학(공설민영대학 포함)은 1997년까지 84개교에 이르렀다. 이러한 요구는 지방에서 대학을 유치함으로써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국토청, 지방에서 기술도시 구상을 목표로 하는 통산성, 그리고 지역 활성화의 수단으로 대학을 유치하고자 하는 지자체의 의도와도 일치했다. 다음으로, 지역마다 각 지자체는 지방의 고등교육의 기회균등, 지역의료·간호 등의 인재 육성, 지역공동화 대책 등의 정책적인 요구를 배경으로 지자체가 주체가 되어 대학의 설치를 계획하고 그 설치비용의 전부를 공적 자금으로 조달한 경우를 ‘공설민영대학’이라 볼 수 있다. 지자체가 공립대학을 직접 운영하지 않고 사립대를 유치한 이유는 학교법인이라는 법인격을 갖는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국립대가 독립적인 법인격을 획득할 수 있게 되면서 공설민영대학의 장점은 대부분 사라졌다. 더욱이 사립대의 재정이 학생등록금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지역의 경제사정이 점차 악화되면서, 공립대에 비하여 2배 정도의 등록금을 받는 사립대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경영난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립대로서는 ‘공립대학법인’이라는 제도의 도입을 계기로 공설민영대학을 중심으로 ‘사립대의 공립화’가 잇따랐다.

 

사립대를 공립대로 전환하는 일본의 큰 움직임

 

공립대의 재정은 국립대나 사립대와 다르다. 국립대와 사립대는 정부(문부과학성)로부터 각각 운영비교부금을 지급 받거나 경상비보조금(일반보조, 특별보조)을 지급 받는 데 반해, 공립대의 경우 총무성이 지자체에 지급하는 지방교부세에서 간접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진다. 공립대학법인 전체의 경상수익(2013년 결산. 부속병원회계는 제외)을 보면, 운영비교부금이 전체 경상수익 중 54%, 학생등록금이 26%, 연구개발자금이 9%, 기부금이 2% 등으로 구성된다. 2016년 기준, 각 지자체가 설치한 공립대학법인과 대학의 지배구조는 참 다양하다. 하나의 지자체가 하나의 공립대학법인을 설치한 경우는 51곳에 달하는데, 이사장과 학장을 일치시키는 유형(28개 지자체)과 이사장과 학장을 분리하는 유형(23개 지자체)으로 나뉜다. 또한 두 개의 지자체가 하나의 공립대학법인과 대학을 설치한 경우는 물론, 하나의 지자체가 복수의 공립대학법인을 설치한 경우(7개 지자체)도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공립대학법인을 설립한 지자체와 대학이 어느 때보다 연대를 강화하고 해당 지자체가 추진하는 시책에 따라 인재육성, 교육 및 연구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지금보다 훨씬 더 지역에 헌신하는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사립대를 지역의 공립대로 전환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구체적으로 상정해보자. 우선, 상대적으로 학생이 부담하는 등록금이 낮아지기 때문에 입학생을 유치하기에 용이할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훨씬 줄어들어 지역에서의 정주가 용이하며, 대체로 공립대의 학위가 취업에 도움이 된다. 둘째, 청년세대가 지역에 머무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에 공립화로 인하여 입학지원자가 늘고 재학생의 수가 유지된다면 지역경제를 살리는 소비는 물론, 지역공동체에 기여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지역과 주민들에게 활력소가 된다. 아울러 청년들이 곧 생산과 재생산의 주체가 되므로 다양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역 나름의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과정에도 기여하게 된다. 셋째, 지자체와의 협력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지자체가 지역공동체와 주민의 복지나 인권 향상을 위하여 지역의 대학에 지원하고 협력을 원한다 할지라도, 사립대의 경우 지배구조의 한계 때문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 반면, 공립화가 된 경우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에서도 수월하고 산학관의 공동연구를 포함하여 협력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작은 대학이지만 공립대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후쿠치야마공립대학’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 대학의 기본이념은 ‘시민의 대학, 지역을 위한 대학, 세계와 함께 걷는 대학’인데, 지역사회를 지원하고 지역사회가 지원하는 대학 그리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창출하는 데 공헌하는 대학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대학은 지역에 토대를 두고 ‘지역협동형 실천교육’을 통하여 지역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지닌 학생을 이 대학의 인재상으로 상정하고 있다.

물론 걱정스런 지점들도 있다. 먼저, 지역의 사립대가 여럿 있는데 일부만 공립대로 전환하면 다른 사립대 사이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학생들의 등록금 수준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광역단위에서의 공립화를 위한 중장기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채 공립화를 고립적이거나 일회성으로 수행한다면 지역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가장 큰 변화는 설치주체인 지자체의 재정이 보조금이라는 명분으로써 해당 대학으로 투입되며, 그 보조금의 본질은 주민들의 세금이라는 점이다. 즉,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공립화에 관하여 어느 정도 지지하는지가 역시 관건이며, 공립대로 전환할 때 주민의 참여를 어느 정도까지 수렴할지를 선별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셋째, 사립대를 공립화한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고등교육의 질이 바뀌거나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립대로 되더라도 교수와 학과 등의 중심적 내용이 변경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연구나 강의도 그대로 계속된다. 더욱이 고등교육의 몰이해로 인하여 지자체의 행정 권력이 대학의 자치를 훼손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역과 고등교육의 지속가능성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사립대를 공립대로 전환할 경우 지배구조의 갈등을 원천 차단하고 대학의 민주적 운영체제를 정립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잡을 수 있는데, 이는 결국 학습자들을 위한 높은 질의 고등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이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사립대를 공립대로 전환하고자 하는 고민의 시작은 사립대의 고질적인 재정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과제에서 나왔지만, 결국 본질은 ‘사립대학은 누가 키울 것인가’의 질문을 향한 이 시대의 대답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책임지는 사립대학’이라는 관념적 방안보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이 함께하는 대학’이라는 구체적 방안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특히 보다 강한 지방자치와 실질적 분권이 이루어질수록 지자체 중심의 공립대로 전환하는 방식은 지역과 고등교육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담보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이 칼럼 중 일본의 사례는 고영남이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한 ‘공영형 사립대학’ 관련 연구보고서(2019년) 가운데 필자의 집필내용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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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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