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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누군가에게는 산넘어 산, 아빠 혼자 아이 출생신고하기(2)

일명 ‘사랑이법’ 적용의 사각지대

전수연( icomn@icomn.net) 2020.05.14 07:11

지난 저의 글에서는 아이의 엄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사실을 증명할 아무런 신분증명 서류가 없는 경우에 ‘아빠 혼자 아이의 출생신고 하는 것의 어려움’을 실제 제가 지원하고 있는 사례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간략히 지난 글에서 다뤘던 사례를 말씀드리면, 한국인인 아빠와 외국국적 엄마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는데, 엄마는 본국에서 난민사유가 발생하여 제3국에 가서 난민신청을 하여, ‘인도적 체류지위’ 비자를 받았습니다. 부부는 한국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고, 아이의 아빠는 아이가 본인의 친자임을 증명하는 유전자검사확인서까지 주민센터에 들고갔지만, 주민센터에서는 혼인관계 증명서와 친모가 출산 당시 미혼임을 증명하는 확인서 등이 없는 경우에는 친부라 해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으며, 법원의 확인을 받아와야 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물론, 아이엄마의 난민사유로 인해 스스로 본국 대사관에 찾아가서 미혼증명서 등을 발급받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따라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들을 발급받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지만, 요건미비를 이유로 출생신고신청의 접수 자체가 거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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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에서는 아이의 출생신고신청을 접수거부하면서, 친모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는 경우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관할법원 가사부에서 ‘친생자출생신고를 위한 확인’을 받는 방법 뿐이라고 하여, 신청인이 변호사를 찾다가 어렵게 찾은 곳_신청인의 사안 자체가 워낙 드문 사건이라 주변에는 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_이 제가 있는 사무실이었다고 합니다.

 

아이 친모의 난민사유와 한국정부에서 인정하는 유효한 신분증이 없어 사실상 무국적자라는 점 등 법원에 의한 친생자출생신고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했지만, 1심에서는 별다른 이유기재없이 ‘이 사건 출생자 출생신고 확인신청을 기각한다’는 결정을, 2심에서도 역시 ‘기각’결정을 , 즉 항고가 이유없으니 기각한다는 결정을 받아들게 되었습니다.

 

1심에서는 이유기재도 없이 결정문이 나왔으므로, 그나마 정성스럽게 이유가 설시되어 있는 2심 판결문의 기각 이유를 살펴보면, 1) 산부인과에서 작성된 출생신고서에 모의 이름, 출생연월일, 국적이 기재되어 있고, 2) 모가 외국인인 때에는 출생신고서에 모의 인적사항란에 모의 성명, 출생연월일, 국적만을 기재하더라도 신고 수리가 이뤄지는 점, 3) 이 사건의 출생신고를 못한 것은 모의 인적사항 전부 또는 일부를 특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모의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므로,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아 친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므로, 해당사항이 없어 기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2심 법원의 결정은 서면을 통해 제출한 신청인의 실질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상황을 기계적으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기각 이유별로 살펴보면 기각 이유 1) '산부인과에서 작성된 출생신고서에 모의 이름, 출생연월일, 국적이 기재되어 있고'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출생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출생확인서에는 친모의 이름과 국적 등이 기재되지요. 그러나 산부인과에서 작성된 출생확인서는 공문서로서의 효력도 인정되지 않는 문서입니다.

이는 다음 기각이유 2)와 연결되는데, 산부인과에서 작성된 출생확인서에 모의 인적사항을 기재할 수 있었고, 실제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출생신고서에도 모의 인적사항을 기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모의 인적사항만 기재를 하면 접수가 된다는 것이 기각 이유 2)'  모가 외국인인 때에는 출생신고서에 모의 인적사항란에 모의 성명, 출생연월일, 국적만을 기재하더라도 신고 수리가 이뤄지는 점'에서 말하는 것인데, 이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 혹은 추측에 불과합니다. 좀더 단정적으로 말하면 ‘거짓’입니다. 출생신고서 모의 인적사항란에 이름, 국적, 출생연월일을 기재한 후 정상적으로 접수가 되었다면 법원까지는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의 아빠가 힘들게 변호사를 찾아다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문기일에서도 재판장 앞에서 분명하게 진술을 한 내용이고, 서면을 통해서도 진술한 바 있습니다. 게다가 2심 기일 당시 재판장은 다시 한번 주민센터에 가서 신청서를 접수하고 접수거부가 되면, 주민센터로부터 접수거부를 한 사실 및 이에 대한 이유를 공문으로 받아서 법원에 제출하면 검토하겠다고도 하였습니다. 이에 저와 신청인은 그 길로 주민센터에 가서 출생신고 담당직원에게 재판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한번 출생신고 신청을 하였지만, 결국 주민센터에서는 이전과 같은 이유로 접수거부를 하였으며, 주민센터로부터 접수거부 사유를 공문으로 받아 법원에 제출까지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최종판단에는 이러한 사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각 이유 3) '이 사건의 출생신고를 못한 것은 모의 인적사항 전부 또는 일부를 특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모의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므로,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아 친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므로, 해당사항이 없어 기각이라는 것'모의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한 것은 곧 모의 인적사항을 증명하지 못하였던 연유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친모에게 유효한 신분증이 없다보니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고, 혼인신고를 못하니 아이를 낳고도 출생신고에 필요한 혼인관계증명서가 없어서 출생신고도 못하는 도미노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였던 것이지요. 결국 친모의 유효한 신분증이 없으니, 친모가 아이 옆에 살아있지만, 정부가 인정하는 문서로서 친모라는 것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는 전무하였으므로, 이는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의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 즉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므로 위 조문에 포섭될 수 있는 사안인 것이지요. 법원의 판단처럼 단순히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해서 출생신고 접수거부가 되었던 사안이 아님에도, 재판부는 마치 저희가 제출한 서면과 입증자료들을 아무 것도 읽지 않고 듣지 않고도 내릴 수 있는 결정을 한 것이지요. 벽에 대고 혼잣말이라도 했다면 답답함이라도 풀렸을텐데 말입니다.

 

결국 대법원에 재항고를 하였고 현재 계류 중에 있지만, 대법원에서 판단하는 사항은 1,2,심과는 달리 원칙적으로 ‘원심의 결정이나 판단사항이 헌법,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을 위반된 경우, 즉 결정에 법리적 문제가 없는지’ 여부만을 판단합니다. 이 사건이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의 적용사안인지 여부는 법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문제이므로, 대법원의 판단이 기다려집니다.

 

다음 저의 글에서는,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경우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의 문제점과 이로인해 논의되고 있는 ‘보편적 출생신고제도’ 및 현행 법안의 개선방향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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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센터 어필, 전수연 변호사 작성

 

소개:

전수연: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등의 인권을 옹호하고 감시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안의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방인(strangers)’들이죠. 그러나 우리 또한 어디에선가는 이미 이방인이며, 혹은 이 땅에서 언젠가는 이방인이 될 것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We are all st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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