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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화장지는 됐고, 맥주를 달라" 코로나 시절, 또 다른 죽음

[코로나 시대의 밀주] 맥주 대란 낳은 자택대피령... 공업용 메탄올에 189명 사망

림수진( icomn@icomn.net) 2020.06.19 10:10

189명이 죽었다. 지난 4월 중순 이후 두 달간의 일이다.

같은 두 달 사이, 1만 5천 명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하고 그와 별도로 6천 명이 범죄에 의해 피살된 상황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미미하여 주목받지 못한 채 넘어갈 만한 숫자일 수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마약 카르텔 조직 간 폭력이 난무하여 죽음이 횡행하는 작금 멕시코에서라면 말이다.

다만, 그들의 죽음이 코로나바이러스와 무관하지 않고 또한 각 지역에 근거지를 둔 마약 카르텔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면, 이들의 죽음 역시 기록될 만하다. 코로나 시대 멕시코에서 발생한, 밀주에 의한 189명의 죽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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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멕시코 당국이 발견한 밀주. 이하 멕시코 푸에블라주 치콘쿠아우틀라시 페이스북 캡처)


맥주 파티를 부른 자택 대피

지난 3월 말, 멕시코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대다수 국민의 자택대피령을 명하기에 앞서 고심했던 부분 중 하나는 '맥주 산업'을 필수 산업으로 분류할지 비필수산업으로 분류할지의 문제였다. 전자로 분류된다면 자택대피 기간으로 지정된 50일간 여전히 생산 활동이 이루어질 것이고, 후자로 분류된다면 이 기간 생산 활동이 중단되는 상황이었다. 의료 관련 산업과 보안 산업, 그리고 생필품을 생산하는 부문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산업들이 비필수라인으로 분류되는 와중이었으니, 맥주 산업 역시 4월 중순부터 부분적 생산 중단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의외의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3월 20일 이후 대다수 시민들이 자택대피에 들어가면서 맥주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출근하지 않는 많은 가정에서 연일 파티를 벌이면서 나라 전체가 맥주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버렸다.

이 상황에 제대로 된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자택 대피가 맥주와 결합하여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일조하고 있는 격이었다. 일단 꺼야 할 급한 불은 각 가정에 맥주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었으니, 당장 맥주 생산 중단이 시급했다. 결국 정부와 맥주 생산 기업들의 협의 하에 4월 초 멕시코 내 맥주 생산이 전면 중단되었다.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금주령이 내려질 때마다 그곳 사람들에게 은밀한 주류 공급을 자처하던 멕시코였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 곳에 맥주를 공급하던 터였다. 공교롭게도 코로나바이러스와 이름이 같은 코로나 맥주를 필두로 전 세계 맥주 시장의 27%를 점하고 있는 멕시코에서 맥주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소식은 어쩌면 코로나바이러스의 등장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화장지 대신 맥주 사재기

아니나 다를까, 광적인 사재기가 시작됐다.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이후 세계 각 국에서 화장지 사재기가 극심할 때도 남의 나라 일이려니 여기고 전혀 동요하지 않았던 멕시코인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세 배까지 가격이 뛰었지만,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맥주를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이 몰렸고, 맥주를 사기 위한 긴 줄이 이어졌다. 뉴스에서는 그들 사이에 '건강한 거리두기'가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는 걱정을 쏟아냈다.

4월 하순으로 가면서 기왕 생산되어 주류창고에 보관되다 한참 웃돈을 얹어서라도 거래되던 맥주마저 사라졌다. 술 값은 치솟았고, 대부분 경제활동이 중단되면서 사람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졌다. 결국 저렴한 가격의 밀주가 등장했다. 웃돈을 얹어 맥주와 술을 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밀주의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았을 터. 맥주 사재기에서 밀린 사람들에게 그나마 남겨진 선택은 밀주였다.

그리고 4월 하순부터 5월 내내 각 주마다 밀주를 마시고 사망에 이르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죽음은 어찌 면하더라도 시력을 잃거나 사지가 마비되거나 식물인간이 되어 버리는 사례들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다.

가파르게 치솟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그래프와 별도로, 또 다른 그래프가 등장했다. 밀주를 마시고 죽음에 이르는 자들의 수치였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그래프 같이 이 또한 가파른 우상향의 패턴을 면치 못하는 듯했다. 숫자만 다를 뿐, 서로 다른 두 개의 그래프는 정점에 이를 기미를 보이지 못한 채, 5월 내내 가파른 속도로 우상향했다.

한방울의 밀주로 식물인간 신세

물론, 이 시기가 아니더라도 멕시코에서 밀주는 언제나 존재했다. 적은 돈으로 쉽게 취할 수 있는 술이었다. 통상적으로 농촌 지역에서 적은 돈으로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먹는 술로, 보통 사탕수수로 만드는 96%에 달하는 알코올이었다.

건강에 치명적이긴 하지만, 취하기까지 정상적인 술값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개의치 않고 마시던 술이었다. 굳이 술로 마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바로 짜 소독하지 않은 소 젖을 먹을 때, 이른 새벽 힘든 일을 앞에 두고 커피 또는 코코아를 타 마실 때도, 사탕수수 알코올 서너 방울 떨어뜨리는 것이 농촌 지역에서라면 일상의 문화였다.

문제는 공업용 메탄올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해 식용으로 쓸 수 있는 에탄올은 진즉 금값이 되어 소독제 시장으로 팔려나간 지 오래였다. 그러다 보니 공업용 메탄올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맥주를 사지 못한 사람들 혹은 그간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96도짜리 알코올에 취하던 사람들이 마신 술에 식용 에탄올 대신 공업용 메탄올이 섞이기 시작했다. 각 주에서 사망자들이 속출했고 동시에 밀주 제조업자에 대한 수사 소식이 들려왔지만, 검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사망자는 189명에 이르렀다.

지난 6월 1일, 코로나바이러스 누적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어서고 사망자 수가 1만 명에 가까울 즈음에 멕시코 정부는 50일간 이어졌던 자택대피령을 해제했다. 확진자 숫자와 사망자 숫자가 누그러져서 취해진 조치는 아니다. 여전히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정점에 이르지 못한 채 거세게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배고픔에 몰린 사람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뉴노멀'이라 불리는 정상화로 돌아섰다. 뉴노멀 이후 지난 보름 사이 확진자는 4만 명이 더해졌고 사망자는 7천 명이 더해져, 6월 15일 현재 14만 명의 확진자가 누적되었고 1만7천 명의 사망자가 기록되었다.

뉴노멀의 개시와 함께 시작된 순차적 정상화 조치 중 정부는 가장 먼저 3개 산업 부문의 정상화를 명했다. 그 3개 부문에 맥주를 포함한 주류 산업이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지난 6월 1일부터 '코로나 맥주'로 대표되는 모델로 그룹(Grupo Modelo)을 위시하여 모든 주류 산업들이 일제히 공장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생산 중단을 만회하듯 '코로나바이러스' 버전의 다양한 맥주들을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없는 맥주가 나왔고, 바이러스 최전선에서 땀흘리는 의료진들에 대한 감사가 적힌 맥주도 나왔다. 그렇게 멕시코에 다시 맥주가 돌기 시작하면서 밀주에 의한 사망자 수는 정점을 찍고 제로를 향해 수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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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멕시코 당국이 발견한 밀주. 이하 멕시코 푸에블라주 치콘쿠아우틀라시 페이스북 캡처)


마약도 만들고 밀주도 만들고

불과 두 달 사이 189명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 시절 밀주 스캔들'을 두고 멕시코 식품안전처장은 밀주 제조업자들이 '매우 긴밀하게 조직된 마피아 집단'임을 언급했다. 물론 그들의 또 다른 이름이 각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마약 카르텔이란 사실은 이미 공공연하다.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이후 미국이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일부 폐쇄하면서 그들의 '사업'에 막대한 손실이 초래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그 와중에 조직원들의 곁다리 수입이었던 주류 유통까지 중단이 되었으니 공업용 메탄올이라도 섞어 밀주 제조에 뛰어들만 했을 것이란 추측이 난무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189명이 죽고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지만 그들의 가족뿐 아니라 대부분 멕시코 사람들 역시 밀주를 만들어 판매한 사람들이 검거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멕시코 식품위생일반법(464조)에 밀주를 만들어 파는 자에게는 최소 1년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분명히 있지만, 작금의 멕시코에서라면 법 적용과 집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상대가 마약 카르텔이라면 더욱 더. 한 달이면 3천 명이 넘게 조직 범죄로 피살되지만 그에 대한 수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멕시코의 치안 부재 현실이 그 방증일 것이다.

게다가 최근 멕시코 정부는 '어지간하면' 조직원들 간의 총격전과 그로 인한 그들 간의 인명 살상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슬쩍 내비치는 중이다. 하루에 1천 명에 가까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오는 상황이 너무 버거운 건지, 아니면 같은 하룻 동안 발생하는 1백 명 남짓한 피살자 숫자가 한 없이 가벼워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니 죽은 자 189명과 시각 장애인 혹은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밀주 피해자들은 코로나 시대 멕시코에서 일엽편주와 같이 떠다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묻힐 만도 할 것이다. 오직 이 시절의 기록 한 부분으로 남겨진 채.

 

*** 오마이뉴스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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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수진(Lim, Su Jin),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

(Facultad de Ciencias Políticas y Sociales, Universidad de Colima)

 

일곱 살 먹던 해 겨울, 할머니를 따라 서울에 갔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서울역 광장에 단아하게 선,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서울역사 앞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각인이었습니다. 이후 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였습니다. 결국, 이다음에 크면 반드시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진 못하였습니다. 대신, 지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핑계 삼아 원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 서른 살이 되던 2001년, 코스타리카로 갔습니다. 19세기 말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의 증손자 쯤으로 신분을 둘러대고 커피밭에 ‘위장취업’을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커피를 따면서 3년을 보냈습니다.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는 저 ‘불량노동자’를 걱정하며 자신들이 딴 커피와 음식과 마음을 나눠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이 니카라과에서 건너온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들의 삶을 좇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이후 현재,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주’, ‘국제분쟁’, ‘지정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2010년 이후 멕시코 연방정부 고등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국가연구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 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21세기 중앙아메리카의 단면들:내전과 독재의 상흔>, <세계의 분쟁(공저)>, <디코딩라틴아메리카: 20개의 코드(공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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