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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난민은 어떤 사람들인가

권영실( icomn@icomn.net) 2020.06.26 13:56

내 친구 무삽

무삽은 내가 변호사가 되고 처음으로 맡은 난민사건의 의뢰인이다. 이집트 출신의 그는 정치적 사유로 인한 박해를 피해 아내와 함께 한국에 와서 난민신청을 했다. 그러나 극도로 낮은 난민인정률을 보이는 한국 정부는 그의 난민신청을 거부했고, 불인정결정에 대해 법원에서 다투고자 소장을 제출한 상황이었다. 아쉽게도 이집트에서 그가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할만한 증거는 딱히 없었다(누가 급박하게 도피하는 상황에서 증거자료를 수집해서 온단 말인가!). 이집트에 대해서는 피라미드와 클레오파트라 밖에 몰랐던 나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국가정황정보(Country of origin information: COI)를 찾기 시작했다. 무삽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몸바쳐 저항해온 장기집권 군부세력, 이집트 혁명, 아랍의 봄, 이후 정세변화에 대해, 그리고 이집트의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활동해온 청년들과 인권단체의 활동사항에 대해 정리해나갔다.

수 차례의 면담과 저녁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연락하며 소송을 진행한 끝에 그와 그의 아내는 드디어 난민인정을 받게 되었다. 2016년 한국에 온 지 3년이 다 되어서야 받은 결과다. 그 기간 동안 무삽 부부에게 귀여운 딸도 생겼다. 이집트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던 그는 한국에서도 이주민과 난민의 인권보장에 관심을 가지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준비하는 크고 작은 행사에 당사자로 때론 활동가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자기 살기도 버거울텐데 그 와중에 인권활동을 하는 무삽은 공익변호사라는 명함을 갖고 있는 나를 무색케 하였다.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 크리스마스에 우리집에 초대해서 이집트 음식을 대접했다. 그도 딸 생일파티에 나를 초대해 놀러가기도 하면서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를 넘어 친구 또는 동료 사이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 그의 집에는 그의 어린 딸만큼 큰 반려견 외에도 또다른 가족이 같이 살고 있었다. 이집트에서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와서 난민신청을 한 중년의 여성과 그가 키우는 고양이에게 방 2칸 중 한 칸을 기꺼이 내어준 것이다. 비좁은 집이지만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온기가 느껴졌다. 주말에는 인심 좋은 이 부부의 집을 방문하는 이집트 친구들로 늘 붐볐다.

난민은 어떤 사람들인가? 제주 예멘난민 사건 이후 2년이 흘렀으나, 난민을 두려운 존재 또는 어떤 이득을 얻어내려는 무단칩입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하다. 그러나 낯선 이들과의 만남과 공존은 성숙한 사회의 기본적인 전제이다. 본국에서 박해 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피난처를 찾아 떠나온 이들에게 손 내밀어 주고 이 땅에 있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 아닐까? 세상을 떠돌던 사람들,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떠돌이란 말 자체 속에는 쓸쓸함과 취약함이 배어 있다. 자신의 본국에서도, 이주해 온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도 자신을 지키기 어려운 존재가 난민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에서 내몰린 이주민들은 대부분 한국 정부의 재난지원금 대상에서도 배제되었다. 이와 같이 특히 사회가 위기에 놓였을 때, 취약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가중되기 마련이다.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난민인권네트워크에서 주최한 난민의 날 기자회견 겸 당사자발언대회에서 무삽부부는 한국사회가 공동체의 구성원인 난민들의 존재를 잊고 있다며,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난민들을 기억해달라고 촉구했다. 이후에도 한국에서 난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같이 맞서 싸우자며 무삽은 계속 나를 재촉하고 있다. 그는 내 친구이자 나의 파수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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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0. 6. 20. 난민의 날 기자회견 겸 당사자발언대회, 난민인권네트워크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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