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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6·25전쟁 70주년? 민간인 집단학살 70주년!

이창수( icomn@icomn.net) 2020.06.26 13:58

우리 사회는 시작한 때를 중시한다. 그 여파는 이 시작된 사변의 정당성이나 부당성의 근거에 불과하거나 그 사태가 끝난 시점은 늘 모호하다. 일이 벌어진 날을 집단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 사회의 공식적인 (통치자와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즉 당대의 공식적인, 주류의 역사 시각이 반영된다. 당대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이어서 역사적인 명명을 할 경우, 사태의 본질보다는 ‘시작’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매년 제사하듯, 복귀하고 기억하는 ‘공식’적인 행사를 되풀이 하게 된다.

‘제주4·3사건/항쟁’이나 ‘여순10·19사건/항쟁’, 또 1960년 민주학생시민봉기를 ‘4.19’라고 한다든지 “광주민주항쟁”을 ‘5·18광주항쟁’이라고 부르든지 따위가 그런 것이다. 발생한 ‘날짜’로 명명되었을 때든 아니듯, 우리 사회는 숫자에 부여하는 의미는 각별하다. 12진법의 60주년이든, 10진법의 10년 20년 50년 70년이든 특별히 몇 년씩을 묶어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사회적인 사건 ‘발생’일을 그 사건을 부르는 국가 또는 사회의 관습을 잘 따져 보면 그 사건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사건의 발생이 그날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잠재되었던 대립과 모순들이 그 시점에 발생한 것이다. 3·1만세, 4·3이, 10·19가 그렇고, 6·25가, 4·19가, 5·18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으로 전면에 부각된 그 날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둘째 그 사건이 끝이 모호하거나 진행 중이다. 중요한 정치 사건들은 발생하여 다시 원상태로 복원되었다기 보다 다른 유사한 사건들과 연계를 갖고 더 큰 변화를 향해야 진행된다. 따라서 그러다 보니 끝난 날짜를 정하기 어렵다.

셋째 예외적으로 그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과거와 미래가 단절되는 경우도 있다. 8·15와 5·16이다. 과거 일제 통치에서 완전히 단절되는 새로운 기점으로 8·15는 끝이자 시작을 의미한다. 또 5·16도 민주정부의 끝이자 헌정 중단과 이후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시작이다. 과거의 끝이자, 미래의 시작을 의미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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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25일은 전쟁이 발발한지 70주년 된 때다. ‘6·25’ ‘사변’, ‘동란’에서 ‘전쟁’으로 명명되었다가 요즘은 6·25라는 전쟁의 발생일 보다는 전쟁이 갖는 국제적인 시각인 ‘한국전쟁’으로 기록되거나 회자된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이런 ‘전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민간인 학살 문제다. 공식적으로 지휘체계를 갖춘 군인들 간의 전투가 아닌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한 행위는 전투행위도 아니고, 전쟁의 한 수단이 될 수도 없다. 그것은 국제법적으로 공소가 배제되는 ‘전쟁범죄’의 한 유형에 가까운 것이다. 6·25전쟁이나 한국전쟁이라는 말로는 민간인들에 대한 집단학살의 실체를 담을 수 없다. 그래서 ‘한국전쟁 70주년’을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학살 70주년’으로도 기억해야 한다.

6·25전쟁 70년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발발을 기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행히 올해 과거사정리법이 국회를 통과해 그동안 은폐 되었던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밝힐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지만 본질은 여전히 전쟁의 발생이 아니라,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있다. 남과 북은 대결과 대화를 정권의 필요에 따라 해 왔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끝낼 것인가? 민간인 학살의 피해 문제를 남과 북이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전쟁 기간 중의 ‘불법’과 ‘반인륜’ 행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와 그 학살된 민간인들과 그 유가족들의 명예를 어떻게 예우할 것인가를 논의할 수 있는 신뢰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국가는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던 그 시신을 매장한 지역의 전면적인 유해발굴을 공식적으로 해야 한다. 유가족들에게 가능하다면 유해를 찾아 주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 군인이었든, 민간인 피학살자든 그 유해를 동등하게 발굴해야 한다.

그런데 전쟁기 민간인 학살 70주년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나 할까? 그 유가족들이 국가와 사회의 냉대와 멸시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고, 왜곡된 삶을 살아 온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전쟁기 민간인 학살 70주년을 기억하기 위해서 예산 1푼도 배정하지 않은 이런 상태가 제대로 된 정치인지 모르겠다.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민간인 학살 70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 그것을 제대로 진상조사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힘쓰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또 한과 고통으로 살아온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6·25 전쟁 70주년의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평화의 메시지를 제시했지만, 그 평화가 여전히 피학살자 유족들을 향하고 있지는 않았다.

전쟁 발발 70주년의 기념할 일이 아니라 전쟁 상태를 완전히 끝내는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 그게 인권이고, 평화고, 번영이고, 통합이다. 올해는 전쟁기 민간인 학살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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