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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간을 위한 채식

박정희의 동물이야기 제11탄

박정희( icomn@icomn.net) 2020.06.30 11:56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는 항상 “동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결국 나의 개인적 성격상 꼭 몇 가지를 강하게 말하고 만다. 이런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나를 특이한 사람으로 보거나 혹은 불편해한다. 정확하게는 표현하자면 상당히 불편해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런지 얼마나 되셨어요?”, “불편하지 않나요?”, 혹은 “어떻게 고기를 안 먹을 수 있어요? 건강이 유지되나요?” 심지어는 “단백질 섭취는 어떻게 하시나요?”

 

그렇다. 나는 동물권활동가(Animal Rights Activist)이며 매우 까칠한 채식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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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테리언이지만 아직 비건은 아니다. 나의 먹거리에는 어패류 허용되기 때문이다. 핑계를 대자면 김치에 들어가는 젓갈류도 피하기 힘들고, 국물 내는데 기본이 되는 새우, 조개나 멸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채식주의자를 정확히는 페스코(pesco) 채식주의라 부른다.

 

나는 어머니의 강박에 가까운 “골고루, 영양학적으로 균형”을 이룬 식단에 의해 자라왔다. 다시 말하면 고기를 싫어하는 체질이거나 건강을 위한다거나 혹은 특별한 종교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나에게 채식은 내가 주장하는 기본 권리이다. 고기가 넘쳐나는 2020년 대한민국에서 여기저기에 나는 당당히 소리쳐 “채식권”을 요구한다.

 

개인적으로 왜 채식을 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여기에 이야기하고, 나아가 나와 같은 결심을 누군가는 하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2011년 대학에서 파면 그리고 구제역

 

2011년 겨울 대한민국 뉴스는 “구제역”이라는 단어로 도배된 적이 있었다. 누구든 기억할 것이다. 그때 본 살처분 동영상이 나에겐 그들(동물)에 대해 행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당시 나는 20여 년간을 재직했던 전주기전대학으로부터 이사회의 비리에 대항하여 싸운 결과로 ‘징계파면’처분을 받았다.

 

내 처지가 살처분되는 돼지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어서인지 다른 이들보다 더 고통스럽게 그 상황이 받아들여졌고,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살처분의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 공부해보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구제역”이 얼마나 무서운 질병이기에 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걸릴 가능성만으로 저토록 무자비하게 죽일까를 혼자 고민하다가 “구제역” 질병을 찾아보았다.

 

구제역(口蹄疫, 영어: foot-and-mouth disease, hoof-and-mouth disease, 학명: Aphtae epizooticae) 또는 입발굽병은 소와 돼지 등 가축에 대한 전염성이 높은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하나이다. 사슴이나 염소, 양과 기타 소과 우제류 가축들, 그리고 코끼리, 쥐, 고슴도치 등 발굽이 두개로 갈라진 가축들에게 감염된다. 라마, 알파카도 가벼운 증상을 보일 수 있으나 저항력을 가지고 있고 같은 종의 다른 동물에 전염시키지 않는다 - 위키피디아

 

알아보니 구제역은 발병하면 전염성이 강한 질병임에는 틀림 없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전염되는 질병도 아니고(섭씨 50도 이상에선 완전 멸균됨) 더구나 성체가 된 동물에서 감염사망률이 5% 이하로 매우 낮으며, 대부분 2주내에 항체가 생겨 자연치유 된다. 즉 치사율이 높은 질병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들을 “왜 죽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구제역은 백신이 있어 접종하게 되면 살처분하지 않아도 되는 질병인데 왜 굳이 왜 매몰하여 살처분하는 것일까?

 

3가지 정도의 이유로 설명된다.

 

첫째는 백신처리 비용이 비싸다는 비용 측면과 둘째는 백신 접종시 청정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돼지고기 등 축산물 수출이 곤란하다는 다른 차원의 비용측면과 (백신을 접종한 2000년에는 접종 완료 후 약 1년 후에 청정국 지위를 획득한 바 있다. 백신은 마지막 접종 후 1년이 지나야 하나 매몰 처리시 마지막 발생 후 3개월이 지나면 청정국 지위 획득이 가능하므로 빠르게 청정국 지위를 얻어 수출에 영향이 적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백신을 접종한 가축의 축산물을 공급할 경우, 소비자 신뢰가 저하되어 전체 축산물 소비가 감소할 우려가 있다는 측면이다.

 

쉽게 말하자면 인간을 위해 사육되던 동물들이 더 이상의 경제적 가치나 소용이 없어지면 가차 없이 잔인한 태도로 “살처분”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대한민국 사회의 잔인함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진다.)

 

이렇게 350만 마리가 땅속에 묻히는 상황은 결국 당시 내가 겪던 상황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이렇게 잔인하게 동물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만 여기는 사회에서는 ”고기 먹지 않기”를 택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개인의 결정이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하거나 파급효과가 그리 큰 것을 아니었으나 당시 개인적으론 매우 비장한 결심이었고, 생각하지 못한 많은 어려움이 따라왔다. 이러한 나의 결정에 친구나 가족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네가 그런다고 뭐가 변하니?” 었다.

 

스스로 그들을 설득할 지식과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나는 관련 자료를 뒤지고 서적들을 하나둘씩 읽기 시작하였다.

가장 처음 읽은 책은 No-nonsense 시리즈의 “동물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였다.

 

심각한 CAFO(공장형 밀집 사육)

공부할수록 생각하지 못했던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시작했던 고기(소, 돼지 닭 등) 안 먹기는 점점 계란, 우유도 그리고 큰 생선들까지로 넓어졌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가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리고 싶었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강연도하고, SNS를 이용하여 큰소리로 이야깅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도축하지 않는다고 혹은 본 적이 없다고 더는 모른 체했다가는 나의 이성과 양심이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류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도살되는 식용동물은 2백5십억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인구를 70억으로 기준하면 인구의 3.6배에 해당하는 동물들을 인간이 잡아먹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육류소비가 가능한 것은 “공장형 밀집 동물사육시설(CAFO : 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 때문이다.

 

밀집 사육을 하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신봉자인 인간들에게는 “최소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얻기 위해, 최소 공간 안에 얼마나 많은 동물을 밀어 넣을 수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니 그 시스템 안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 아니 최소한의 배려는 그저 불필요함일 뿐이다.

 

공장형 사육장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물들은 평생 항생제를 맞고 산다. 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항생제의 절반이 가축들의 생명을 부지하는 데 사용된다. 놀랍지 아니한가!

공장형 사육장에서 동물들은 소비자의 구미에 맞게 더 많은 고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몸도 변형된다. 닭은 가슴살을 기형적으로 크게 살찌우며, 성장촉진을 위해 엄청난 양의 성장호르몬이 주입된다. 돼지의 경우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동시에 칼로리 소모를 최소화하여 무게를 늘릴 수 있도록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송아지들은 연하고 값비싼 육질을 유지하기 위해 철분을 제거한 사료를 먹인다. 이 때문에 만성 설사에 시달린다. 젖소는 자연 상태보다 열배 더 많은 우유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호르몬제를 맞는다.

 

이들은 살아 있어도 생명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원하는 공산품일 뿐이다.

그러니 그들의 고통은 너무도 당연하다.

젠장! 이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육식을 저렴하게 즐기기 위한 이 잔인한 시스템은 환경오염 및 기후 위기의 주범이기도 하다.

 

더불어 살기 위한 선택, 채식

 

인간이 만든 문제는 결국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나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여러 유럽 나라에서는 가축에 대한 잔혹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농업법에 넣기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U(유럽연합)에서는 모든 공장형 사육 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고 가축에 성장호르몬 사용을 금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모든 소가 일년에 최소 90일은 자유롭게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하고, 알을 낳는 암탉과 새끼를 낳는 암퇘지들에게는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는 짚을 깔아주어야 하며, 오리에게는 목욕용 물을 제공해야 한다는 법이 정해졌다.

노르웨이에서는 닭의 부리 자르기가 금지되었고, 가축을 발로 차거나 때리거나 낙인을 찍어서도 안 된다. 영국에서는 암탉의 산란 주기를 쉼 없이 하게 하는 강제털갈이가 금지되었다.

 

육류소비가 큰 지역이지만 미국인들의 약 6%가 채식주의자인데 의사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채식주의가 보편화 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15세~18세 사이 청소년의 8%가 채식주의자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는 약 10%가 채식주의자이다. 우리나라는 약 2% 정도 채식을 하지만 다행히 많은 사람이 이미 육식 소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고 채식주의자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 집안도 나의 지속적인 투쟁 때문에 나와 같은 채식주의자가 둘이나 더 생겼다. 채식을 시작한 친구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주변의 변화만이 아니다. 학교도 변하고 있다. 얼마전 서울시교육청이 기후위기 시대 생태전환교육의 일환으로 채식선택권을 도입한다는 반가운 뉴스도 나왔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까지도.

지금의 이러한 육식 위주의 식문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고기가 그냥 고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 고기는 즐겨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생명의 죽음이 아니라 그 안에는 엄청난 고통과 어마어마한 물과 나무가 희생된 것이고 아프리카 어느 지역 어린아이의 굶주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작 싱어(1902-1991, 작가)가 남긴 말을 공유하겠다.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오늘날의 상황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굶주림, 세계적인 기아, 잔혹행위, 폐기물, 전쟁 등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채식주의는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나는 채식주의에 상당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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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 전주완산여고 교장

동물을 위한 행동 공동대표

딸 1, 강아지 5, 고양이 7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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