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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A good Speech

새로운 미디어엔 새로운 소통 예절

한성주( icomn@icomn.net) 2020.08.05 15:00

시대가 변하고 언젠가부터 우리는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과거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거나, 편지를 띄우거나, 일대일로 전화통화를 하는 것을 넘어서 인터넷이라는 공간과 SNS를 활용해 개인이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할 수도 있고, 남이 써놓은 글이나 기사에 댓글을 통해 지속적인 상호 의견 교환도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글로 전하는데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고, 거기에 사진이나 동영상도 자유롭게 추가를 할 수 있으니 기존의 소통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인데 우리는 이 소통방식에 대한 예절을 아직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새로운 미디어가 가진 익명성에 기대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너무 많아진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에 대한 악플입니다. 댓글은 소통의 수단이 되지만 악플은 전혀 소통의 수단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런 악플은 본인이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안주거리로나 삼는 것이라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너무 쉽게 본인과 가족에게 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연예인을 두고 뚱뚱하네 못생겼네 하면서 ‘나는 그가 별로라고 생각한다’ 고 술자리에서 나 혼자 그를 퇴짜(?) 놓는 경험 한 번씩은 다 있지 않나요. 그런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십거리 삼는 것을 넘어 굳이 본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관련 기사에 악플로 험담을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표현의 자유라거나 여론 소통이라고 잘못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자유, 무책임한 욕설을 통한 소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씻지 못할 상처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 보니 최근에는 악플에 대해 법적인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과거엔 이미지를 고려해서 그저 경고만 하고 선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갈수록 폐해가 심해지다 보니 언젠가부터 선처 없이 끝까지 적발하여 처벌하게 되었지요. 기대하기엔 이런 아픈 과정을 거쳐서라도 새로운 소통방식에 대한 예절이 정립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이야기를, 내 의견을 들어야 하는 사람과 듣지 말아야 할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일단 첫 번째가 될 것입니다. 올바른 구분을 위해서는 내가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생각을 해봐야겠죠. 명절에 친척 어른들이 안부를 묻고 격려하는 것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판 모르는 연예인과 운동선수들한테는 어찌 그리 적극적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지 의아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대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스킬이 필요합니다. 모르는 사이라면 상대방의 나이가 많건 적건 존댓말로 시작을 하고, 서로를 소개하고 악수를 하거나 눈을 맞추고 웃으면서 시작을 하죠. 이후에 대화가 이어지는 중에도 상대방의 눈을 보고 반응을 살펴 관심 있게 듣는지 지루해 하거나 불쾌해 하지는 않는지도 보게 됩니다. 조언을 하거나 설득을 하려면 더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당연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하기와 듣기는 특별히 교육을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차차 경험을 통해 쌓이는 대화의 기술인데,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유난히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눈치가 없어서 스스로 습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의 대화 스킬을 ‘예절’ 이라는 이름으로 전수합니다. 예절은 고압적인 수직관계의 상징이 아니라 원활한 소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결국 최고의 대화 스킬 중 하나는 대화의 예절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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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rary of Congress wikimwdia commons)

연설의 경우 예전 영국의 수상 처칠은 “좋은 연설은 여성의 치마와 같아야 한다” 고 했습니다. “주제를 모두 담을 만큼 길어야 하고, 관심을 끌어낼 정도로 짧아야 한다.“ (“A good speech should be like a woman's skirt; long enough to cover the subject and short enough to create interest.”― Winston S. Churchill) 풀어서 말해보자면 연설이 너무 짧아서 필요한 내용을 빠뜨려서도 안 되고, 반대로 너무 길어서 듣는 청중의 관심을 끌지 못해서도 안 된다는 훌륭한 말입니다. 그런데 간혹 이 말 뜻을 오해해서 ‘연설과 치마는 짧을수록 좋다’ 고 어이없이 실언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거야말로 정말 잘못된 연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는 비단 연설 뿐만 아니라 모든 소통에 다 공통적으로 해당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지금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되 여러분이 지루해서 스크로를 내려버리지 않을 만큼 짧아야 하니까요.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간편하고 폭 넓은 소통이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하는 데에 사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예절이라는 스킬을 먼저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에 적합한 새로운 예절은 우리 세대에서 정립해야 할 조금은 시급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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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 한의사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IBM Korea 에 잠시 근무를 했다가 세명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성주한의원(경기도 성남시 판교지역) 원장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센인들을 위한 회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고, CBS 팟캐스트 '스타까토' 에서 정치시사관련 인터넷방송을 한 적이 있으며 국방FM '너를 사랑하기에 전유나입니다' 에서 수요일 고정 코너로 '한성주의 세상풍경' 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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