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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낀세대의 배움 자세

김수연( icomn@icomn.net) 2020.10.04 16:27

요즘 대화하다 들은 말 중에 잔상이 오래 남은 말이 “노인의 미래는 과거야”라는 말이다. 나이 들면 할 말이 과거에 자기가 뭐를 경험했고 뭐를 이루었는지 그런 말들밖에 없다는 뜻이다. 나이 지긋하게 드신 집안 어르신의 그 말을 듣고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 주변의 어르신들을 떠올렸다. 수긍이 어느 정도 가는 말이었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유행어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니까.

 

어릴 때부터 나보다 나이 한참 많은 어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추석, 설날이 되면 코흘리개 사촌들하고 노는 것은 둘째 여동생한테 대장 역할을 맡기고 삼촌, 고모들 사이에 껴서 막내 역할을 자처하는 것을 즐겼다. 내가 잘 모르는 어른의 세계는 그 자체로 신비롭고 흥미진진했다. 나는 딱히 아는 게 없으니 그저 입 조용히 닫고 두 귀만 쫑긋 열어둘 뿐이었지만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그때 나에게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알려준 어른들은 이제 거의 돌아가셨다. 내가 그 당시의 어른들만큼 나이를 먹으니 내게 남은 어른이 별로 없다. 명절은 예전만큼 북적거리지 않고 쓸쓸해졌다. 어른의 수가 적어졌다고 해서 아이들 수가 상대적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다. 지금의 시대는 하나둘 낳고 기르기도 바쁜 세상이니까.

 

어른이 됐다고 해서 내가 어릴 때 경험한 ‘라떼는 말이야~’를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수하지도 않는다. 어른의 ‘라떼는 말이야~’보다 아이들의 ‘지금은 말이죠~’가 더 필요한 세상이 돼버렸다.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는 지금 중3, 고1인 우리 아이들을 선생님으로 만들고 있다. 요즘 떡상하는 유튜버, 걸그룹이 누구인지부터 전 세계 디지털 흐름까지 아이들은 꿰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울 때 그저 토 달지 않고 넙죽 엎드린다.

 

뜨고 지는 콘텐츠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나 같은 직업군은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유행을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다 보면 유행의 사이클이 정말 짧다고 느낀다. 갑자기 뜬 밈이 인터넷을 한참 달구다 어느 날 사라지기도 하고 구독자 수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올라갔던 인기 유튜버가 하루아침에 악플의 대상이 되는 광경도 수시로 목격한다. 며칠 인터넷을 안 보면 못 알아듣는 뉴스도 부지기수다.

 

알고 가자니 피곤한 디지털 세상이지만 긍정의 효과도 만만치 않다. 아날로그의 어른이 사라진 자리를 이젠 디지털 어른이 대체하고 있다. 실제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없다. 전문가의 생각과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그 세상의 어른이 될 수 있는 곳이 인터넷이다. 새로 산 가전제품의 사용법이 궁금하면 검색창에 ‘○○ 사용법’을 친다. 바로 친절한 언어로 설명한 영상이 수십, 수백 개 나온다.

 

그래도 난 여전히 아날로그 인간이라서 그럴까. 누군가에게 직접 전해 듣는 삶의 지식과 지혜를 아직도 좋아한다. 그 자리에서 궁금한 것을 되묻고 바로 의문을 풀 수 있는 따끈한 관계를 좋아한다. 얼마 전, 자동차 블루투스 사용법을 내게 묻던 집안 어르신이 20여 분 동안 직접 시연을 포함한 설명을 듣고 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세상 살아가는 머리가 한 가지 더 똑똑해졌다. 알려줘서 고맙다”라고.

 

실제 생활에서 배움을 주고받는 관계는 어느 정도의 인내심과 애정이 필요한 관계다. 그 옛날 경청하기 위해 오랫동안 방석에 앉아있던 내 다리의 인내심은 쥐가 나는 것으로 표현이 됐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한 어른의 애정은 과장된 몸짓과 뜨끈한 미소로 표현됐다. 이제 나는 낀세대가 되어 유튜버의 몸짓과 미소를 익히고 있지만 종종 아쉬울 때가 많다. 변화는 그렇게 아쉬움을 동반하면서 오는가 보다 하고 인정하니 어느새 새로운 시대의 명절도 반이 지나가고 있다. 어느 날 사라질지도 모를 명절도 지금 즐기는 것으로 넘어가 본다. 해피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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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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