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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재심을 통한 과거청산의 한계와 제2기 진화위 출범

이창수( icomn@icomn.net) 2020.11.20 09:05

나는 지난 11월 16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는 4·3수형생존인 8명의 재심 첫 재판을 참관했다. 4·3당시 군법회의와 일반법원에서 재판의 불법행위가 있어 형사재판을 다시 한 것이다. 이날 재판은 청구인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고 재심개시결정을 위한 심리가 충분하다고 판단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결심재판이 되었다. 즉 검사는 이들 모두에 대해서 기소내용을 여러 정황을 갖고 죄명을 특정한 뒤, 이를 입증할 만한 형사기록 등을 찾을 수 없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죄”를 구형했다. 검사는 고통을 입은 재심 청구인들에 대해서 사과의 말도 덧붙였다. 검사측이 무죄구형을 구형하자, 법정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있었다. 오는 12월 7일 선고가 남았지만, 청구인들의 승소가 예상된다. 그런데 청구인들의 변호인들은 공소기각 판결을 원한다는 요지의 의견을 냈다.

정부 수립과 연이은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사건 가운데 수형자명부, 판결서, 사형집행명령서 등이 존재해 당시 (형식적으로 나마) 재판이 있었다고 추정해, 재심을 신청해 인용된 사건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2019년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은 제1차 4·3수형생존인 18인에 대한 ‘공소기각’ 판결했다. 2020년 1월 20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여순사건 관련 사형돈 고 장봉환 씨에 대해서 ‘무죄’를 판결했다. 올해 2월 14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이른바 보도연맹 관련자 고 박영조 씨등 6명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여순사건, 보도연맹 관련 재심 사건에서 검사는 무죄를 구형했다.

공권력의 불법적인 행사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그 유가족들의 명예가 재심을 통해서 회복되는 것은 당연하고 또 현행 제도 하에서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4·3수형생존인들의 제1차와 제2차 재심에서 검사측은 “공소기각”과 “무죄”로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다른 구형을 했다. 공소기각은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에 위반해 그 공소제기 자체가 무효인 경우인데 제1차 4·3수형생존인들의 재심 사건에서는 관련 재판기록이나 판결문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검사가 공소사실을 특정하지 못한다는 점을 검사측이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여순사건 재심 때에 재판부는 공소의 사실을 내란죄 등을 특정했지만, 이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여 무죄를 구형했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관련 재심 사건에서 공소기각 결정이나 무죄 판결은 청구 피해자와 그 유가족의 피해를 법적으로 구제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건의 재심과 달리 당시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일부 판결문이 있다 하더라도 관련 수사기록이 없고, 피해자가 그런 재판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부재한 상태에서 검사의 공소제기 과정에 불법에 있었든, 공소제기는 적합한데 증거부족 등으로 무죄를 판결했든 재심은 당시의 재판이 있었음을 전제해야 한다.

재심을 통한 과거청산 사건의 피해 구제는 법원이 과거 국가의 잘못을 명백하게 시정해서, 피해자에 대해 전과기록을 삭제하고 피해에 대한 형사보상과 손해배상을 통해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유효한 방식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여전히 미흡하기 짝이 없다.

최근의 재심을 통한 과거청산 또는 피해 회복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재심 사건은 당시의 재판(군법회의 포함)이 존재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재심 청구자들의 진술이나 정황으로 보면 외견상의 재판도 없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당시에 재판을 통해서 처형한 것이 되어 버린다. 진실과 거리가 멀다.

둘째 재판의 흔적인 수형인명부나 사형집행서와 같은 공식 문서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단편적이어서 재판관련 기록을 전부 찾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당시 동일한 ‘재판’을 받아도 문서를 발견하지 못하면 재판에 의해 처벌된 것으로 입증하지 못해 재심을 신청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피해 회복 과정에서 차별과 배제가 발생한다. 이것 역시 당시 피해와 그 규모를 진실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

셋째 재심은 피해 당사자와 그 유가족이 하게 된다. 즉 당시의 대규모 처벌이 있었고, 사회정치적인 문제로, 이웃과 마을이 파괴되고, 마을 간에 적대적인 분위기 등 사회적인 문제가 사상되고 피해 당사자 개인의 문제로 치환되어 결과적으로 진실의 온전히 복원되긴 어렵다.

넷째 최근 재심에서 검사측이 ‘전향적으로’ 구형한 ‘공소기각’이나 ‘무죄’나 법원이 거기에 상응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그 구형과 판결의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수사기록과 판결 자료를 등이 존재하지 않아, 공소사실을 특정하지 못하거나 공소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구인들은 그 피해를 재판을 통해서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누가 어떤 근거로 피해자들을 체포하고 고문해, 어떤 재판 절차를 통해서 어떻게 복역시키거나 처형했는지는 수사되거나 조사되지 않았다. 또 어떻게 그런 불법이 가능했는지, 경찰과 검사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다.

재심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단순히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거나, 검사가 공소사실을 특정하지 못했거나 그 사실을 입증을 포기한 것을 승인하는 판결은 오히려 당대의 진실을 복원하려는 사회역사적인 당위와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재심을 청구한 4·3수형생존인들, 여순사건 피해자 유가족, 보도연맹 유가족들은 명예회복을 위해서 현행 소송법 절차를 활용한 것이다. 이것은 명예회복을 완전히 회복한 것도, 진실이 규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 검사나 법원은 관련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당시의 기소와 재판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당시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진실 규명을 담은 4·3법 개정,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담은 여순특별법 제정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오는 12월 10일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진실의 실체를 밝히고, 피해 당사자와 그 유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이 여기 있다. 피해자 모두를 위한 정의, 그 명예회복을 위한 진실 찾기, 거기에 상응하는 국가의 책임있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PSX_20201116_190936.jpg

(사진 설명: 지난 11월 16일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 앞, 4.3수형생존자 재심청구인 김두황(83세) 씨 등 6인과 재심청구과정에서 고인이 되신 2분의 유가족들이 재심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이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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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법인권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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