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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국의 창세 신화와 여신 여와(女媧)

김성순( icomn@icomn.net) 2021.01.22 12:54

SNS에서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왔던 분께 칼럼 제안을 받고 흔쾌히 수락한 후 줄곧(실은 아주 가끔 한 번씩) 생각했던 것이 어떤 내용으로 칼럼을 끌어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분이 칼럼을 제안해온 것은 내가 주로 SNS에 올렸던 내용이 나의 전공인 종교학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그 얘기들을 듣고 싶어서일 거라는 짐작에, 그냥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얘기들을 써보기로 했다. 대학에서 내가 가르치는 수업이 <불교와 전통문화>, <종교와 문화>, <중국의 종교와 민속> 이런 주제이기 때문에 종교학을 범주로 정하면 칼럼을 쓸 소재가 넘치게 된다는 것도 그 한 이유이다.

종교학에서도 조금 더 범주를 좁히면 신화와 전설 내지 민담으로 정하는 것이 가장 독자들의 흥미와 가독성을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신화는 독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해석의 확장성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인류가 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아득한 근원을 향한 노스텔지어의 원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신화, 그것도 세계의 시작을 알려주는 창세신화로 이 칼럼을 시작해보려 한다. 먼저 우리가 속해 있는 동북아시아에서부터 메소포타미아의 고대근동, 이집트, 아프리카, 북미원주민의 신화로까지 서서히 지평을 넓혀가면서 차분하게 그 이야기들의 줄거리와 그에 대한 해석을 곁들여 칼럼을 진행해보기로 한다.

첫 번째로, 중국의 창세신화이다. 고백하거니와, 중국의 신화를 맨 먼저 다루는 건 순전히 지난 학기의 수업을 진행했던 기억과 자료가 아직 남아있어서 칼럼 쓰기 편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할 중국의 창세신화는 여와(女媧) 혹은 여왜로도 부르는 여신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이다. 여와에게는 우주만물을 열었던 창세신(創世神)과 인류의 조상으로서의 시조모신(始祖母神)의 성격이 공존하고 있다.

여와의 창세신으로서의 성격은 찢어진 하늘을 기웠다는 ‘여와보천(女媧補天)’의 신화에서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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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뱀모양의 복회와 여와가 서로의 꼬리를 틀고 있는 모습, 위키백과)

 

『태평어람(太平御覽)』에서는 『풍속통의(風俗通義)』를 인용하여, 천지가 열릴 때 아직 인류가 없었는데 여와가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훗날 인간 세상에 한바탕 커다란 재난이 발생하여 사극(四極; 동서남북)이 무너지고 구주(九州)가 갈라져 불이 타오르고 홍수가 범람하면서 인간들이 고통을 겪을 때, 여와가 이 큰 재난을 없애기 위해 ‘오색돌’을 다듬어 구멍난 하늘을 틀어 막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오색돌’을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근본 물질로서의 오행(五行; 금목수화토)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러한 유추에서 좀 더 나아가면 여와가 태초의 카오스 상태에서 오행의 상생상극을 바탕으로 하는 순환적 질서를 정립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여와의 시조모신으로서의 성격은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서 여와가 “고대의 신성한 여인으로서 만물을 화생시킨다”고 서술한데서 잘 드러난다. 『산해경』 「대황서경(大荒西經)」에서는 인류의 시조모신으로서의 여와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열 명의 신이 있는데 이름을 여와장(女媧腸)이라고 한다. (여와는 이렇게) 신으로 변하여 율광야(栗廣野)에 사는데 길을 가로질러 살고 있다”

 

진(晉)대의 학자인 곽박(郭璞, 276-324)은 이 구절에 대해 “여와는 옛날의 신녀(神女)이자 제왕(帝王)이다. 사람 얼굴에 뱀의 몸을 했으며 하루에도 70번 변한다. 그 배가 이 신들로 변하였다”고 주석하고 있다. 여와가 자신의 신체 중 일부인 창자[자궁]을 이용하여 열 명의 신을 낳았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초사(楚辭)』 「천문훈(天文訓)」에서도 “여와가 세상 만물을 화육하는 본체라면 그녀는 또 누가 만들었을까?”라고 묻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초사』가 기록된 시대에 여와가 만물의 시조모라는 인식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방증해준다.

동한(東漢)시대 응소(應劭)가 저술한 『풍속통의(風俗通義)』에서는 여와가 인류를 만들어냈다는 당시의 속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천지가 개벽했을 때 아직 사람이 없자, 여와가 황토를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열심히 일했으나 다 만들 여력이 없자 노끈을 진흙 속에 넣었다가 휘둘러서 사람을 만들었다. 그래서 부귀한 사람은 황토를 빚어서 만든 사람이고, 빈천한 사람은 끈을 휘둘러서 만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풍속통의』의 여와신화에서는 인간의 빈천과 외모의 상관성에 대한 한나라 시대 당시의 사회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문헌 속의 신화가 민간에 전달되면 그 핵심 줄기는 유지하되, 서사가 훨씬 다양해지고 풍부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산서(山西)지방에서 전승되는 여와 신화를 보면, 훨씬 후대에 나오는 반고(盤古) 신화를 융합하여 재구성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반고가 천지를 개벽한 이후로 여와는 세상이 너무나 적막하다고 생각하여 사람을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그녀는 해와 달, 별이 모두 둥그니 사람도 둥글게 만들고자 결심했다. 그녀는 우선 황토와 물로 둥근 사람을 하나 빚었는데 찬물과 찬 흙으로 빚었기 때문에 생기가 없었다. 그래서 불로써 물과 흙을 뜨겁게 데워 다시 빚었더니 사람은 곧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온도가 너무 높자 참지 못하고 재빨리 도망가버렸다. 여와는 화가 나서 홍수와 큰불을 일으켜 사람과 모든 생물들을 없애버렸다. 여와는 다시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만들어지자마자 자신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녀는 사람을 오늘날처럼 사지가 분명하고 오관(五官)이 단정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인간의 조상이 원인(猿人)이라고 곧잘 말하는데 이 원인은 원인(圓人; 둥근 사람)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사천성(四川省) 덕창(德昌)지역에 전승되는 여와신화는 훨씬 간결하면서도 후대의 사회적 변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첨삭되는 가정을 겪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와가 처음으로 사람을 만들었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한 가지 모양이어서 남녀가 구분되지 않았다. 나중에 여와가 사람들의 쓸쓸함을 알고 다시 사람들을 만들자, 그제야 남녀가 구분되고 짝을 지어 살아갈 수 있었다”

 

이 사천성의 신화 전승에서 주목할 점은 단지 ‘인간’을 생산했던 그 이전의 여와신화와는 달리,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고, 이성 간의 결합을 통해 인류를 재생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편, 『회남자』 「설림훈(說林訓)」에서는 이제까지 신화상으로 독자적이었던 여와의 인류창조 과정에 남성신들이 개입하여 보조하기 시작했던 상황이 드러난다.

 

“황제(黃帝)는 그녀를 도와 음양의 생식기를 만들었고, 상병(上騈)은 그녀를 도와 귀와 눈을 만들었으며, 상림(桑林)은 그녀를 도와 팔과 손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여와가 매일 일흔 번 사람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회남자』 의 여와신화에서는 드디어 ‘음양의 생식기’라는 인식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이전에 여와가 생산했던 인류가 ‘보편적 인간(Generic Man)’이었으며, 『회남자』가 기록된 시대에는 그 이전 신화의 인간 원형을 ‘불완전함’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 이전에 여와에 의해 진행된 인간의 창조작업에 남성신 내지 문화영웅들이 개입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인간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는 재해석이 가해진 것이다.

초기 신화에서의 여와는 단독으로 사람을 화생(化生)하지만 좀 더 후기에 만들어진 신화와 전설, 민담에서는 복희(伏羲)라는 배우자신과 결합하여 인류를 생산하게 된다. 여와가 배우자신인 복희(伏羲)와 결합하여 사람을 창조했다는 후대의 신화는 문헌상으로 볼 때 단독으로 인류를 창조했던 신화보다 뒤에 나왔다. 여와는 인간을 창조한 여신으로 오빠인 복희와 결혼하고 혼례를 제정하였으며 처음으로 생황(笙篁)을 제작했다는 내용의 신화는 『회남자(淮南子)』와 『열자(列子)』에 최초로 등장한다.

『회남자』 「남명훈(覽冥訓)」에서는 “복희와 여와는 법령 제도를 설치하지 않고도 최고의 덕행으로 후세에 이름을 날렸다”라고 서술하였는데, 이는 여와가 시조모신의 위치에서 성인(聖人)의 면모로 전환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에는 한나라 시대의 사회적 영향이 작동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열자』 「황제(黃帝)」에서는 “복희와 여와는 뱀의 몸에 사람 얼굴을 하고, 소 머리에 호랑이 코를 했는데, 이들에게는 사람의 모습은 없었지만, 큰 성현의 덕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동물과 인간의 모습이 혼재하는 이른바, 문화영웅 계열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신농씨 등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서한시대에 이미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여와와 복희의 도상이 존재했음이 유물을 통해 확인되는데, 이러한 도상은 중국 대륙은 물론 중앙아시아에서도 나타난다.

세상의 멸망이라는 한계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인류인 친남매가 결합하여 다시 인류를 열어가는 내용의 신화는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당(唐) 이용(李冗)의 『독이지(獨異志)』에 서술된 여와남매 신화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우주가 처음 열렸을 때 여와 남매 두 명이 곤륜산에 살았는데 천하에는 아직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부부가 되기로 하였는데 또한 스스로 부끄러웠다. 오빠는 여동생과 곤륜산에 올라 기도하였다. “하늘이시여, 만약 우리 두 사람을 부부로 맺어주고자 한다면 연기를 합치시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연기를 흩어 놓으소서” 그러자 연기가 합쳐졌다. 여동생은 곧 오빠에게 다가가서 풀을 모아 부채를 만들어 그의 얼굴을 가렸다. 오늘날 사람들이 아내를 맞을 때 부채를 쥐는 것은 그 일을 본뜬 것이다”

 

『독이지』에 수록된 이 신화에는 『산해경』이 서술된 시대 이후의 윤리관이 반영되어 있으며, 내용에서 여와의 존재는 분명하지만 복희의 존재는 불분명한 것을 볼 수 있다. 중국 소수민족 신화에서도 남매 시조의 모티프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으며, 태고의 홍수와 유민(流民)의 고사도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또한 여와와 유사한 소수민족의 창세(創世) 여신도 다양한데, 장족(壯族)의 ‘미뤄지아(媄洛甲)’, 동족(侗族)의 ‘싸디엔빠(薩天巴)’, 요족(瑤族)의 ‘미뤄투어(密洛陀)’ 등이 그것이다. 여신이 진흙에 오줌을 누고 그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어냈다는 유형의 창세신화 등 그 변형도 다양하게 확장된 것을 볼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도 여신 여와의 이름은 여전히 호명되고 있는데, 중화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여와낭낭((女媧娘娘)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여와낭낭은 오색돌로 우주의 질서를 회복하고, 인류를 창조하는 여신이 아니라, 사람들이 언제든지 달려가 길흉화복을 묻고 복을 비는 보살 같은 신격에 가깝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여신 여와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 그 존재성과 직능의 범주가 유기적으로 변화·확장되어 왔다. 이는 그가 화석화된 신이 아닌 중화권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인식을 투사하며 키우고 바꿔온 사회 그 자체였음을 말해준다. 실은 여와 만이 아니라, 인류사의 대부분의 신들이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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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순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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