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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동자만 쫓아다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은 법은 폭력일 뿐

관리자( icomn@icomn.net) 2021.11.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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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부터 코로나19 방역수칙이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로 전환되었다. 오랜 기간 강력한 통제상태에서 통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길 고대하던 사람들은 이제 때가 오지 않겠냐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돌파감염이 확산되고 규제완화로 초래된 감염율 증가는 다시 강력한 통제를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유럽 각국을 비롯해 세계 각처에서는 빈번하게 자국 방역정책에 대하여 반발하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벌어지곤 했다. 이러한 나라들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우리 국민은 눈물겨울 정도로 정부의 시책에 호응해 왔다. 방역의 최전선에서 간호사 등 전문인력들이 몸을 갈아 넣어가며 부닥치고 있고, 대중들은 마스크 쓰기 및 개인위생관리 생활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감염병 확산을 저지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역기준이 상당히 완화되었다. 그럼에도 아직은 조만간 완전히 자유롭게 방역체제가 종료될지, 아니면 또다시 이전의 4단계로 회귀할지 여전히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종의 의무감으로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백신 접종 이후 좀 나아지려나 기대했지만, 변종 바이러스의 발생과 돌파감염 등으로 위험은 상존한다. 이런 정황으로 2년을 끌어오던 강력한 방역조치는 앞으로도 쉽게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렵다. 이렇게 계속되는 위험으로 인해 많은 고통이 따라오고 있다.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이며 학부모며, 방역현장의 관계자들이며 모두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전염병은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특히 없이 사는 사람들일수록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빈곤층일수록 감염위험인자에 대한 노출빈도가 높아지고, 검진, 예방접종 및 치료 등 받을 시간이 부족한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들,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들일수록 감염에 취약하다. 요양원의 어르신들은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하는 괴로움을 겪고 있다. 밀집공간에서 일해야만 하는 텔레마케터 등 노동자들은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고통의 감내가 한계를 맞다 보니 결국 생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게 된다. 영업제한으로 인해 폐업의 문턱을 오락가락하게 된 영세 자영업자들을 비롯해 코로나19 시기 업무량이 폭증한 배달/택배 종사 노동자들, 의료체계 정비를 등한히 한 결과 탈진에 이르게 된 방역담당 공공인력과 병원 의료진들이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감염병 시대의 고통을 특히 더 가중해서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 집회와 시위였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형태로 표출된다. 이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언론, 출판에 대한 검열이나 집회, 결사에 대한 사전 허가는 부정된다. 헌법 제21조 제1항과 제2항의 규정이다.

  물론 다른 모든 자유가 그렇듯이, 표현의 자유 또한 공공의 이익과 질서의 유지 등을 위해 일정하게 제한되기도 한다. 즉,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제한은 엄격한 법적 한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유사한 모든 사안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자영업자들, 불안정 노동자들, 의료종사자들이 집회시위를 하려 했을 때, 정부는 이들의 곤경을 원천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뒤로 미룬 채 거리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데 급급했다. 보수적인 주요 언론도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기에 웬 집회 시위냐?"는 식의 본말이 전도된 논리로 이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와 비난이 사람 따라 경우 따라 달라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균일해야 할 방역지침이 그때그때 마다 달리 적용되는 것이 아닌지 의아하게 만드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노태우의 장례식 마지막 날 그의 영정을 올린 운구가 지나가는 연도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모여든 그 사람들에게 경찰은 단 한 번도 해산명령을 내린 바가 없다.

  11월 5일 있었던 한국과 UAE 월드컵 예선에는 관중 3만 5천 명이 경기장으로 들어갔고, 14일 오후 있었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는 관중이 1만 6천 명 몰렸다. 그러나 이 관중들에게 방역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라는 안내가 나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부산 PIFF에는 관객만 7만 6천 명이 들어 성황을 이룬 것으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이 기간 중에 중앙정부나 부산시에서 이 관객들에게 감염병예방법 위반 혹은 집시법 위반을 이유로 경고한 적이 없다.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들은 유세장 곳곳마다 지지자가 몰려 "인파에 떠밀려 다닌다"는 표현이 나돌 정도로 사람 속에 파묻혀 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들과 선거운동원 및 지지자들을 향해 방역수칙을 위반했다며 날선 비판을 하는 언론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급기야 방역지휘의 최전선에 서 있는 현직 국무총리가 사적 모임 10명 이내 방침을 어기고 11명이 모여 밥을 먹다가 구설에 오르기까지 했다. 현직 국무총리의 방역지침 위반에 대해 어떤 행정조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와중에 지난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네거리에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시민 2만 명이 모여 현 정부의 노동정책 비판 및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 대해 김부겸 총리는 "정부의 거듭된 집회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불법집회를 강행했다"며 "정작 당일 현장에서는 곳곳에서 방역수칙이 무너져 있었다"고 지적하는 한편,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노동계가 전향적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려" 더 이상의 집회시위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 수 더 떠서 서울시장 오세훈은 11월 13일 집회에 참여한 전원을 집시법 및 방역법 위반으로 고발조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한반도 남단에 출몰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축구장이며, 야구장이며, 영화관이며, 유세장이며, 총리공관은 다 제쳐 놓고 유독 노동자가 모이는 곳만 따라다니며 감염을 시킨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노동자들의 집회 시위를 엄단하겠다고 엄포하는 총리 이하 국가기관의 관료들을 보면 마치 노동자들이 감염병 확산의 원인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일할 때조차 숨이 막히는 걸 참아가며 마스크를 꼭꼭 착용하고, 부작용의 우려를 마다하고 서둘러 백신접종을 받는 등 정부의 방역지침에 최대한 따랐던 노동자들의 입장에선 억울한 건 둘째치고, 방역지침을 어긴 현직 총리로부터 이런 겁박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엄정한 법의 집행은 누가 보더라도 정당성과 합법성을 충족할 때 비로소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다. 법의 집행이 높은 자와 가진 자에게 관대하고 낮은 자와 없는 자에게 가혹하다면 이미 그건 법이 아니다. 그건 단지 폭력일 뿐이다.

/윤현식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학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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