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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하여

'중대재해처벌법' 제대로 시행해야

관리자( icomn@icomn.net) 2022.01.24 10:19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선전전(1).jpg

/윤현식(민주주의법학연구회 학술위원장)

우리는 살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을 해야 먹거리를 구할 수 있고, 잠자고 휴식을 취할 곳과 몸에 걸칠 옷가지들을 구할 수 있다. 노동은 태초부터 저주받은 자들의 몫이라 이야기되어 왔다. 낙원에서 쫓겨난 인류는 생존을 위하여 노동을 해야 했다. 물론 죄악에 따른 처벌로서만 노동이 이루어져서는 곤란했다. 노동은 어느 정도는 자발적이어야 했고, 그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동은 신성화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노동에 대한 모든 가치론은 결국 노동 없이는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노동 없이 살 수 없다.

한국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첨단기술이 노동환경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키고, 위험한 모든 건 기계와 로봇에게 맡길 수도 있을 것 같은 세상이 되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출근했다가 영원히 귀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식 통계상 매일 2~3명에 이른다. 지난 10년간 약 1만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고로 죽었다. 이 숫자는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베트남전 전사자 5,066명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의 일터는 전쟁터보다 위험하다.

최근 온 국민의 공분을 산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를 보자. 이 참사로 노동자 6명이 실종되었다. 사고의 전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공기단축을 위한 공사 과정의 위법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시공업체인 HDC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 같은 지역인 광주 학동 철거현장 참사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당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로 붕괴하면서 시내버스를 덮쳤고, 버스에 타고 있던 시민 9명이 죽었다. 왜 같은 업체에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는가?

2021년 5월 8일, 현대중공업에서는 또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현대중공업에서 산재사망자 통계가 작성된 이후 발생한 469번째 죽음이었다. 이 업체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469명째의 죽음이 이어졌는가? 현대중공업의 반복되는 중대재해 원인은 어이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밝혀졌다. 안전수칙 미준수, 위험의 외주화, 무리한 공기단축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 와중에 하청노동자들의 사고빈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광주 아파트공사장 붕괴사고가 벌어지기 며칠 전에 발생한 평택 물류창고 화재를 돌이켜보자. 물류창고 공사현장에 번진 큰 불을 잡는 과정에서 소방관 3명이 순직했다. 참사가 벌어진 이유 중에는 현장상황을 오판한 무리한 소방지휘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전에, 왜 이토록 거대한 화재가 각지의 물류창고에서 계속 이어지는가? 2020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로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용인에서도 물류창고에 불이나 5명이 사망했다. 2021년에는 덕평의 쿠팡물류센터에서 불이나 소방관이 순직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불에 타기 쉬운 건축자재와 보관물품, 연면적 기준을 살짝 낮추는 교묘한 안전기준 회피, 화재진압 및 탈출이 어려운 구조 등이 꼽힌다. 문제는 이렇게 원인을 알고 있는데 왜 개선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끔찍한 사고들이 기본만 지켰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들이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천재지변 혹은 모든 조치를 다했음에도 어쩔 수 없는 불강항력적 급변이 있어 발생한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또한, 사망사고들의 유형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였다. 즉 앞서 일어났던 사고와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두 번 세 번 또 일어난다는 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사고들의 이면에는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을 무시한 사측의 횡포가 있었다. 사람의 목숨보다 이윤이 먼저인 반윤리적인 작태가 결국 그 수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원흉이었다.

산업현장에서 사고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각종 안전기준이 만들어지고 현장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고가 빈번하다면, 현장의 안전을 위한 조치와 장치가 기준에 맞지 않거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을 조속히 제거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고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당장의 이윤에 눈 먼 사업주는 노동자의 생명을 너무나 가벼이 여긴다. 사고가 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오히려 피해자인 망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비윤리적인 작태가 횡행한다.

중대재해의 원인은 결국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기업의 안전경영 인식 부재, 이윤중시 생명경시의 기업문화, 이러한 문제를 조장 방조하는 부실한 제도와 관리체계의 부재. 바꿔 말한다면, 기업의 인식을 제고하고 그러한 인식 제고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면 중대재해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거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적인 의제로 논의되었던 법이 바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또는 ‘기업살인법’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제정당시부터 산업계의 집요한 반대와 방해를 받아왔던 법이다. 그래서인지 손해배상의 범위가 크지 않아 징벌적효과를 거두기엔 미흡하다거나 특히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근로자 50명 미만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선 그 적용을 3년간 유예하는 등 문제의 소지를 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재계의 반응이 심상칠 않다. 경총이나 중소기업중앙회 등 기업측을 대변하는 단체에서는 중대재해 발생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을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법의 본질을 무시한 주장이다. 이미 법에는 안전보건확보의무 규정을 두었고, 지난 1년 간 정부는 체계구축을 지원했다. 이러한 틀을 넘어 안전의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처벌이 이루어진다. 지킬 것만 지키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형식적으로 안전의무를 준수했다는 것이 입증될 경우 실제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기 어려워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질 우려가 있음에도 경영계는 우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유력 대선 후보조차도 인정하고 있다. 1월 12일 대기업 CEO들과 만난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사고의 원인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므로 이 법이 실제 적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기업인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기업인의 표를 얻고자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제도를 별 게 아니라고 하는 건 책임 있는 대선주자가 할 말이 아니다. 수많은 시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제도화해놓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행도 되기 전에 무용지물 취급을 받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먹고 살자고 일하는 거다. 그런데 일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고, 일을 하다가 사고로 죽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서 먹고 살려다가 사고로 죽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 더더욱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감시해야 하고 참여해야 한다.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가 당연한 사회여야 하지 않은가?

<사진은 지난해 8월 정의당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선전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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