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가치 10장. 바람을 오르고 침묵에 머물다
오마라마와 테카포에서…나를 지키는 법을 배우다
<클레이클리프모습>
오늘의 가치조각
- 위태로운 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 조용히 머무는 마음이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다
<허허벌판에 있던 숙소에서 바라본 밤 하늘의 모습. >
오마라마의 아침은 허허벌판 한가운데서 시작됐다.
조립식 건물, 별 볼 일 없어 보였던 호스텔은 밤이 되자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수없이 쏟아지는 별빛 아래, 나는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봤다.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가 몽골 초원에 누워 '밤하늘 바라보기'였다.
조용한 대지 위에 등을 대고, 아무 빛도 방해하지 않는 공간에서 하늘을 온전히 받아내는 경험.
그건 단순히 별을 보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작고,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받아들이는 시간’일 것이다.
그 밤은 몽골이 아니라 뉴질랜드 남섬에서 먼저 나를 찾아왔다.
오마라마의 조용한 숙소에서 본 밤하늘은 숨이 멎을 정도였다.
별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끝없이 고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십자성과 그 위를 흐르는 은하수의 강은 마음속에 묻혀 있던 수많은 감정을 다시 끌어 올랐다.
도시의 불빛 아래선 잊고 사는 살았던 것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이유로 덮어둔 질문들.
그것들이 다시 또렷하게 떠오른다.
몇 해 전, 전주 모악산을 오르던 중이었다.
중턱 즈음에 자리한 작은 절, 대원사에서 은은한 범종 소리 사이로 이런 문장이 들려왔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 순간,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의 고요와 정적이 묘하게 겹쳐졌다.
당연한 말인데, 그날따라 가슴 한가운데로 깊숙이 박혔다.
마치 삶을 다독이는 말이 아니라, 삶을 꿰뚫는 진실처럼 들렸다.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너무 자주 잊고 살아간다.
그래서 더 바쁘게, 더 요란하게, 더 애써 살아가려 하는지도 모른다.
<클레이클리프 협속 속에서>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오히려 삶을 더 온전히 살게 해주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지금 이 삶에 진심인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인가?’
지금 이 시간엔 별들이 나에게 묻는 듯했다.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건 언제나 고요와 정적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오늘은 클레이 클리프를 가보려고 한다.
클레이 클리프-점토로 이루어진 절벽- 그곳은 바람과 시간, 그리고 침식이 만들어낸 조각이었다.
처음엔 능선 따라 걷고 싶었다.
하지만 능선 위로 가다 길이 끊어지길 반복했다.
결국 협곡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70도에 가까운 경사면을 기어오르듯 올랐다.
손과 무릎으로 기댄 채, 올라가는 도중 한순간 발을 헛디뎠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아래는 바로 낭떠러지였다.
공포는 순식간에 몰려왔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위에 올라선 나 자신을, 아래서 본 순간 참 바보 같았다. 괜한 도전이었을까.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이 오늘의 가치였다.
살아 있다는 것은 때로 아찔한 경계를 마주하는 일이다.
내려와서 바라본 절벽은 여전히 우뚝했고, 나는 조금 작아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작아진 나를 받아주는 풍경은 오히려 더 따뜻했다.
<푸카키 호수에서 보는 마운트쿡 모습>
오마라마를 떠나 테카포로 가는 길, 다시 푸카키 호수를 만났다.
반대 방향에서 본 마운트 쿡은 전날보다 더 웅장했다.
설산과 빙하수가 만든 푸른 호수는 아름답지만 왠지 그 속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자연을 당연하게 여겨왔던가. 누군가의 무관심이 미래의 풍경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푸카키 호수를 지나 1시간여를 달려 테카포에 도착했다.
테카포는 선한 목자의 교회의 모습이 익히 알려져 있는 장소다.
하지만 테카포는 단지 사진으로 본 풍경 이상의, 조용한 특별함이 있는 곳이었다.
특히 그 작은 돌 교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호숫가에 단단히 뿌리 내린 그 건물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교회 안쪽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테카포 호수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고, 주변에 세워진 양치기 개의 동상은 이 공간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이름도 남기지 않은 충직한 존재.
사람을 위해 헌신했던 그 마음 하나로 수십 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울컥함이 밀려왔다.
테카포는 그렇게, 경건함과 따뜻함이 겹쳐 있는 장소로 내게 남았다.
나는 양치기개 동상 앞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선한 목자의 의미는 어쩌면 바로 그것이었다.
말 없이 지키는 것,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에도 충실히 머무는 것.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마음.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를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 풍경이 변해도, 계절이 바뀌어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선한 목자처럼 말이다.
<테카포, 선한 목자의 교회>
오늘 하루는 극적인 경험과 조용한 사색이 교차한 날이었다. 절벽 위에서 두려움을, 교회 앞에서 위로를, 그리고 호수 옆에서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
자연은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웠다.
빛은 어둠 속에서, 의미는 침묵 속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살아가는 우리는, 위험 앞에 조심할 줄 알고, 침묵 속에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연 앞에 겸손할 줄 아는 존재여야 한다.
이 하루는 그걸 배우기에 충분했다.
<양치기 개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