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가치 12장.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의 순간
티마루와 크라이스트처치(치치)에서…지진,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곳
<크라이스트처치 지진으로 무너진 옛 건물들을 재건하고 있는 모습>
오늘의 가치조각
기억은 삶을 바로 잡는 나침반이다.
느낀 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그 시간은 가치로운 삶이 된다.
<티마루보태닉가든 중앙의 연못>
오늘은 더니든을 떠나 크라이스트처치로 향했다. 이 곳에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가던 도중 휴식과 쉼이 필요해 어느 도시를 거쳐갈지 검색하던 중 티마루 보태닉가든(티마루 식물원)을 추천하는 글이 많아 가보기로 했다.
추천글은 티마루 보태닉가든은 '잘 가꾸어진 정원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장소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기대한 이상의 장소였다.
티마루 보태닉가든 중심에는 잔잔한 수면을 품은 연못이 있고, 둘레로 넓은 잔디밭이 퍼져 있으며, 그 너머로 다양한 숲길이 감싸고 있는 구조다.
마치 속세를 벗어나는 숲 속을 지나오면 조용한 쉼터가 다른 세상임을 일깨워 주는 듯 했다.
정원 복판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주변 풍경과 나의 모습을 겹쳐 비춰 주는 것이 마치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마법을 거는 것만 같았다.
이 곳에서 본 단정하게 손질된 나무와 꽃들, 잔디, 그리고 연못 위를 노니는 오리들까지.
보태닉가든은 사람만을 위한 장소가 아닌 모든 생명들이 함께 머물며 즐기는 공간이다.
동시에 정원을 가꾸는 분들의 바쁜 손길은 생명을 다듬는 일이자,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보태닉 가든을 둘러보던 중 전쟁기념탑이 놓여 있는 것에 놀라웠다.
전쟁기념탑에서 마주한 문장.
Lest we forget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 말이 잊혀진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경고처럼 들렸다.
우리의 역사안에서도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되풀이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아직도 청산치 못한 친일파 문제.
4.16의거와 1980년대 민주화운동 그리고 5.18 광주민중항쟁. 최근에 일어났던 계엄사태까지.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함께 살기 위해, 오늘과 내일이 더 행복하기 살기 위해' 희생했던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이 문구를 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은 문익환 목사님의 외침이었다. "종철아~! 한열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던 문 목사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에게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 그리고 문익환 목사님이 던져주는 질문은
"너는 지금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지키고 싶으냐?" 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문규현 신부님도 떠올랐다.
젊은 30대에 통일운동을, 40대에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거쳐 80세가 넘은 지금은 환경운동에 열심히 활동중이다.
어떤 이들은 문규현 신부님께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심지어 한가지 활동에 전념해야지 이도 저도 아닌 활동을 하냐는 충고도 들었다고 한다.
"통일운동이면 통일운동을 하셔야지. 왜 환경운동을 하시냐고?"
그때 신부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그 답변이 나에게 울림이 되어 돌아온 말이라 깊은 기억의 뿌리로 남아 있다.
"나는 문규현이라는 한명의 사제이자 사목자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고통받는 곳에 함께 하는 사람이지 운동가가 아닙니다. 한명의 사제이기에 내가 가야 할 곳은 십자가가 있는 곳입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멈추고자 한다.
<전쟁기념탑>
아무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기억의 중요함을 항상 간직해야 할 의무가 있는 존재인 것 같다.
어쩌면 이 짧은 문장은 단지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되묻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억이 오늘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되묻는 하루가 되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이하 치치)에 도착 후,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어드밴쳐 파크로 향했다.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개들은 목줄 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녔고,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지켜보았다.
도시의 일상 속에서 자연을 누리는 방법을 보는 듯했다.
어드밴쳐 언덕 위에서 마주한 두 산, 브래드피크와 프레즌트산이 보였다. 곧 오를 곳이다.
두 산의 반대편에는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노을은 하늘의 끝자락을 감싸 안았고, 그 빛깔은 하루의 마무리를 알리는 듯 하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마지막엔 저런 빛깔을 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삶을 끝맺을 죽음의 빛깔이라는 것은 싫든 좋든 어쩌면 모두 내품어 낼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 누구에게 보여질 것이 아닌 내 스스로가 만족할 빛깔을 품기 위해 끝까지 지켜나가야 할 삶의 자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극센터 체험. 위는 펭귄 먹이주기. 아래는 하글룬드 탑승 체험>
다음날 아침 치치의 남극센터를 방문했다.
뉴질랜드는 남극에 가까운 지리적 특성을 지닌 나라이기에 가능한 공간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찾은 진짜 이유는 펭귄이었다.
보고 싶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남극센터라는 곳은 보호가 필요한 펭귄을 치료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단지 구경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점이 더욱 마음을 끌었다.
펭귄을 보기 전까지 남극센터에서 앞서 체험해야 할 일들이 많다.
우선 남극차량 탑승 체험이다.
차량의 이름은 하글룬드.
한마디로 한 편의 액션 영화를 찍는 것 같았다.
거대한 타이어로 60도가 넘는 경사를 오르며, 물 웅덩이를 출렁이며 달릴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남극의 삶이 얼마나 험난한지, 몸으로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이어 들어간 기후체험실에서는 반팔을 입은 소년과 함께 들어갔는데 자꾸 내 눈길을 끌었다.
"안추워? 괜찮아?" "응"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10분간 남극기후 체험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견딜만했다.
하지만 그 기후에서 하루 종일 살아야 한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
펭귄 체험 공간에선 작은 펭귄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키 30센티 남짓의 그들이지만, 존재감은 크고 대단했다.
인간의 손이 단지 상처를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치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곳엔선 하루 2번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직원들이 펭귄이야기를 하며 펭귄에게 물고기를 주는 체험을 보여주는 특별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 날은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 펭귄들이 배도 고프지 않았는지 센터직원이 물고기로 유혹해도 잘 다가오지 않았다.
<위. 메모리얼다리 아래.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오후엔 치치 도심으로 향했다. 이 곳은 지진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2011년 2월 22일.
치치에 진도 6.3의 지진이 덥쳤다.
이로 인해 남섬의 유명한 거리와 전통이 담긴 많은 건물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한순간에 낮선 폐허로 변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잔해를 오랫동안 그대로 두었다. 기억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서야 복구가 시작되었다. 마음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숙소에서 주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진 후 남섬 제1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의 유입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관광객 유입을 위해 재건과 복구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기억과 치유는 늘 나란히 걷는다.
날씨가 더욱 거칠어졌다. 폭우뿐 아니라 강풍까지 불어와 거리를 걷는다는 것이 우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그래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치치 민속박물관과 아트갤러리를 가기로 결정했다.
무료 입장이어서였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치치의 전통과 예술세계도 궁금했다.
아트갤러리에서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렀다.
The Mamakus(맘마쿠)라는 작품인데, 이 것은 검은색 나무고사리로 뉴질랜드 토착종이고,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고 빨리 자라는 식물이라고 한다. 줄기는 검은 색을, 입은 육각형 모양의 흉터처럼 생겼다고 한다.
마오리족들에게는 중요한 식물중 하나라고. 의료와 치료용으로도 쓰지만 누군가 사망했을 때, 고인을 애도하며 맘마쿠 잎으로 관을 장식하기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오리 전설에는 슬픔과 애도의 상징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또 다른하나는 숲의 재생과 새로운 생명의 상징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산불과 재해로 숲이 사라지게 되면 가장 먼저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빠른 성장때문에 재생의 식물로 표현된다고.
결론적으로 맘마쿠는 마오리 문화에서 삶과 죽음, 슬픔과 희망, 파괴와 재생을 아우를 참 복합적인 상징성을 지닌 식물이었다.
3년전.
전북 전주 예술회관이라는 곳에서 전북민족미술인협회 회원들의 전시회가 있었다.
나는 전북 회장인 이기홍 화백님과 친분이 있어, 그분이 전시회장을 지키는 날 축하인사겸 들렀었다.
전시회장에 많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기홍 화백님께 작품 소개를 부탁드렸더니, 내게 들려준 대답이 나를 놀라게 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우문현답이라고 본다.
"느낌대로 작품을 보면 돼. 작품을 보며 사람마다 다 다르게 느끼는 것 아니야?"
그때부터 작품을 혼자서 보게 되면 느낌을 더욱 살려서 보게 된 것 같긴 하다.
어쩌면 여행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작품 해설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이번 여행의 해석에도 같이 적용되는 법칙 같다.
결국 모든 감동은 해석이 아닌 경험과 느낌에서 시작된다는 것.
자연도, 예술도, 여행도 그렇다.
설명을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지진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나무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이 만든 건물은 무너져도, 자연은 뿌리를 내린다.
자연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고.
기억은 삶의 뿌리이고, 경험은 그 가지며, 느낌은 잎이다.
나에게 여행을 통해 진정 남기는 건, 기억과 경험, 그리고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