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000년 필리핀정부가 민다나오 무슬림 저항반군 MILF(Moro Islamic Liberation Front)와 벌인 전쟁으로 마을 주민 6만여명중 4만1천명이 난민이 된 삐낏(Pikit, 민다나오 꼬따바또)에 찾아갔다. 삐낏 성당의 버트 신부는 민다나오의 분쟁을 이해하려면 민다나오 무슬림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1280년 무렵 민다나오에 정착한 무슬림들은 술루 섬에 술탄(이슬람 왕국을 일컬음)을 두고 민다나오 전체를 다스렸다. 이후 1492년 스페인이 침략해왔고 1898년 스페인이 필리핀을 미국에 넘길 때까지 민다나오 무슬림과 스페인과의 전쟁은 계속 된다. 루존과 비자야스 섬이 400여년 동안 스페인의 완전한 식민지가 된 반면 민다나오는 무슬림의 저항으로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스페인은 루존과 비자야스의 크리스챤화 된 주민들을 민다나오 무슬림과의 전쟁에 이용한다. 스페인은 민다나오 무슬림을 '모로(Moro)'로 불렀고 이때부터 민다나오 무슬림은 모로로 불린다. 민다나오엔 당시 18개의 모로부족 13개의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었다.
미국이 필리핀을 접수할 무렵 술탄은 미국에도 저항하지만 전쟁에 진다. 미국은 1903년 "땅문서가 없는 모든 땅은 정부에 속한다"는 토지법을 만든다. 그러나 땅에게는 '소유자'가 없고 신이 내려주신 것으로 공동으로 농사짓고 살아왔던 모로 사람들에게 땅문서라는 개념은 없었다. 모로사람들과 원주민 부족사람들은 땅문서를 만들지 않는다.
미국은 민다나오 섬에도 공립학교를 짖고 서구화 교육을 단행했다. 모로 사람들은 이슬람식 학교를 갖고 있었고 자녀들이 크리스챤으로 개종될 위험이 있는 공립학교에 보내는 걸 꺼려했다. 1913년 미국식민정부는 민다나오 땅을 루존과 비자야스 크리스챤들에게 팔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크리스챤 이주자들이 민다나오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모로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난민'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1946년 미국은 필리핀에게 형식적인 독립을 준다. 미국이 루존 비자야스에 민다나오를 포함하여 필리핀을 만들려 할때 민다나오 모로사람들은 종교가 다르고 과거 서로 싸웠던 사람끼리 한 나라백성이 될 수 없다며 필리핀으로 합쳐지는 데 반대한다.
1950년부터 60년대까지 이주민들이 대거 민다나오에 몰려온다. 점점 민다나오에서 무슬림과 원주민은 소수가 되어 가고 크리스챤들이 주류가 되어 간다. 모로와 원주민들에게 자신들의 땅이 '어느날 눈 떠보니 더이상 내 땅이 아니'었다.
1971년 UP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노르 미스와리가 MNLF(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를 결성한다. 당시는 민다나오 무슬림들의 불만이 폭발 일보직전으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모로 해방전선에 맞서 크리스챤 진영도 일라가(Ilaga, rat라는 뜻)를 만들었고 6년 동안 6만여명이 사망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민다나오 분쟁은 마치 크리스챤과 무슬림의 종교분쟁으로 비쳐지기 시작했지만 실은 땅을 강탈당한 모로민중의 저항이었다.
76년부터 정부는 미스와리와 협상을 시작하고 미스와리는 민다나오 13개 주에 자치권을 요구한다. 독립을 요구하며 싸우던 MN내부에서 협상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84년 MILF를 결성한다. 96년 라모스 정부는 미스와리와 협정을 맺고 13개주 자치권을 인정했으나 5개 주만 선거에 들어갔고 이중 4개 주가 모로 자치주가 된다.
2천년 에스트라다 정부는 돌연 MI와 'All Out War'를 선언, 2천년 4월과 5월 두 달에 걸쳐 매일 1천5백만 페소를 쏟아붓는 전쟁을 벌인다. 이때 삐낏은 전쟁터 한 중심이 된다.
2002년 아로요 정부는 아부사야부와 엔피에이에 다시 'All Out War'를 선언하고 현재 전쟁중이다.
1280년 무렵 민다나오에 정착한 무슬림들은 술루 섬에 술탄(이슬람 왕국을 일컬음)을 두고 민다나오 전체를 다스렸다. 이후 1492년 스페인이 침략해왔고 1898년 스페인이 필리핀을 미국에 넘길 때까지 민다나오 무슬림과 스페인과의 전쟁은 계속 된다. 루존과 비자야스 섬이 400여년 동안 스페인의 완전한 식민지가 된 반면 민다나오는 무슬림의 저항으로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스페인은 루존과 비자야스의 크리스챤화 된 주민들을 민다나오 무슬림과의 전쟁에 이용한다. 스페인은 민다나오 무슬림을 '모로(Moro)'로 불렀고 이때부터 민다나오 무슬림은 모로로 불린다. 민다나오엔 당시 18개의 모로부족 13개의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었다.
미국이 필리핀을 접수할 무렵 술탄은 미국에도 저항하지만 전쟁에 진다. 미국은 1903년 "땅문서가 없는 모든 땅은 정부에 속한다"는 토지법을 만든다. 그러나 땅에게는 '소유자'가 없고 신이 내려주신 것으로 공동으로 농사짓고 살아왔던 모로 사람들에게 땅문서라는 개념은 없었다. 모로사람들과 원주민 부족사람들은 땅문서를 만들지 않는다.
미국은 민다나오 섬에도 공립학교를 짖고 서구화 교육을 단행했다. 모로 사람들은 이슬람식 학교를 갖고 있었고 자녀들이 크리스챤으로 개종될 위험이 있는 공립학교에 보내는 걸 꺼려했다. 1913년 미국식민정부는 민다나오 땅을 루존과 비자야스 크리스챤들에게 팔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크리스챤 이주자들이 민다나오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모로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난민'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1946년 미국은 필리핀에게 형식적인 독립을 준다. 미국이 루존 비자야스에 민다나오를 포함하여 필리핀을 만들려 할때 민다나오 모로사람들은 종교가 다르고 과거 서로 싸웠던 사람끼리 한 나라백성이 될 수 없다며 필리핀으로 합쳐지는 데 반대한다.
1950년부터 60년대까지 이주민들이 대거 민다나오에 몰려온다. 점점 민다나오에서 무슬림과 원주민은 소수가 되어 가고 크리스챤들이 주류가 되어 간다. 모로와 원주민들에게 자신들의 땅이 '어느날 눈 떠보니 더이상 내 땅이 아니'었다.
1971년 UP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노르 미스와리가 MNLF(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를 결성한다. 당시는 민다나오 무슬림들의 불만이 폭발 일보직전으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모로 해방전선에 맞서 크리스챤 진영도 일라가(Ilaga, rat라는 뜻)를 만들었고 6년 동안 6만여명이 사망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민다나오 분쟁은 마치 크리스챤과 무슬림의 종교분쟁으로 비쳐지기 시작했지만 실은 땅을 강탈당한 모로민중의 저항이었다.
76년부터 정부는 미스와리와 협상을 시작하고 미스와리는 민다나오 13개 주에 자치권을 요구한다. 독립을 요구하며 싸우던 MN내부에서 협상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84년 MILF를 결성한다. 96년 라모스 정부는 미스와리와 협정을 맺고 13개주 자치권을 인정했으나 5개 주만 선거에 들어갔고 이중 4개 주가 모로 자치주가 된다.
2천년 에스트라다 정부는 돌연 MI와 'All Out War'를 선언, 2천년 4월과 5월 두 달에 걸쳐 매일 1천5백만 페소를 쏟아붓는 전쟁을 벌인다. 이때 삐낏은 전쟁터 한 중심이 된다.
2002년 아로요 정부는 아부사야부와 엔피에이에 다시 'All Out War'를 선언하고 현재 전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