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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사벨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마을에 속하는 퀘존의 한 바랑가이 깔랑기가(calanuiga)에서 만난 여인들은 가난한 현실과는 다르게 얼굴이 밝았다. 대나무로 벽과 마루를 하고 코곤 잎으로 지붕을 얹은 집, 마당에는 똑같은 재료로 크기만 작은 가축들을 위한 집이 있다. 그 옆으로 고구마 감자 녹두 옥수수 등이 보인다.

이 지역은 관개시설이 따로 없어 농민들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비에 의존해 농사를 짓는데 지난해 가뭄으로 농사를 모두 망쳤다. 쌀은 먹고 옥수수는 팔아 현금을 마련하곤 했는데 지난 농사 실패로 먹을 쌀마저 없어 쌀을 지원하기 위해 이사벨라 일라간 주교가 이들을 방문했다.

"이곳 여인들은 첨에 우리가 방문했을때 자신들은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이라고 집안에 숨어서 나오지도 않았어. 근데 이젠 주교님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 잘도 하잖아. 이게 변화야. 이런 변화를 보는 게 내 기쁨이야"

수녀들과 함께 여성농민운동을 돕는 아떼 넬리(54)의 얼굴이 행복하다.

일라간 교구의 사회참여행동센타 산하 여성농민분과를 담당하는 루디 수녀(48, 착한목자수녀원 소속)와 아떼 넬리는 2년전부터 깔랑기가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방문하여 어떻게 사는지, 애로사항은 무언지 같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여인들이 하나 둘씩 모이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하자 글쓰기 셈하기 등을 교육했다.

당시 집집마다 화장실도 없었고 마당에서 밭작물 키우는 방법도 몰랐던 여인들에게 하나씩 생활을 개선하는 방법을 같이 의논하고 품앗이로 서로 화장실 지어주기 등을 했다.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큰 반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 등 여성의 권리에 대해, 농민들이 한 해 두 차례씩 수확을 해도 왜 갈수록 더욱 가난해지는가 등 사회현실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했다.

현재 정부가 몰아붙이고 있는 개발프로젝트를 이미 실시한 바 있는 다른 지역 농민을 불러 농민현실에 대한 정보도 공유했다. 동네 청소년 대상으로 농민의 현실을 이야기 하는 '연극학교'나 '리더쉽 트레이닝'도 진행했다. 이런 다양한 교육을 둘이서 하는건 아니다. 사회참여행동센타의 여러분과에서 서로 역할을 나눈다.

아떼 넬리는 "가난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이들은 이제 텔레비젼 뉴스를 보면서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을 공격한다고 할 때 그 이유가 무언지, 남미의 농민들이 왜 데모를 하는지 그 이유를 판단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루디수녀와 넬리는 여성들의 모임이 자신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하면 더이상 방문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가도록 맡겨둔다. 가끔 안부방문을 하는 정도다. 루디수녀는 "그렇게 되기 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려. 우린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돼."라고 강조한다.

이들의 바랑가이 방문도 갈수록 어려워 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게릴라 잡는다는 핑계로(그러나 이들은 개발프로젝트를 밀어붙이기 위해서라고 믿고 있다) 마을마다 군인들을 상주시키고 있고 간간이 이웃마을에서 폭격소리도 들리고 하여 겁을 먹은 주민들이 이들의 방문을 꺼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할지 걱정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것이다. 우린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 김영옥 (전북평화와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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