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획

[편집자 주] 17일 소파개정과 부시공개사과를 위한 방미투쟁을 했던 한상렬 목사가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방미투쟁 보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10일간의 미국체류 후 여독을 풀 새도 없이 바로 서울에서 각종 투쟁에 결합하고 전주에 온 한상렬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 방미투쟁단이 미국에 갔을 때 많은 재미교포들이 함께 투쟁했는데, 동포사회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먼저 미국인들의 경우를 말한다면,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실을 접하고 같이 눈물을 글썽이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같이 도울 방법이 없느냐"는 미국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재미 동포들은 미국에서 살기 때문에 오는 소극성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이 사건이 한국언론에서도 1면을 장식했고 동포사회에 많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생겨났던 것 같습니다. 워싱턴 집회에서는 한 고등학생이 나에게 인사를 하더라구요. 전날 내가 혈서를 부채에 썼다는 소식과 철야농성 소식을 듣고 7시간 떨어진 곳에서 자동차를 타고 달려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오래동안 거주한 어떤 부인은 익명으로 성금을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한국의 미래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눈물겨웠습니다.

재미교포 젊은이를 보며 느낀 "미래와 희망"

≡ 백악관 앞에서 시위대가 저지당하고 미국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을 TV화면을 통해서 봤습니다.

▲방미투쟁 당시의 한상렬 목사 ⓒ민중의소리
절차를 운운하면서 우리를 무시하고 깔보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파서 "부시 나와라"고 소리를 쳤고. 같이 갔던 분들이 함께 큰소리를 내니까 덩치 큰 미국경찰들이 진압을 했습니다. 이 와중에 한 재미교포 여성이 구속이 됐지요. TV를 통해 그 여성이 짓눌리는 모습 보셨죠? 미국경찰측은 폭력혐의로 중범으로 몰려고 했는데... '왜 이러냐'고 하면서 경찰을 민 것이 중범이라는 건 말이 안되죠. 그러다 여론이 있자 보석으로 풀어줬습니다.

≡ 방미투쟁으로 남긴 성과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미국 언론과 시민들에게 이번 사건을 알리고 반전평화단체들과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국제연대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방미투쟁이 계기가 돼 미국 각 지역의 동포단체들이 하나가 되어 여중생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가 결성이 되기도 했지요.

≡ 이번 투쟁을 통해 느끼신 미국에 대한 생각은?

물론 범대위의 공식적 입장은 이번 투쟁의 수위는 소파개정까지이지만, 개인적으로 지금은 눌려왔던 우리가 마음껏 반미를 외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불미를 떨치고 회개하라 미국, 회미! 철수하라 미국, 철미! 반대한다 미국, 반미! 운동으로 구국을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반미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마음껏 반미 할 때입니다. 물론 이것은 국수적이고 폐쇄적인 반미가 아닌, 열린 반미입니다.

지금처럼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미국도 좋을게 없습니다. 왜냐구요? 자유의 여신상을 보십시오. 한손에 횃불, 한손에 권리장전, 발밑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끊어진 사슬이 있습니다.그런데 미국의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한손엔 군사패권주의, 한손엔 신자유주의 식민정책을 안고 세계 민중을 유린하고 세계평화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겁니까! 백악관 앞엣 철야농성 할 때 건물을 밤새도록 바라봤는데 백악관이 백악관이 아니고 흑악관이더군요. (웃음)

미국이 계속 이러다가는 로마제국처럼 망합니다. 그래서 반미로 구미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국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이건 회원상생하는 것이지요.

"백악관이 아니라 흑악관"

≡ 방미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한국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국민들의 투쟁이 있었습니다. 멀리에서 소식을 접하면서 느낀 소감은?

미국 방문전의 첫 번째 촛불시위도 참가했었는데 광화문의 촛불들은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이 깨어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방미 일정 중에 국내 소식이 들렸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빡빡한 일정에 힘도 들었고 백악관 투쟁수위 때문에 고민도 많아서 잠도 오지 않았지요. 고되었지만 국내 투쟁소식이 큰 힘이 됐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14일 촛불시위에 참여했었는데 다시 한번 우리 국민이 위대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어린이들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을 보면서 이게 바로 역사의 현장이라고 느꼈습니다.

≡ 이번 투쟁을 계기로 소파개정이 잘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방미보고 기자회견에는 취재기자를 비롯 지역 장기수 어른들이 함께 했다.
촛불시위 하루 전날 부시가 전화로 김대통령에게 사과했지만 국민들이 촛불시위에 그렇게 많이 모였습니다. 이건 국민들이 부시의 사과를 인정안하는 것입니다. 사과의 증거는 소파개정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대선후보들이 서명까지 했습니다. 초반에는 범대위를 상대조차 안해주더니 국민들의 분노를 깨닫고는 이제야 우리가 내민 소파개정 서명용지에 서명했습니다. 어쨌든 차기정권에서도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올해 마지막 밤을 민족자주의 밤으로"

▲혈서를 쓴 부채를 든 한상렬 목사
≡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지역 도민과 젊은 청소년들에게 꼭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이 운동은 민족 자존을 찾아야 하는 민족의 운명이 걸린 일입니다. 전라북도는 갑오농민혁명의 발상지인 뜻깊은 곳입니다. 반외세 운동에 지역도민이 꼭 함께 해주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31일에 다시 한번 촛불시위가 있을 예정입니다. 지역도민이 대대적으로 모여서 올해의 마지막 밤을 민족 자주의 밤으로 삼고 희망찬 새해를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