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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필리핀 리포트] 마치며 (2)

편집팀( 1) 2003.01.11 11:46 추천:3

필리핀에 공산주의 무장 게릴라가 활동한 지 올해로 33년 째가 된다. 1968년 필리핀 민중운동은 필리핀 공산당 Communist party of the Philippines(CPP)을 선언하고 산하에 무장 게릴라 New People's Army(NPA)를 둔다. 마르코스 시절엔 그 수가 가히 위협적이었다고 한다.

마르코스를 물리치고 코라손 아끼노가 대통령이 된 후 운동진영은 두 패로 나뉜다. 이제 민주화가 어느정도 됐으니 합법운동으로 나아가자는 부류와 농민 노동자의 현실이 나아진 것이 없으니 계속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는 부류로.

운동은..
"20년 준비해서 10년만에 문닫는 혁명보다 100년 준비해서 200년 가는 혁명이었으면"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조직내 '정부 스파이'를 검출한다는 이유로 서로 죽고 죽이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과오'도 있었다.

90년대 초 마르코스 시절부터 네델란드로 망명해있던 시손(CPP의장)에게서 다시 지방(게릴라에 합류)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지령이 전해졌고 이에 대한 이의제기로 심각한 내분에 빠진다. 동시에 조직내 스파이 검출작전으로 '동지들'에게 고문당하는 기막힌 일을 당한 사람들이 이를 폭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직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후 조직은 7-8개로 분화되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적을 두고 활동했던 활동가들 중 많은 수가 상처를 안고 그 길을 접게 된다.

과거는 오래 지속된다. 분열 이후 필리핀의 운동은 힘을 많이 잃은 듯하다. 게다가 갈라진 조직들의 으르렁거림은 여전히 심각하다. 이들 사이에 때로 영역다툼으로 서로 죽이는 사태도 벌어진다고 한다.

필리핀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를 들으면서 '인간에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아프게 다가왔다. 운동의 과정에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사회를, 이데올로기를 연습하지 않으면 '그날이 와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되새기게 된다. 변화는 우리의 몸에서부터 나올 것이다. 정말로 긴 호흡으로 가야할 것 같다.

70년대부터 빈민운동을 하다 지금은 필리핀을 중심으로 아시아빈민운동을 지원하는 한 선배의 얘기가 가슴에 남는다. "20년 준비해서 10년만에 문닫는 혁명보다 100년 준비해서 200년 가는 혁명이었으면 좋겠어. 더디가도 제대로 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

교육이 희망을 만들 것이다

정치적 이슈와 진보운동사에 커다란 물음표를 들이댔던 나에게, 그 모든 의문들이 사라진 자리에 '교육'이 자리잡았다. 사회변화가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는 걸 실감해서 일까.

'Popular education(대중교육)'이라고도 하고 이를 실현해 '바닥공동체운동'이라고도 했다는, 70년대 브라질의 파울로 프레이레(Paulo Freire)로부터 시작된 대중교육운동의 이념과 접근방식이 나의 눈길을 끈다. 대중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이 길을 찾아가도록 돕는, 그들 스스로 목소리를 밖으로 내도록, 그들의 담론을 만들도록 돕는, 무엇보다 도움이는 그들과의 나눔 속에서 그들로부터 배운다는 대중교육.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런 생각들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풍파를 겪겠지만 중요한 지점은 내/우리가 그들로부터 배운다는 마음자세에 있을 거 같다.

루디수녀의 '오래 걸린다'는 말이 대중들의 변화에만 해당되는 거 같지는 않다. 우리 자신의 변화에도 해당되는 말인 거 같다.


- 김영옥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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