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간의 부시정권 행보를 보고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전쟁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듯이 보편주의적인 비전과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다. 즉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침략을 해방으로 공포를 자유로 전쟁을 평화로 탈바꿈시켜 허가 낸 파괴와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본질은 시장경제를 지배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야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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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인주에서 있었던 반전 집회에서 연설한, 커닝햄 중학교에 다니는 13세의 소녀 샬롯 앨더브런(Charlotte Aldebron)의 말이다.
베트남전쟁도 그랬다. 전쟁을 통해 사상자 300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런 전쟁에 노무현정부는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파병을 결정하고 국회동의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30년 전의 그 아픔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또 다시 미군의 용병이 되어 전쟁범죄를 저지르려고 한다. 베트남 학살의 구체적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때이다.
베트남 양민 학살 현장을 찾아
방문단은 의례적인 행사를 마치고 맹호부대가 주둔한 베트남 중부지역의 빈딘성 따이빈사로 향했다.
'사’는 우리나라의 읍·면 단위에 해당하는 곳이다. 넓고 푸른 논, 초가집같이 나무와 풀잎을 엮어 만든 작은 집들, 한가로이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떼, 전통의상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을 빼면 우리의 비포장 시골길 초여름 풍경이다. 너무 정겹고 친근하다.
그곳의 공산당 서기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웃음 지으며 악수를 하고 있지만 실은 아무런 표정이 없다. 단순히 무표정 한 것만이 아니라 이미 세상을 다 살아버린,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살아온 사람같았다.
살아있지만 허깨비만 움직이는 듯한 그런 사람을 난 한국에서도 본적이 있다. 부모와 누나, 온 가족이 학살당한 노근리 미군양민 학살사건 대책위원장의 얼굴이 이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안내자가 그 분도 민간인 학살 과정에서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잃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눈물이 되어 나온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월이 흐르면 잊혀질 거라고, 그러나 그것은 가해자의 변명일 뿐이다. 이처럼 긴 세월이 흘렀어도 아픔이 내면화되어 존재의 의미마저도 상실한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380명이 학살당한 고자이 언덕의 위령비
고자이 마을의 위령비에 갔다. 제단앞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명단이 제단에 빼곡이 새겨져 있었다. 여섯살, 일곱살된 어린이에서 칠십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여자였다.
방문단 모두는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마음속으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만을 되 뇌이며 우리 모두는 눈물로서 분향하였다.
고자이 위령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기장의 집으로 갔다. 좁은 방안을 가득 메운 우리에게 잔잔한 어조로 그때 그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옆방에는 곱게 단장한 할머니 네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들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미친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들은 다 내가 그때 죽어야 했다고 말한다.
한 할머니의 머리에 큼지막하게 남아 있는 총알자국. 왼쪽 관자놀이에 엄지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정도로 구멍이 푹 패어 있었다. 후유증으로 하루도 편한 잠을 잔적이 없다는 그 분.
어떤 말로 이들을 위로 할 수 있겠는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기억의 상처를 건드리면서 우리는 왜 고통의 기원을 찾아 나 선 것일까? 우리 모두 직접 가해자는 아니지만 한 맺힌 사람들이 눈을 감지 못하고 살아 있는 한 우리 역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까?
모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당혹스러운 현실을 마주하며 자책감으로 괴로워하지만,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헤아릴수 있단 말인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 또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생존자들의 아픔은 이렇게 30년이 지났지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따이한들이 건너왔다는 작은 다리를 옆으로 끼고, 우리는 마을을 빠져나왔다. 측백나무 비슷한 나무가 양쪽으로 키보다 높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건너편엔 울창한 나무숲이 있다.
37년 전 새벽 총을 들고 이 길을 걸어갔을 따이한 병사를 생각해 보았다. 서로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혼란과 야만과 광기의 현장에서 자신이 치르고 있는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명령속에서 스무살 남짓한 어린 병사들이 얼마나 공포에 질렸을까. 그러한 두려움이 끔찍한 일을 벌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연민이 느껴졌다.
한국군에 의해 약 80여건의 학살 사례가 발굴되었고, 9천 여명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이는 한국군 개개인이 특별히 잔인해서 그러한 학살이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클라우제비치가 말했듯이 "전쟁은 단순히 정치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수단이고, 정치적 의도를 따르는 것"으로 조직된 사회집단이 정책의 한 수단으로 행사하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폭력으로서 전쟁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에 대해 야수가 되고, 인간은 동물로 취급되어 사냥감이 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전쟁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듯이 보편주의적인 비전과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다. 즉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침략을 해방으로 공포를 자유로 전쟁을 평화로 탈바꿈시켜 허가 낸 파괴와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본질은 시장경제를 지배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야욕인 것을
- 이전 기사 : [베트남보고서] 잊혀진 전쟁을 마주하며(1)
미국 메인주에서 있었던 반전 집회에서 연설한, 커닝햄 중학교에 다니는 13세의 소녀 샬롯 앨더브런(Charlotte Aldebron)의 말이다.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 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천400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걸........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저는 열 세살이니까, 어떤 아이들은 저보다 나이가 좀 많을 수도 있고, 저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고, .....하지만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와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리 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
베트남전쟁도 그랬다. 전쟁을 통해 사상자 300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런 전쟁에 노무현정부는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파병을 결정하고 국회동의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30년 전의 그 아픔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또 다시 미군의 용병이 되어 전쟁범죄를 저지르려고 한다. 베트남 학살의 구체적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때이다.
베트남 양민 학살 현장을 찾아
방문단은 의례적인 행사를 마치고 맹호부대가 주둔한 베트남 중부지역의 빈딘성 따이빈사로 향했다.
'사’는 우리나라의 읍·면 단위에 해당하는 곳이다. 넓고 푸른 논, 초가집같이 나무와 풀잎을 엮어 만든 작은 집들, 한가로이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떼, 전통의상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을 빼면 우리의 비포장 시골길 초여름 풍경이다. 너무 정겹고 친근하다.
그곳의 공산당 서기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웃음 지으며 악수를 하고 있지만 실은 아무런 표정이 없다. 단순히 무표정 한 것만이 아니라 이미 세상을 다 살아버린,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살아온 사람같았다.
살아있지만 허깨비만 움직이는 듯한 그런 사람을 난 한국에서도 본적이 있다. 부모와 누나, 온 가족이 학살당한 노근리 미군양민 학살사건 대책위원장의 얼굴이 이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안내자가 그 분도 민간인 학살 과정에서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잃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눈물이 되어 나온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월이 흐르면 잊혀질 거라고, 그러나 그것은 가해자의 변명일 뿐이다. 이처럼 긴 세월이 흘렀어도 아픔이 내면화되어 존재의 의미마저도 상실한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380명이 학살당한 고자이 언덕의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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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이 위령비 앞에서 참배하고 있는 한국 참가단 |
고자이 마을의 위령비에 갔다. 제단앞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 침략 원흉들에 대한 분노를 깊이 새긴다. 1966년 2월26일 미국의 지휘 아래 남조선 꼭두각시 군대들이 380명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였다.” |
그리고 그들의 명단이 제단에 빼곡이 새겨져 있었다. 여섯살, 일곱살된 어린이에서 칠십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여자였다.
방문단 모두는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마음속으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만을 되 뇌이며 우리 모두는 눈물로서 분향하였다.
고자이 위령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기장의 집으로 갔다. 좁은 방안을 가득 메운 우리에게 잔잔한 어조로 그때 그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자기 나이 열다섯살 때. 그 운명의 날 새벽. 한국군은 마을로 들어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오랜시간 엎드리게 하였다. 사람들을 잡아왔고 뭔가를 설치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 무서워서 고개를 들 고 볼 수 없었다. 이후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는데 보니 힐긋보니 사람들의 창자가 튀어나오고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발 밑에 수류탄같은 것이 떨어졌는데 앞으로 피했다. 그 후 뭔가 수없이 날아와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방안에 자기와 어머니, 누이동생이 누워 있었다. 누이동생과 어머니는 모두 두 다리가 잘려나갔다. 먼저 누이동생이 숨을 거두었고, 동네사람들이 돗자리에 동생을 말아서 데리고 나갔다. 어머니는 옆에서 신음소리를 내다가 소리가 약해지더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머니도 동네사람들이 여동생처럼 말아서 데리고 나갔다. 아주 심하게 통곡하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고 부상을 심하게 당한 상황에서도 아팠던 느낌이 없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죽은 후 어린 나이에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막해진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형은 이미 해방전쟁에 참가해서 전사한 뒤었고 자신은 온몸에 파편이 박힌 그는 천애의 고아가 된 것이다. 몸이 회복되고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산으로 들어가 총을 잡았다고 한다. |
옆방에는 곱게 단장한 할머니 네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들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미친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들은 다 내가 그때 죽어야 했다고 말한다.
한 할머니의 머리에 큼지막하게 남아 있는 총알자국. 왼쪽 관자놀이에 엄지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정도로 구멍이 푹 패어 있었다. 후유증으로 하루도 편한 잠을 잔적이 없다는 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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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 |
![]() |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총탄의 흔적 |
![]() |
▲생존자들을 부여안고 울먹이는 한국 참가단 |
어떤 말로 이들을 위로 할 수 있겠는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기억의 상처를 건드리면서 우리는 왜 고통의 기원을 찾아 나 선 것일까? 우리 모두 직접 가해자는 아니지만 한 맺힌 사람들이 눈을 감지 못하고 살아 있는 한 우리 역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까?
모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당혹스러운 현실을 마주하며 자책감으로 괴로워하지만,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헤아릴수 있단 말인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 또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생존자들의 아픔은 이렇게 30년이 지났지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따이한들이 건너왔다는 작은 다리를 옆으로 끼고, 우리는 마을을 빠져나왔다. 측백나무 비슷한 나무가 양쪽으로 키보다 높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건너편엔 울창한 나무숲이 있다.
37년 전 새벽 총을 들고 이 길을 걸어갔을 따이한 병사를 생각해 보았다. 서로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혼란과 야만과 광기의 현장에서 자신이 치르고 있는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명령속에서 스무살 남짓한 어린 병사들이 얼마나 공포에 질렸을까. 그러한 두려움이 끔찍한 일을 벌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연민이 느껴졌다.
한국군에 의해 약 80여건의 학살 사례가 발굴되었고, 9천 여명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이는 한국군 개개인이 특별히 잔인해서 그러한 학살이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클라우제비치가 말했듯이 "전쟁은 단순히 정치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수단이고, 정치적 의도를 따르는 것"으로 조직된 사회집단이 정책의 한 수단으로 행사하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폭력으로서 전쟁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에 대해 야수가 되고, 인간은 동물로 취급되어 사냥감이 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 오두희 님은 인권운동 및 평화운동가로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소파개정국민행동 등의 평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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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ian
2014.03.14 12:51
당신들은 어느나라 사람인가? 전쟁의 비극속에서 있을수밖에 없는 민간인 피해에 대하여 포커스를 맞춰 노병들의 애국을 '학살'로 몰아가는 짓거리야말로 하루빨리 이땅에서 사라져야할 비극 아닌가? 사실을 사실대로 공부하라! 이슈를 위한 말장난은 결코 역사가 용서하지 않으리라! -
송영복
2014.03.14 12:51
" 귀홈페이지 오두희기자의 글은 전쟁터를 모르는 철부지가 올린글이니 수정바랍니다. 인간의 심성은 하나뿐인 목숨을 버리기 싫어합니다. 승전국이 된 베트남 현정부는 자국의 인민을 살상한데 대해 책임이 큽니다. 그러니 현정부 관리들을 만나면. 왜 당신들은 인민들을 그렇게도 많이 살생했느냐구. 따져보세요. 그래서 책임을 느낀다며, 옛 월남정부를 되 돌려준다면 한번더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월남참전자들이 있으니 귀하들이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으며, 반전을 주장한 독일,프랑스,러시아를 한번 보세요. 이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굽실대는 꼴을 보면 귀하들은 어떤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세상의 물정도 모르는 기자가 쓴글이니 믿지 마세요. " -
이현태
2014.03.14 12:51
월남이 패망하고 태평양바다에서 숨진 난민에 대하여도 쓰야 하고 종전후 자국민을 확살한것은 외 입을 다물고 있는가 글을 쓸려면 공평하게 쓰야하는것이 정상이 아닌가 욕먹지 않도록 글을 쓰야 하는것이지 우리 자국민을 매도하는 기사를 쓰는것은 당신이 대한민국의 국민인지가 의심스럽다 우리 베트남참전자들에 의해서 이나라가 지금의 경제성장으로 배불리 먹고 살면 고마운줄을 알아야할것을 그렇지 못하는 필자가 야속합니다 -
팔공산
2014.03.14 12:51
오늘 참 더러운 글를 접하게 됨에 마음이 슬슬함을 느낀다. 이 글를 쓴 주인공은 분명 이북사람이 아니면 간첩이고 간첩이 아니면 분명 좌경분자임에 틀림이 없는것 같다. 지금 북한에 갔서 물어봐라 625가 남침이냐고? 그들은 북침이라고 할것이다. 똑같은 이치다. 알고 싶으면 제데로 자리를 찾아야지 아무던 이드희라는 기자 몸조심좀 해야겠다. 되지도 안는 말로 자국의 이매지를 흐리는 자는 우리 나라를 위해서도 이북으로 가든지 아니면 베트남으로 갔으면좋겠다. 여기서 살려면 사상부터 바로하고 살아야겠다. 에이... 눈을 씻서야겠다. -
김일근
2014.03.14 12:51
" 오두희기자는 6.25전쟁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피해가 얼마나 되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고싶다. 한국군 사망/전사자 137,899명, 부상 450,742명, 실종/포로 32,838명에 유엔군 사망/전사 40,670명, 부상 104,280명, 실종/포로 9.931명과 전쟁미망인 30여만명, 고아 10만여명, 남한 민간인 사망/학살 373,599명, 부상 229,625명, 납치/행불 387,744명에 대하여는 누가 사죄하여야 하는가?" -
이성우
2014.03.14 12:51
기사를다루는기자라면서......한쪽귀만달고사나? -
이강택
2014.03.14 12:51
오두희 기자인지 확실하게 묻고십다 전쟁의 쓰라림을 경험하지않은자는 전쟁이야기을 할수없고 들어서 망상으로 말하지말라 당신은 민족에게 엄청난 반역 행위를 자행하고있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으로 보고있는 오두희기자는 공산주의는 이미 흘러간 사상이요 이싯점에 논하는것은 그만큼 뒤저있으며 이라크가페망하고있는점에대해 알고있는것인지 묻고십다 지구을 떠나라 -
서울청학
2014.03.14 12:51
" 이분노! 베트남 민족의 평화를 주려다가 지금이시간에도 고엽제 후유증 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이땅에
국가유공자를 두고 그곳에가서 고개 조아리는
그면상들,,,,아..통탄한다" -
오호홉
2014.03.14 12:51
저기요. 위에 글쓴 냥반들 글보고 글 읽어봤는디...글이나 제대로 읽고 쓰혀야지라이...난 또...밑에 글만 읽고 진짜 나쁘고만 생각하고 읽었드만 아니고만.....참말로.......호호호...이런 경우가 있다요. 위엣말 쓴 사람들 맞습니다. 맞고요...다시 한번 읽어보시고 쓰시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