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22편_성모님의 암자와 렐리에호스
이냐시오 영신수련과 퍼실리테이션은 상호 보완 관계다
<칼사다 델 코토 마을을 벗어나며 풍경을 담아 봤다. 아침은 무척 춥다. 손이 시려워 사진을 찍는 것도 싫어진다.>
오늘은 렐리에호스(Reliegos)로 향한다.
이 길에서는 라면 맛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소다.
라면을 먹을 기대감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아침 7시, 알베르게에서 제공받은 아침을 즐겼다.
기부제(도네이션) 알베르게는 기본적으로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을 주는데, 허기를 잠재울 정도다.
기본메뉴로는 우유와 치즈, 빵, 시리얼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이거라도 주는 것이 어디야!
식사 동안 알베르게 관리자가 리셉션 자리에 앉아 계속 우리를 주시하며 오늘의 목적지가 어딘지 묻는다.
“We’re going to 렐리에고스(Reliegos) today”-오늘 렐리에고스까지 갈 예정이에요.
그러자 관리인이 마을 이름에 대해 렐리에고스를 렐리에호스라며 발음을 교정해 준다.
‘우리가 갈 마을이 렐리에호스구나!’
<순례길에서 죽은 맨프레드 프레드리히를 기리는 십자가 비석의 모습>
알베르게를 나서며 나는 10유로를 도네이션함에 넣었다.
조금 넣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장 회장님은 가지고 있던 동전을 모두 넣으셨다.
2유로, 1유로, 50센트 동전들이 기부함에 떨어지는 소리가 우렁차다.
동전이 풍성하게 쌓여가는 소리가 관리자분의 기분을 좋게 했나보다.
갑자기 알베르게 관리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장 회장님께 다가와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가게 될 멜리데라는 마을에 지인이 있으니, 그 알베르게로 가라고 알베르게 이름과 관리자 이름, 전화번호를 적어주셨다.
‘대체 얼마를 넣었길래 관리자가 저런 친절을 베풀까?’
오늘은 20여km를 걸을 계획이다.
언덕도 없고, 평지만 계속 이어진 길이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360km가 떨어져 있다는 표지석이 보인다.
오늘의 길에 대한 나의 감정을 표현하면 지루함이다.
대부분 도로변 길을 따라 걸었다. 차도 옆을 걷는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길을 가던 중 어제 함께 잠을 잤던 프랑스 자전거 순례자를 다시 만났다.
“니 보스 어딨어? 왜 너 혼자가?”
나는 왠지 장난치고 싶어져서 “He’s gone!”-그는 떠났어-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눈물을 닦는 연기를 펼쳤다.
이 말을 직역하면 ‘그는 갔어’이지만, 해석할 때는 ‘나를 버리고 완전히 떠났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내 장난에 어이없었는지,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며 중얼거린다.
장 회장님께 들으니 나중에 그 프랑스인을 만났다고 한다.
회장님께 손짓으로 뒤를 계속 가리키더라고!
그 손짓은 ‘니 일꾼이 뒤에 있어. 같이 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나 보다.
지금도 그 프랑스 자전거 순례자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장난쳐서 미안하는 말과 함께 꼭 ‘카페콘레체(카페라떼와 비슷함)’를 사줘야겠다.
<성모님의 암자 성당의 내부를 보기 위해 작은 창문 앞에 섰더니 이런 물건들이 장식돼 있어 사진에 담아봤다.>
<성모님의 암자 모습. 이 성당의 내부의 성모상이 독특하다고 한다. 내부는 보지 못했다.>
예수는 광야에서 사십일간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
첫 번째 유혹은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때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 라고 답했다.
지금 무척 배고픈 예수에게 이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유혹을 던진 것이다.
두 번째는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유혹이었다. 권력과 부귀영화를 탐하는 탐욕과 관련이 깊다.
예수는 하느님만을 섬겨야 한다고 대답한다.
세 번째는 성전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보라는 유혹으로, 이것은 능력에 대한 과시 유혹이다.
이에 대해 예수는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다.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망을 거부하며, 능력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말해준다.
‘만일 니가 유혹을 받았다면 어떻게 했겠니?’
나에게 이렇게 질문해 던져 본다.
두 번째, 세 번째 유혹은 내 관심사가 아니기에 충분히 이겨낼 수도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게 첫 번째 유혹이 진정 나에게 달콤한 것이었다.
‘나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원하는 사람이다.’
지금 이냐시오 영신수련 중 죄묵상 과정에 몰두하고 있다.
앞서 끝냈던 고등학교까지의 죄묵상은 1년 단위로 끊어서 바라봤다.
지금은 20살 대학생 때부터는 30살까지는 분기별로 끊어서 바라보고 있는 상태다.
오늘 대학생 때와 군대에 있을 때의 시간을 살펴보고 있다.
이냐시오 영신수련은 예수회 창립자인 로욜라 이냐시오가 쓴 피정 지침서다.
영신수련 가운데 죄묵상의 본질은 식별(분별)에 있다.
죄의 근원이 악(마)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찾아내야 한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를 좋아하는, 그리고 퍼실리테이터라는 자격을 갖춘 나에게는 잘 어울리는 방법이다.
퍼실리테이션 안에는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이끌어낸다는 규칙이 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것이 나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좋은 질문을 만드는 것이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런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통찰(인사이트)로 연결되도록 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주님의 위로와 거짓 예언자들의 값싼 위로를 구별하라.’
이냐시오 성인이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지침이었다.
어느덧 엘 부르고 라느로(El burgo ranro)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에는 산 페드로(Iglesia San Petro) 성당이 있다.
옛날에 이 곳에 아름다운 성모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성모상이 너무 아름다워 레온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레온에 가면 꼭 성모상을 봐야지!’
<엘 부르고 라느로 마을 모습이다. 정면으로 산 페드로 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 제대화 중심에 베드로 성인 성상이 서 있다. 이 성당에 있던 성모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레온대성당으로 옮겼다고 한다.>
길을 걷다 꼭 들러야 할 장소가 있다.
지난 1998년 순례길에서 죽은 맨프레드 프레드리히(Manfred kress Friedrich)를 기리는 십자가 비석이다.
더불어 이곳에는 성모님의 암자(Ermita de Nuestra Senora de Perales)가 있다.
이름이 이렇게 붙은 이유는 성모상의 모습이 독특하기 때문이란다.
걷는 것은 참 좋다.
나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 같다.
걷다 보면 이런 저런 여려 생각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 다시 또 생각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정도 정리된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역시 목적지인 렐리에호스에 도착하니, 생각이 많이 정리됐다.
<라면 맛집이라고 한국순례자들의 블로그 글이 많았다. 라면을 먹는데 우리가 먹는 라면과 다르다. 면과 국물이 너무도 이질적이다. 이것은 라면일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긴것은 라면인데 맛은 라면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메뉴판을 보니 한국인들이 많이 오긴 하나보다. 신라면은 한글로 써있다. 한그릇에 7,500원이다. 햇반은 코로나로 인해 지금 수입이 안된다고 한다.>
렐리에호스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인구는 200여명정도다.
마을에 들어올 때마다 드는 생각은 스페인도 초고령사회라는 점이다. 농촌은 공동화현상이 심각해져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소멸위기마을로 가득했다. 농촌지역에서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젊은 사람은 너무도 귀하다. 이곳 공립 알베르게 관리자분도 할아버지다.
우리는 체크-인을 마친 후 순례자의 일상적인 활동인 샤워와 빨래를 했다.
스페인에서 빨래를 하고 햇빛에 1시간 정도 널어놓으면 완전히 말라있다.
역시 태양의 나라다.
내일은 대도시 레온(leon)에 들어간다.
레온에서 해야 할 일이 많기에 2박을 할 숙소를 검색했다.
내가 찾은 숙소는 레온 까미노 호텔(Hotel Leon Camino)이다.
레온대성당까지 1.6km떨어져 있어 레온을 둘러볼 때 거리도 적당하다.
‘드디어 레온이구나!’
벌써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렐리에호스 공립 알베르게 입구>

<렐리에호스 마을 모습. 마을이 작다. 스페인도 우리나라처럼 농촌지역은 소멸위기다.>
레온부터는 순례자가 많아집니다. 레온 대성당 입장료도 만만치 않지요. 공립알베르게는 엄청난 규모이고, 발 치료를 해주시는 봉사자들도 계셔서 염치불구하고 발을 내밀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