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기의 달이 뜨면...
현재의 불안을 견디는 우리 모두에게
에릭 라슨의 '폭격기의 달이 뜨면'은 전쟁을 지도자의 결단, 그리고 시민의 용기가 어떻게 견뎌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며, 1940년 런던 밤하늘에 떠오르던 ‘폭격기의 달’을 떠올렸다. 달빛이 고요히 번질수록, 독일 폭격기가 가까워졌고, 시민들은 숨을 죽인 채 긴 어둠을 통과해야 했다.
그 두려움은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도 닮아 있다. 2025년의 대한민국,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폭격기’를 기다리는 밤을 지나고 있다. 국회는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탄핵소추를 의결했지만, 최종의 문은 헌법재판소 앞에 닫혀 있다. 현재 8명의 재판관만으로 구성된 재판부는 민주주의의 운명을 재단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같이 묻는다. 이 불빛은 새벽을 예고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침묵의 시작인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적은 이들에게 이토록 큰 빚을 진 적은 없었다.”
처칠의 말 속 ‘적은 이들’이 전투기 조종사들이었다면, 오늘 우리의 ‘적은 이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계엄을 막아낸 평범한 시민들이다. 그들은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방공망이었다.
“달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법’이라는 단어의 이면을 떠올렸다. 원래는 정의를 품어야 할 말이지만, 오늘의 현실에서 법은 쉽게 탈선하고, 검찰이라는 법 기술자들의 손에서 조작되고 왜곡되는 도구로 전락했다. 법은 빛이 되어야 할 터인데, 민중을 겨누는 최루탄처럼 느껴진다. 고요한 달빛이 폭격의 길잡이가 되었듯, 법 또한 정의를 배반할 때, 그 자체로 공포가 된다.
이 책은 단순한 전쟁 서사가 아니다. 그 안에는 폭격의 공포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가족들, 무너진 건물 속에서도 다음 날을 준비한 시민들의 얼굴이 있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오늘의 한국을 다시 바라본다. 무너진 신뢰 속에서도, 여전히 창문을 열고 불빛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그 불빛이 언젠가는 새벽이 되기를, 그렇게 다시 역사가 움직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