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획

여행의가치 2장. 자연 앞에 작아지는 용기

데본포트와 마운트 이든…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5.04.25 00:06

20250227_202823.jpg

<오클랜드의 야경 모습>

 

오늘 하루의 가치 조각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숙한 태도는 감탄과 침묵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부딪힘이 아닌 어울림의 모습이다.

 사람과 사람의 따듯한 연결감은 작은 배려에서 시작한다.

 여행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는 조용한 배경이 되어준다.

20250227_142545.jpg

<하버브릿지는 오클랜드의 상징물로 남과북을 연결하는 핵심다리다. 길이는 약 1,020M란다.>

20250227_113709.jpg

<데본포트에 도착했을 때 마치 여러 나무줄기들이 한몸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은 오클랜드의 둘째 날.
 구름 가득한 아침 하늘이었지만 공기만큼은 신선했다.
 첫날의 여정이 남긴 피로는 신기하게도 도시의 공기에 녹아 사라지고 있었다.

 오클랜드 시내버스를 타기 전, 우리는 AT 홉카드를 구입했다.
 교통비가 비싸기로 자자한 나라. 대신 대중교통은 저렴하게 잘 갖춰져 있는 곳이다.

 우선 구글맵을 통해 오클랜드 다운타운 스카이시티에서 데본포트로 가는 방법을 검색했다.

 구글맵은 빅토리아 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하버브릿지를 넘어 선 후 환승을 하고 데본포트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우리는 빅토리아 공원에서 버스를 탔다.

 그리고 하버브릿지를 건너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여유롭게 손짓했다.
 바다 건너의 데본포트는 가까운 듯 멀고, 익숙한 듯 낯설었다.

 데본포트는 18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지어진 영국식 건물이 도로변을 따라 서있는 장소다.

 데본포트라는 이름은 영국 플리머스 항구 도시의 이름을 따서 개칭된 명칭이라고 한다.

 데본포드 거리를 따라 내려오면 작은 숲속도서관이 있는 해변 근처에서 노스헤드 트랙과 만난다.

 우리가 노스헤드 트랙을 걷기 시작한 건 오전 10시 반쯤이었다.

 현무암 가득한 해변길은 마치 나에게 익숙한 제주도를 떠올리기 충분했다.
 한쪽은 태평양이 이어진 만이, 다른 쪽으론 다운타운 마천루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바다와 첨단 도시의 어울림이 환상적이었다.
 언뜻 보면 서로 부딪힐 것 같은 이질감이지만 그 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다름이 부딪히지 않고 어울릴 수 있다는 감동.
자연과 인공, 과거와 현재, 고요함과 분주함이 묘하게 잘 어우러지고 있다.

 노스헤드 정상에서 본 스카이시티와 빅토리아피크는 사람과 자연이 손을 맞잡고 살아가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풍경처럼 느껴졌다.

 인상적이었던 랑이토토섬도 지척에 보였다.

 랑이토토섬. 바다 위에 홀로 솟은 그 섬은 한때 사나운 불을 뿜던 화산이다.

 눈앞에 펼쳐진 검고 거친 용암의 대지.

 불덩이처럼 끓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모든 생명을 삼켜버렸을 것이다.

 나무도, 새도, 바람도. 모든것이 사라졌다. 그저 죽음만 남았다.

 지금 그 죽음위로 다시 생명이 피어났다.

 검은 바위 틈 사이로 나무들이 자라고, 그 위를 날아오르는 갈매기들.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서, 다시 생명이 시작된 것이다.

 랑이토토섬은 마치 '너희의 삶도 때때로 완전히 무너져도 다시 생명이 피어나기에. 절망조차 희망의 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마. 아픔도 상처도 말이야. 그것들은 언젠가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 줄꺼야.'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가장 자주 잊는 진실이었다.

20250227_132353.jpg

<노스헤드 정상에서 바라본 랑이토토섬의 모습>

20250227_131511.jpg

<오른쪽 빅토리아피크 아래로 데본포트가 형성되고, 건너편에 마천루는 스카이시티다.>

20250227_142226 (1).jpg

<데본포트에서 스카이시티로 향하는 페리에서 본 오클랜드 다운타운 모습>

 

나는 노스헤드 트랙을 걷다 눈에 띈 안내판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뉴질랜드는 토종 자생식물 보호를 위해 '그린워(자연전쟁)'선포한 나라였다.
 한 줄기 풀조차 가볍게 다루지 않는 이들의 태도가 진심으로 감탄스러웠다.

 현재 뉴질랜드엔 184종의 자생식물이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북섬 오클랜드에서만 자생하는 유포르비아 글라우카, 헤베 오브투사타, 나우풀 같은 희귀식물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고 소개했다.

 진정 한 걸음 한 걸음이 생명을 위한 싸움이었다.

 그 순간, 문득 지난해 전북 완주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기후위기 수업이 떠올랐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나이든 노인일수록 어린시절의 땅과 지금의 땅이 다른 것 같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물종이 사라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것이 기후위기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그 변화가 손에 잡히지 않기에, 우리는 그것을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로 넘겨버린다.

 마치, 조용히 꺼지는 불빛 하나쯤은 세상의 어둠에 별 영향 없다고 믿듯이.

 그 수업에서 나는 젠가 블록을 통해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했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의 블록이 빠져 나올때마다 흔들리는 구조를 가진 젠가. 결국 그 어떤 것(어떤 생물종이) 빠지면 결국 젠가 전체가 무너져 버린다는 것을.

 어떤 생물종도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이제 미래의 후손들이 살아가게 하기 위해 우리 시대에는 개발과 파괴가 아닌 보전과 공생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여기 노스헤드의 그 식물들도 희귀종이 됐다는 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명이 생겼다는 뜻이다.
 노스헤드 트랙에서 나는 이 나라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감사하고, 내가 사는 한국이라는 곳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찾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보존’이라는 말이 아니라, 진짜 ‘지키기 위한 실천’이라는 것을.

20250227_193839.jpg

<마운트 이든에 오르게 되면 홀로 우뚝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가 있다.>

 오후 들어 데본포트에서 페리를 타고 다시 스카이시티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 오클랜드 야경을 보기 위해 마운트 이든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면서 벌어진 일이다.
  모든 승객들이 타고 내릴때마다 운전기사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르면서 “하이”, “헬로우”라고, 내릴 때는 하나같이 “땡큐”라고 말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공공의 공간에서 생기는 이 따뜻한 연결감은 그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지표 같았다.
  그들은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이동하는 사람’으로 운전기사를 대하고 있었다.

  마운트 이든에 도착해 숲길을 걸어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덩굴식물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숲.
  그러다 나는 한 나무 앞에 멈춰 섰다. 그 나무는 마치 마오리족의 수호신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땅을 지키는 듯했고, 하늘의 소리를 받치고 있는 듯했다.

  밤 8시가 되어 정상에 다달았다.

  석양이 천천히 번졌다.

  도시는 붉은 빛에 잠기고, 하늘은 하루를 마감하는 마지막 색을 펼쳤다.

  미세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하늘 아래, 나는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그 날, 나는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보았다.

  조용히 걷고, 바라보고, 사람과 나무와 바다와 도시가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웠다.

  여행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묻는 배경이 되어준다.

  그날 나는, 아름다움 앞에서 침묵하는 용기를 배웠다.

  그리고 그 침묵이 삶을 다시 정돈하게 만든다는 것도. 

20250227_202756.jpg

<마운트 이든에서 본 오클랜드 야경>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