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가치 3장. 나를 걷는 법 '높이 아닌 깊이'
퀸스타운, 벤 로몬드, 그리고 와카티푸 호수…나와 함께 홀로 걷는 길
<하늘에서 본 남섬의 모습>
오늘 하루의 가치 조각
여행은 나 자신의 보는 거울이다.
걷는다는 것은 나에게 삶과 관련된 질문을 던져준다.
회복한다는 것은 상처를 안고 가는 것과 같다.
사람에게 기쁨의 선물이 되어 주면, 그 선물은 나에게 행복이 되어 돌아온다.
자연은 말이 없지만 나에게 침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퀸스타운 도미토리로 향하는 길에 본 페러글러이더와 바그파이프연주를 연습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하늘오늘은 오클랜드를 떠나 뉴질랜드 남섬 퀸스타운으로 떠나는 날이다.
비행시간이 1시여서 다소 늦게 호텔 체크아웃을 했다.
스카이시티에서 공항으로 향하던 중 공항셔틀버스의 고장으로 도로 한복판에 서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다음 셔틀버스가 오기까지 30여분동안 버스속에서 정처없이 앉아 있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된 일이기도 하다.
내 옆 좌석에 뉴질랜드에서 한달동안 남섬에서 지내다 오늘 우리나라로 귀국하는 대학생이 앉았다.
차량 고장은 그의 남섬 여행기를 더 자세히 듣는 시간이 됐다.
특히 테카포라는 지역 이야기에서는 그의 눈빛이 그 어떤 설명보다 반짝거렸던 느낌이다.
“별이 쏟아져요. 진짜로요. 고개를 들면 그냥 우주가 있어요.”
그 한마디는 내 마음에 오히려 다른 불씨를 던져준 질문처럼 느껴졌다.
'이 여행은 자연을 보러 온 게 아니라 나를 다시 보러 온 길은 아닐까?'
<벤 로몬드 트랙 이정표>
비행기는 당초 예정보다 한 시간가량 늦게 퀸스타운에 도착했다.
그 이유는 착륙 직전 강풍(윈드시드)으로 인해 고 어라운드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기내에선 작은 긴장감이 돌았고, 재착륙에 성공하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
작년 네팔 에베레스트 트레킹이 겹쳐 생각났다.
그 때, 루클라에서 카투만두공항으로 올때였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20명정가 탑승할 수 있는 경비행기로, 산과 가깝게 위를 날아 순간 잘못되면 바로 추락할 것 같은 공포가 있다.
그런데 그 비행기가 잘 가다 갑자기 선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행기가 선회하면 바로 아래의 산이 더 가깝게 보인다.
그 순간 ‘앗! 비행기 고장났나보다!’하는 생각과 함께 겁이 덜컥 났었다.
그 경비행기가 카투만두 공항에 내려앉았을 때 비행기에 탑승한 모두가 우래와 같은 함성과 함께 박수를 쳤었다.
우리가 박수를 치는 건, 착륙 때문이 아니라 무사히 도착한 자신에게 건네는 안도의 표현 아닐까.
퀸스타운에 도착한 그 날은 숙소 체크인 후,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퍼그버거’를 먹고, 와카티푸 호수를 산책하며 보냈다.
<벤 로몬드 트랙을 오르게 되면 민등산을 따라 걷게 된다.>
<벤 로몬드 새들에서 본 풍경>
다음 날.
오늘은 벤 로몬드 트랙을 오르는 날이다.
이 트랙을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티키 트레일을 거쳐 가야 한다.
티키 트래일에서 느끼는 것은 정말 울창한 숲이라는 점이다.
하늘 높이 뻗어 있는 나무들이 가득했다.
함께 온 장종혁 회장님을 1시간 앞서 먼저 보냈기 때문에 지금 이 길은 나 혼자만의 자유를 느끼는 길이다.
나는 함께 걷는 것보다 혼자 걷는 길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혼자 걷는 길은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행동을 성찰하고, 삶의 의욕을 북돋는데 최적화된 것 같다.
이번 걸음에서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 나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50이라는 나이의 시간은 새로운도전의 의미는?’
이런저런 생각과 대화속에 어느새 티키 트래일 정상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벤 로몬드 트랙으로 연결된다.
벤 로몬드 트랙 입구를 지나면서부터 숲은 사라지고 민둥산이 펼쳐졌다.
벤 로몬드 산은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회색빛 나무군락을 보며 처음에는 단풍으로 생각했으나, 가까이 가서 보면 산불로 숲이 그을려 나무채 숯이 되어버린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같으면 벌써 재건을 위해 전부 다시 심었을텐데, 왜 그대로 두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누군가는 산불의 흔적을 그대로 두는 것에 불편함이 크겠지만, 나는 이순간 뉴질랜드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고통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회복은 지우는 게 아니라 안고 가는 거라는 걸.’
어느덧 벤 로몬드 새들(중간 봉우리)에 도착했다.
새들에서 보는 경관도 정말 황홀했다.
깍아지른 산 봉우리들이 가득한 산그리메는 정말 환상이었다.
‘정상에 오르면 더 멋진 풍광이 펼쳐지겠지!’
이런 기대속에 정상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급격히 올라간다.
이 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은 산악자전거를 메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일행들이다.
정상에 올랐을 땐, 그들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잘못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저렇게 타고 내려가는 모습이 내 눈에는 ‘무모함’ ‘걱정스러움’으로 비쳐졌다.
오후 2시. 드디어 벤 로몬드 정상에 섰다.
사방이 뚫려 있었다. 와카티푸 호수가 아래에서 반짝였고, 퀸스타운의 마을은 마치 정교하게 깎은 조각처럼 놓여 있었다.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한 여성이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정상에 함께 발을 디딘 모든 사람이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줬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은 오늘이 자신의 60번째 생일이고,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힘든 이 산을 올라왔다는 것이다.
정상에 오른 것이 믿지기 않을 정도로 기쁘고 행복하다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다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새들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좋은 하루와 행복한 시간되라는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도 다양한 것 같다.
나에게 벤 로몬드 정상에 선다는 것은 높이 올랐다는 의미보다는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행복감이다.
오늘 생일을 맞은 그분이 벤 로몬드 정상에 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봤다.
가정 먼저 떠오른 단어들은 ‘치유’, ‘위로’, ‘연민’, ‘감사’, ‘성취’ 였다.
물론 이것이 아닐지라도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선물이 되어준 이 사건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분의 역사의 현장에 내가 함께 서 있었다는 사실도 어찌보면 나에게 또다른 선물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벤 로몬드 새들을 지나면 저 앞에 보이는 정상까지 급격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정상에서 바라본 퀸스타운과 와카티푸 호수의 모습>
산을 내려온 시간은 오후 5시.
오늘은 3월 1일(토)이다. 뉴질랜드는 3월 첫주간이 스코틀랜드 주간이다. 이 시기엔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을 입고, 바그파이프를 연주하는 시기다.
퀸스타운에서도 스코틀랜드 주간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뉴질랜드 남섬은 19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인들이 많이 정착한 지역이라고 한다. 이들이 스코틀랜드를 기억하기 위해 전통과 문화를 여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내 귀에 익숙한 바그파이프 연주음악이 흘러나왔을 때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오후 6시. 와카티푸 호수 앞에 섰다.
햇빛이 물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발을 담갔다.
빙하에서 내려온 물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그 차가움은, 감각이 아니라 마음에 닿았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을 가장 선명하게 알려주는 듯하다.
차가운 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잠시 멈춘 시간.
그날 나는 벤 로몬드를 오르며 배웠다.
산은 내게 높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만 깊이를 알려줬다.
걸어 올라온 만큼, 나는 나를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었고,
더 멀리 있는 것들과 조용히 연결될 수 있었다.
자연은 언제나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안엔 삶을 바꾸는 힘이 있다.
나는 그 힘을 길 위에서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주간 행사를 하고 있는 퀸스타운 시민들>
<퀸스타운의 명물 루지. 보는 것만도 즐겁다>
<타키 트래일을 오르게 되면 보게 되는 집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