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획

여행의가치 4장. 길을 잃은 산에서 삶을 배우다

퀸스타운 힐…길을 잃었을 때 내가 보인다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5.04.28 21:03

20250302_102611.jpg

<퀸스타운 힐 입구로 오르는 도로>

 

오늘 삶에서 배운 가치 선물

  길을 잃었다는 것은 어떻게든 행동하라는 신호였다

  우리는 동행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연 앞에 서면 사람은 겸손해진다. 

 

20250302_114525.jpg

<퀸스타운 힐 중간부분까지 올라오면 원반이 있다. 원반 근처에서 어제 오른 벤 로몬드 정상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퀸스타운 힐을 오르는 날이다. 

사실 오늘은 전날 벤 로몬드를 이어 아서포인트(문라이트 트랙)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두가지의 이유가 나를 가로막았다. 

첫째는 벤 로몬드 트랙과 이어지는 곳이라 같은 경관이 봐야 한다는 점.

둘째는 12시간 상을 걸어야 하는 트래킹이라는 것.

순간 내려놓기로 했다. 

'욕심내지 말자. 오늘은 퀸스타운 힐만 둘러보고 쉬는 시간을 갖자.'

간단히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섰다.

퀸스타운 힐 입구.

여기 입구까지 올라오는 길도 만만치 않다.

체감상 60도의 경사를 15분 가량 올라선 것만 같다. 

입구에서 마주한 숲은 숨이 막힐 만큼 웅장하다.

아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서 있는 나무 한그루 한그루들이 너무도 매력적이다.

하늘로 솟구친 나무들이 만든 초록의 터널을 걷다 보면, 세상의 소음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왠지모를 편안함에 감싸이는 기분이다. 

나무들은 새들은 물론 나(사람)까지 말없이 안아주는 강력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옛날 가을동화라는 드라마에서 은서(문근영)이 준서(송상헌)에게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어." 이에 준서는 "그것만은 기억할께. 나무"라고 했던 명대사. 

지금 여기 서 있으니 이 순간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20250302_114955.jpg

숲이 끝나니 햇살 쏟아지는 민둥산이 나타났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뙤얏볓 아래 걷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이미 벤 로몬드에서 경험했듯 퀸스타운 힐 역시 여기서부터는 그늘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길을 걷다 만난 커다란 원반 조형물. 

여기에 왜 이런 것이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이 원반은 우주인이 놓고 갔어요. 이 장치는 우주인과 소통할 수 있는 최첨단 기기에요."

"작동방법은요 원반에 손을 올리고 10바퀴를 돌면 되요."

함께 간 장 회장님과 농담을 하던 중 우리 대화가 재밌다는 듯 웃어주는 커플이 있었다.

그들도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원반을 만지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선심을 내비쳤다.

그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한 후 원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저 멀리 어느 행성에서 살고 있는 우주인과 만나길 기대하면서!

한국에서 온 커플의 모습은 산행을 위한 복장이 아니었다. 

퀸스타운 힐은 마을 뒷산을 오르는 느낌이라고 하지만, 오늘 이 곳을 오르면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아웃도어처림이 아닌 사람은 이들이 유일했던 것 같다.

그 곳에서 만난 한 커플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따뜻함'이다. 

서로 손을 꼭 잡고 함께 걷고 있는 모습 속에서도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주고, 좀더 편한 길을 내어주려는 배려가 들어있었다.

즐거운 시간을 가지라는 인사와 함께 서로의 길을 다시 출발했다. 

20250302_121123.jpg

<정상에서 본 와카티푸 호수와 퀸스타운>

 

어느덧 정상이다. 

와카티푸 호수와 그 주변으로 퀸스타운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참 작아보인다. 

'인간은 한 점 티끌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동안 아둥바둥대며 살아온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20250302_125549.jpg

<새로운 정상. 정상석인지 모를 돌무더기. 그리고 주변에 한가득 똥덩어리들.>

20250302_123245.jpg

<새로운 정상을 향해 가는 길. 퀸스타운 힐 정상보다 더 높아보이기에 저 위까지 올라보기로 결정했다.>

저 멀리 여기(퀸스타운 힐 정상)보다 더 높아보이는 다른 언덕이 보였다.

'저기까지 가보자!'

우리는 정상 너머 또 다른 봉우리를 목표로 삼았다. 

멀리 보이는 곳이 더 높아 보였기에 진짜 정상처럼 생각됐다.

그곳에 도착하니, 양과 소들의 똥밭이었다. 

앞쪽 방향으로 길이 보이기에 그 길을 향해 계속 가고 싶었고, 왠지 돌아가는 것은 너무도 싫었다. 

아뿔사.

산길을 따라 내려가던 중 길이 사라졌다.

길이 사라지기 전에는 클레이 사격장도 지나쳐 온 바 있다.

그 곳을 지날때 '출입금지'라는 표지가 있었지만, 무시하고 계속 길을 걸어왔었다.

자물쇠로 길을 막아 놓았던 사격장 입구길은 옆을 살짝 돌아서 겨우겨우 빠져 나온바 있다.

그런데 지금 길이 끊어진 것이다.

지도에도, 발밑에도 더 이상 길은 없었다.

똥밭정상에서 여기까지 돌고 돌아 3시간을 내려온 뒤에야 깨달았다. 우리는 길을 잃었다.

여기서 되돌아간다면 퀸스타운 힐 입구까지 6시간은 족히 걸린다.

클레이사격장길을 다시 올라가는 것을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났다.

함께 있던 장종혁 회장님이 갑자기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자고 제안의 말씀을 하신다.

아니 제안이라 말하기 무색할 정도로 '내려가자'라는 말을 내뱉고 바로 움직이셔서 이미 골짜기를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자리에 서서 10여분을 혼자서 고민했다.

'내려가야 할까? 돌아가야 할까?'

처음에 장 회장님을 따라 내려가려다 바로 원위치로 돌아왔다.

그 이유는 내려가는 길이 블루베리 가시밭이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는데 저 멀리서 '안내려와?'하며 소리치는 장 회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려갈께요!"

'아! 내가 정말 내려갈 수 있을까!'

내 마음은 이미 걱정과 슬픔으로 한가득이다.

조금 내려가니 가시가 온 몸을 찔러 왔다. 

이미 양 손바닥은 가시로 긁히고 상처투성이로 변했다. 

10분을 내려가니 장 회장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은 내가 내려오지 않을 것 같아 걱정했다고 하신다.

없는 길을 앞서 만들고 계신 장 회장님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골짜기를 따라, 가시밭을 헤치며. 손에는 상처가 나고, 신발 안은 흙과 돌이 들어찼다.

길을 만들며 간다는 것. 그래서 더 두려웠다.

20250302_141115.jpg

<갑자기 길이 없어졌다. 아래로 마을이 보이는데 갈 수가 없다.>

20250302_143517.jpg

<골짜기를 따라 미끄러지며 길을 내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웃음을 주는 엉뚱한 상황이 생겨났다.

어디선가 산양 한마리가 나타나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는 나의 곁에 5m 정도간격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계속 따라 붙는 것이었다.

산양이 멈춰있을 때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았다.

'저 사람들 뭐지? 우리집에 와서 뭐하는 거지? 이상한 사람들이네!'

마치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렇게 30여분을 내려오니 마을길에 닿았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고, 장 회장님과 향해 길을 만들어 주신 노고와 함께 감사인사를 드렸다.

그 순간 팔목과 손, 손바닥의 고통과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지. 무사히 내려온 것만도 감사해야 할 일이야.'

만일 나 혼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길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분명히 돌아갔을 것이다.

함께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동행은 때로 강한 힘이 된다. 함께였기에 없는 길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250302_163916.jpg

<힘든 시간을 보내고 와카티푸 호수에 발 담그며 놀때가 정말 행복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 와카티푸 호수로 향했다. 

힘든 여정이어서 그런지 차가운 빙하수가 너무도 시원했다. 

얼얼한 감각이 온몸으로 퍼졌다. 마치 살아 있다는 감각.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저녁에는 고생한 장 회장님에게 김치찌개 한 그릇을 대접했다.

음식값은 비쌌지만, 그날의 수고와 함께 나눈 따뜻함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것이다. 

길을 잃었던 하루. 나는 그날 배웠다. 길을 잃어야만 깨닫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삶에서도 종종 길이 없는 것 처럼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행동해야 한다. 비록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더 강해질 수 있다

오늘은 길이 사라진 그 곳에서 깨달음을 얻은 소중한 날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