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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34편_휴양지같은 포르토마린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그리고 이상한 사람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2.1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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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 막달레나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 이곳이 사리아의 공립알베르게다. 우리는 공립 알베르게로 가지 않고 호스텔에서 지냈었다. 아침에 여기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오늘은 포르토마린까지 22km를 간다.

순례자가 많이 늘었다. 한국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서로간의 인사도 적고, 처음 만난 사람들간의 대화도 거의 없다.

여기에 중고생처럼 보이는 스페인 학생들도 많아졌다. 스페인 대학생들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스페인 학생들은 순례증명서를 받으면 학점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부터는 순례자들간의 동질감이 떨어졌다는 느낌이 크다.

프랑스길을 걸어 오며 피레네산맥을 넘고, 수비리와 팜플로냐를 함께 경험했던 순례자들.

부르고스와 레온에서 철의십자가까지 같이 했던 순례자들과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가수 김세환의 ‘목장길 따라’라는 노래가 있다.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 님 함께 집에 오는데~.

이 노래는 보헤미안 민요(Stodola Pumpa)를 번안한 곡이란다.

제목을 번역하면 헛간의 물펌프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목장길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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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를 넘어서면 바로 평원이 펼쳐진다. 주변은 목장들이다. 냄새가 심하게 난다.>

 

길을 가던 중 목장에 있던 한 마리 말이 내 앞에서 고개를 내민다.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대화를 시도했다.

“넌 이름이 뭐니!” 아는 스페인어를 동원했다. “Nombre?”- 이름?

계속 킁킁대길래 나는 그 말의 이름을 “킁킁이”로 불러줬다.

말과 이렇게 가깝게 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 다가갔더니, 내 옷을 물고 잡아 당겼다.

배낭 속에서 당근 냄새가 풍기나 보다.

내 옷에 말의 침이 잔뜩 묻어 있어서 휴지로 닥아내느라 고생했다.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 이후론 말을 보기만 할 뿐 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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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이와의 만남. 킁킁아? 잘 지내고 있지?>

 

한참을 가니 ‘참새 방앗간’처럼 순례자들이 어떤 조그만 공간에 들어갔다 나온다.

어떤 곳인지 몰라 확인차 그곳에 들어갔다.

순례자들이 써 놓은 소망의 글이 한가득이다.

여기는 성모마리아 경당(Capela de Santa marina)

‘이곳에는 성모님께 소원을 빌어달라 청원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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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의 간절한 이야기가 이 제단에 올려져 있다.>

 

 

100km 표지석이다. 이곳에서는 잠시 줄을 서야 한다.

순례자들의 사진스팟이기 때문이다.

앞서 사진을 담는 순례자들은 모두 웃음을 띄고 있다.

나는 사리아에서 출발하면서 오늘 100km 표지석을 만나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별다른 느낌이 없다.

생장에서부터 800km라는 먼 거리를 걸어 왔던 연예인 ‘손미나씨’는 100km 표지에서 이런 고백을 했었다.

매일 매일 힘들었다고. 빨리 이 길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막상 100km표지석을 만나니 마음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깊은 내적 고백을 드러냈다.

“내가 이 길을 걷기 전과 후에 내 인생이 같을 수 없다. 이제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이제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다.

손미나씨의 말이 무척 공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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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00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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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이 오늘 점심을 쏘시기로 했다.>

 

100km를 지나온 기념인지 장 회장님이 맛있는 점심을 사시겠다고 한다.

나는 문어요리(Pulpo)를 사달라고 했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뿔포를 주문했다. 25유로다.

양도 그리 많지 않다. 비싼 음식이다.

형은수 선생님으로부터 ‘뿔포 예찬’을 들었었기에, 갈리시아 지방에서 맛보고 싶었다.

뿔포는 입 속에서 사르르 녹는다. 문어를 씹는 식감이 무척이나 부드럽다.

하지만, 나에게는 식감이 덜하니 먹는 맛이 덜하다고 할까?

뿔포예찬까지는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실망하면서 먹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장 회장님과 트러블이 생겼다.

“윤 국장은 음식 챙기기에 참 유별나?”

“감자기 왜 그런 말을 하세요?”

이유를 물었을 때, 대답은 예전에 같은 말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윤 국장처럼 그렇게 챙겨 먹지 않는다고.”

 

나도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앞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로 향하던 중 일어났던 갈등이 겹쳐 생각났다.

비야카사르 성당에서 기도하고 ‘그가 원하는 데로 하여라!’는 응답을 받았기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드렸다.

그 당시 내가 가진 모든 현금을 드리면서 금전적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내가 챙겨 먹는 것은 내 맘이니 회장님께서 이러쿵 저러쿵 말씀하지 마세요. 왜 그런 말을 하시는지 내가 알 바도 아니지만, 기분이 안 좋네요.” 따끔하게 충고했다.

또 같이 걷기 싫어진다.

회장님을 앞서 보내고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파울리와 산드라(앞이 보이지 않는 여성분) 부부를 다시 만났다.

반갑게 인사한 후, 오늘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파울리는 어젯밤 숙소에서 알베르게 주인과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단다.

산드라 때문에 항상 개인실을 예약하고 다니는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숙소 주인이 방이 없다고 했단다.

나중에는 허름한 구석방을 내줬다고.

산드라는 옆에서 듣기만 한다.

“Sandra? Are you ok?”- 산드라 괜찮아요?

그녀는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은 안 괜찮다는 뜻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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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으로 들어가는 중. 저 다리를 건너면 포르토마린이다.>

 

나는 세상에는 딱 세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옛날 송광호가 나오는 영화인데, 그 제목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어제 그들이 머문 숙소 주인은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상한 버릇이 또 나를 자극한다.

‘그럼 너는 너 자신을 어떤 부류라고 생각하니?’

내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역시나 나는 ‘이상한 놈’ 부류다.

어쩌면 오늘 이들 부부와의 대화가 앞으로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목적지인 포르토마린에 도착했다.

포르토마린은 휴양지같은 느낌이었다.

2세기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고풍스런 다리 유적지를 지나면 깨끗한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알고 보니 본래 포르토마린은 수몰됐다고 한다.

1960년 이곳 미뇨강에 댐이 건설되면서 옛마을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가장 주목해야 할 장소는 니콜라스 성당(Iglesia de San Nicolas de Portomarin)이다.

이 성당은 수몰지에서 분해해서 위쪽으로 가져와 다시 쌓았다.

사람들의 정성과 애정이 대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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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의 명물. 2세기에 만들어진 다리다. 이 다리를 통과하면 깨끗한 포르토마린 시내를 만난다.>

 

오늘은 운이 좋게 개인실을 받았다. 비용은 다인실 비용을 냈다.

우리가 오늘 늦게 도착한 탓에 4인실은 모두 만실이었다.

주인은 더 이상 올 손님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우리에게 2인실을 내 주었다.

휴양지에서 편안하게 휴양하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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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뇨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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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에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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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에서2_이정표에 서울도 있다. 여기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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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에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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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에서4_니콜라스성당.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보지는 못했다. 과거에 이 성당은 병원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성당의 특이한 점은 성채처럼 윗부분이 성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둥근 장미창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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