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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38편_몬테 도 고조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간 순례가 시작되다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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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까지 10km 남았다. 지금은 산티아고를 출발해 반대방향으로 역주행 하는 순례자들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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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 신발아! 너와의 인연은 평생 잊지 못할꺼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착까지 10km 남았다.

나의 걸음을 이곳에 남겨두고 싶어 그동안 함께 했던 경등산화를 벗어 길가 나무에 걸었다.

환경 문제 때문에 금지된 행동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자꾸 걸어두라고 재촉한다.

‘앞으로도 수 많은 순례자들이 지나갈텐데,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어!’

강한 열망이었다.

 

몬테 도 고조에 도착했다.

여기는 산티아고대성당을 향해 손을 들고 있는 동상이 서 있는 장소다.

가야 하는 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 동상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잠시 길을 벗어나야 한다.

사실 여기에 도착하면 산티아고에 거의 다 왔다.

이제 도시로 들어가는 것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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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도 고조 순례자 동상. 같은 모습을 취해본다.>

 

산티아고대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Plaza de Obradoiro)에 섰다.

여느 순례자들처럼 성당 맞으편 시의회 아치 밑에 앉아 한동안 성당을 바라봤다.

잠시 후 파울리 산드라 부부가 도착했다.

산드라를 보자마자 포옹을 나누고, 축하를 나눴다.

하느님이 산드라처럼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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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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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사무소에 들러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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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대성당의 제대와 향로>

 

장 회장님과 순례자 사무소에 들어가 완주증명서와 800km 거리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저녁 7시, 미사 시간에 맞춰 성당으로 향했다.

주례 사제가 오늘 산티아고에 도착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준다.

가장 먼 곳에서 도착한 사람의 이름부터 불리는 것이 전통이다.

첫 번째 불린 영광의 이름은 나의 순례길 스승이자 친구인 필리핀 순례자 벨이다.

‘벨도 도착했구나! 벨, 축하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코리아에서 온 장(종혁), 윤(창영)이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미사 도중 향로예식(보타푸메이로)도 거행됐다.

미사를 마치고, 벨을 만나서 푸짐한 저녁 성찬을 가졌다.

벨과 장 회장님은 와인을 부어라 마셔라 한다.

오늘 밤, 얼큰하게 취한 두 노친네의 모습이 왠지 귀여워 보인다.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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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발견하면, 여기서부터 산티아고다>

 

둘째 날이 밝았다.

어제 여행사에 들러 피스테라와 묵시아를 둘러보는 투어 신청을 마친 바 있다.

아침 8시에 집결 장소에 도착하니 김홍경씨가 서 있었다.

장 회장님과 김홍경씨를 같은 좌석에 앉게 하고, 나는 따로 혼자 앉았다.

우리 투어 버스의 가이드는 여성이다.

갈리시아의 역사를 스페인어와 영어를 번갈아 하면 설명해준다.

내가 알아들은 투어 프로그램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갈리시아 지방의 특이점은 육로의 전쟁보다 대서양에서 들어오는 해전이 많은 곳이었다.

특히, 무로스와 코루냐라는 마을에서 해전이 많았고, 이곳이 갈리시아를 지켜낸 역사적 장소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에자로 폭포(fervenza do ezaro)다.

이곳 경치는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에자로 폭포는 우리 무주 설천에 있는 양수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위의 묵시아 호수와 아래의 대서양 기수역 간의 높이차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있다.

다음으로 로마제국 당시 세상의 끝이라고 했던 피스테라로 갔다.

이어, 묵시아로 향한다.

묵시아는 제자들이 야고보의 유해를 싣고 풍랑에 이끌려 육지와 만났던 지점이다.

이렇게 돌아본 후 다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돌아오면 저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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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여행사 피스테라 묵시아 1일투어가 거의 매일 있다. 성당 옆 골목에서 리플렛을 나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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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피스테라. 0.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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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배경으로 장 회장님과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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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아기념탑과 뒷편 성모성당. 앞의 기념조형물은 우리나라 태안반도에서 처럼 이곳에서도 유조선 사고로 인해 기름유출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했다고. 그 기념으로 이 조형물을 세웠다고 한다.>

 

셋째 날이 밝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마지막 휴일이다.

아침에 프레도를 만나 모닝커피를 즐겼다.

프레도가 갑자기 산티아고대성당의 비밀을 알려준다며 나를 잡아 끈다.

먼저 야고버 성인의 은관이 있는 장소로 나를 데려갔다. 이곳은 이미 본 장소다.

다음으로 대성당 내에 있는 소성당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오후에는 전통시장을 둘러본 후, 산티아고 꼬마열차를 타고 도시를 돌아봤다.

꼬마열차 탑승자는 내가 유일하다.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줄 때에는 챙피하기도 했지만 재밌고 유쾌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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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탑승한 꼬마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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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전통시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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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대성당 한쪽에 숨어 있는 공간에 소성당이 있다. 이곳에 무슨 성물이 있는지 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장종혁 회장님과 함께 드디어 38일간의 순례길 여정을 마쳤다.

몸이 힘든 날에는 감정이 움트면서 생각 이상으로 상대방에 대한 미움도 생겼었다.

걷는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것임을 알게 된 현실의 벽도 크다.

어떤 이의 말처럼 어쩌면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 일 수도 있다.

장종혁 회장님이 없었다면 버스 이동(점프)의 유혹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오르테가로 가는 길에서는 가장 무너질 위기에도 처했었다.

함께 한 회장님께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점프를 했다고 해서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걸어서 완주하는 것이 자신이 만나는 은총의 길을 더 선명하게 알 수 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keep Going!’- 끝까지 걸어가

이것만 반드시 지키라고 했던 순례길 봉사자분들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다.

 

기나긴 인생이라는 시간 속에 38일이라는 산티아고 순례여정은 정말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평생을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 길을 걸은 후 걷기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느 아나운서의 고백은 지금 나의 고백과 같다.

Simple is Best – 단순함이 최고다.

이 말을 순례길로 옮긴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다.

Simple joys are Holy – 단순한 삶은 거룩함이다.

‘단순함’이 주는 기쁨과 홀가분함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가톨릭신자로서의 나에게도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 길이다.

 

사실,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말이다.

만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고민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걱정하는 것들이 그곳에 가면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 길에는 천사들도 널려 있다.

수 많은 천사들이 ‘별의 길’을 인도할테니 말이다.

 

한국에 돌아와 문규현 신부님과 이런 얘기를 나눴다.

“신부님이 새만금(해창갯벌)에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를 하신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이제는 마음으로 보여요.”

문규현 신부님은 삼보일배 동안 겪었던 수많은 애환을 들려주신 적이 있다.

오물을 온 몸으로 받아야 했던 서러움을

어깨가 짓눌리고 무릎이 깨지던 고통을.

엎드린 속에서 굴러오는 깡통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풀벌레의 소리를.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적시는 땀방울의 소중함을.

지금의 신부님 삶은 곧 삼보일배가 지탱하는 삶이라고 여긴다.

삼보일배가 신부님의 시작이고 마침이다.

문규현 신부님도 삼보일배를 하기 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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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를 떠나는 날 아침이다. 마지막으로 성당 모습을 담아봤다.>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당신이 이 길에서 참된 자신을 만나게 되고,

서둘지 않고 충분히 마음속에 그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다면.

순례자여, 이 길이 큰 침묵을 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 침묵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임을 알게 된다면.

순례자여, 그대는 정녕 행복하여라!

 

나는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순례의 길을 떠날 것 같다.

아마 장기간 떠나게 되는 때라면, 문규현 신부님과 헤어지는 날일 것이라 느끼고 있다.(아닐 수도 있겠지만)

다음 순례길은 혼자서 떠날 것이다.

홀로 침묵 속에서 움직여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설명하지 않아도 응축한 노래가 있다.

그 음악은 Stone by Stone이다.(stone by stone buddy comfort)

프란치스코 삶을 표현했다.

 

if you want your dream to be – 만일 너의 꿈이 이뤄지길 원한다면

build it slow and surely – 너의 꿈을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세워라

small beginning, greater end –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heartfelt work grows purely – 그 일에 진심을 담아 순수하게 키워나가라

if you want to live life free – 만일 너가 자유롭게 살길 원한다면

take your time go slowly – 천천히 걷는(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라

do few things, but do them well – 조그만 것이지만,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simple joys are holy – 단순하게 사는(즐기는) 것이 거룩함이다

day by day, stone by stone – 날마다 한개 한개씩

build your secret slowly – 너의 소중한 것을 천천히 만들어 나가라

day by day, you’ll grows too – 날마다, 너 또한 성장할 것이다

you’ll know heaven’s glory – 너는 하느님의 뜻(영광)을 알게 될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지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순례의 여정 38일은 축복의 시간이었다.

그 길을 완주하는 순간, 순례자들 모두는 원한 바를 이루었으리라.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이 순례자들의 귀를 울리고 있을 것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그대여! 이제 진정한 순례를 시작하라.”

 

나는 나의 순례길을 시로 만들어 봤다.

 

태양과 바람 그리고 은총의 발걸음

 

바람이 휘날리는 나의 발걸음

물결처럼 우아하게 소년이 되어가는 순간

태양과 바람, 그리고 나무에 물든 나의 사랑

모든 생명 가운데 너무나 작은 존재임을 깨닫죠

내 어깨 위에 실린 삶의 무게를 안고서

산티아고의 부름이 울리는 그 아름다운 순간

태양과 바람이 나를 감싸고, 작은 나는 그 속을 걸어가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내 모습 가벼워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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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에 입성. 포르투는 정말 멋진 도시였다.>20230420_203220-EDIT.jpg

<포르투의 명물 야경보기. 이 시간에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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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역. 해리포터의 영화에서 나오는 런덕역의 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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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모습이 그대로 있는 아빌라. 여기는 아빌라의 데레사가 태어나 자란 집이 있는 곳이다. 집 자리에 성당을 지었다.아빌라의 데레사는 대데레사로 불리며 가톨릭 4대 영성가 중 한명이다. 상상력과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대데레사 영신수련법을 통해 묵상과 관상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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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빌라의 데레사 침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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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에 있는 알카사르 궁전. 스페인 통일왕국의 여왕인 이사벨이 지냈던 궁전이다. 디즈니랜드의 모델이래나 뭐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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