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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밀양을 살다 국가는 밀양주민을 버렸다

[칼럼] 밀양의 비극, 삼평리에서 재현될 것

박중엽(대구경북민중언론 뉴스민 기자)( jbchamsori@gmail.com) 2014.06.13 20:59

햇볕 좋은 날이다. 다소 서늘한 공기는 등산하기에 좋다. 수백 명이 산자락에 가득하다. 모자를 짓눌러 쓴 여자들은 자락길 중턱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단팥빵을 뜯어 먹고 있다. 이들은 얼굴이 타면 안 된다거나, 단팥빵 칼로리가 높다는 등 신변잡기를 늘어놓는다. 산 중턱을 오르는 남자들은 등산이 정력에 좋다느니, 제1기동대가 그래도 나이가 젊어서 제일 쌩쌩하다는 농을 주고받는다.

중턱에 모여 앉아 브이 자를 그리며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이들이 검은색 경찰 장구를 착용하지만 않았다면, 어느 날씨 좋은 날 산보하러 온 무리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평화로운 이들의 모습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101번 송전탑 공사부지(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 승학산 정상부근)에 있는 천막농성장을 철거하러 가는 경찰, 밀양시, 한전 직원들이다. 더러는 불과 수십 분 전 다른 마을에서 울부짖으며 저항하는 할머니를 끌어내고 농성장을 철거했다. 그리고 지금 행정대집행이라는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하러 주민들에게 가고 있다.

밀양 주민들에게 국가권력은 법도 상식도 없었다

행정대집행 하루 전인 10일 오후, 115번 움막농성장에 미리 도착했다. 경찰이 이날부터 출입을 통제한다는 소식에 주민들만 안다는 샛길로 미리 들어갔다. 움막농성장에서 처음 만난 연로한 주민의 분위기는 뜻밖에도 차분했다. 국가폭력에 한없이 약한 자들의 체념이었는지, 누적된 피로였는지, 짓밟히는 몸을 만인에게 전시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폭력이 짓밟을 수 없는 무언가를 지녔다는 믿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시계추를 멈출 수는 없었고, 행정대집행의 시간은 다가왔다. 주민들도 움막농성장의 ‘마지막’을 대비했다. 차분한 분위기 사이로 흥분과 두려움이 간간이 비집고 나왔다. 할머니들은 농성장 아래 구덩이로 들어가 쇠사슬에 목을 묶었고, 수녀들은 농성장 입구를 막고 미사를 시작했다. 움막농성장, 주민들의 길고 긴 흔적이 곧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고 이들이 끝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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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번 움막농성장 안에서 주민들이 목에 쇠사슬을 걸고 강제철거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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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번 움막농성장 강제철거가 시작하자 신부와 수녀들이 농성장을 지키며 미사를 시작했다

당도한 경찰은 오랜 기간 농성을 이어오며 엮어온 주민들의 삶을 끊어내는 저승사자였다. 행정대집행 영장을 읽는 모습도 영락없이 명부를 읽는 저승사자다. 이어 주민들을 끌어내고 농성장을 철거하는 모습은 수많은 훈련을 거친 양 일사불란했다. 농성장을 철거하고 공사를 시작한다는 강력한 국가의 의지 앞에서 주민들이 목에 묶은 쇠사슬은 한낱 실오라기에 불과했다. 

법은 민중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주민들이 아우성치는 현장에서 법과 상식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현장에서 경찰은 행정대집행을 주도하는 위법을 저질렀다. 고착 당해 쓰러진 주민을 접견하려는 변호사를 내팽개쳤고, 위험한 현장이라며 기자를 끌어냈고, 사복을 입고 채증을 반복했다. 주민, 연대자, 그리고 기자들도 소리치며 항의했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송전탑을 세우겠다는 국가 의지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국가로부터 버려진 밀양 주민들은 움막에서 모두 쫓겨났다. 이제 남은 움막은 없다. 움막이 철거된 후, 염호석 열사 시신을 탈취해 장례를 치르게 한 경찰처럼 한전은 곧바로 중장비를 투입해 공사를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이 “이것이 국가인가”라고 물었다. 이것이 국가냐고? 국가는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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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번 움막농성장 강제철거에 저항하던 한 주민이 주저앉아 있고, 경찰은 주민을 둘러싸고 고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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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싸움

2008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촉발된 밀양 송전탑 싸움은 주민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 채 일단락됐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송전탑을 뽑아내겠다는 사람도, 밀양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주민에게 큰 상처만 남긴 채 잊힐 지도 모를 일이다. 12일 언론 지면은 밀양의 참혹한 현장보다 “일본 식민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장식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월드컵은 또, 밀양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잊게 할 것이다.

밀양 주민들의 이야기를 몇 마디 쉬운 말로 재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비극과 희극의 아우성 속에서 곧이어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송전탑 공사도 강행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6월 11일, 밀양에서 확인한 것은 한전이 송전탑 공사 강행이라는 단 하나의 시나리오만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밀양 주민들의 비극은 삼평리 주민들에게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그럼에도 삼평리 주민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망루 농성까지 해가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주시하는 언론도 적고, 현장에 함께하던 모 국회의원도 삼평리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밀양에 달려갔던 발걸음들은 이제 공사 강행을 앞둔 삼평리에도 이어져야 한다.

115번 움막농성장이 철거되는 것을 눈을 부릅뜨고 기록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노트북을 펼쳐 현장 상황을 기록하고 있을 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밀양까지 달려온 삼평리 주민이었다.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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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장에서 농성 중인 삼평리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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