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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25편_산마르틴에 울리는 영혼의 흔들림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2.0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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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셨다.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옆에 동전주머니는 4년전 바르셀로나에서 샀던 주머니다.>

 

오늘은 성주간의 화요일이다.

레온을 떠나 산 마르틴 델 카미노까지 25km를 걷게 된다.

성주간이어 그런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마음이 무거우니 발걸음까지 무겁다.

큰 도로길을 따라 걷고 있다 보니, 만나는 마을도 많았다.

마을에는 카페가 있어 좋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사랑하는 수준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근처 카페가 보이자마자 바로 들어갔다.

 

순례길에서 경험하는 긴급한 일들이 있다.

오늘 장 회장님이 손수 보여주신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 아침 레온 까미노 호텔에서 조식을 든든히 먹었다.

그런데, 회장님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한다.

회장님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도로 옆 들판 속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들어가셨다.

잠시 지나 다시 환한 미소를 띠며 돌아오신다.

순례길에서 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종종 발견한다.

주변에 카페도 없고, 화장실도 없기 때문에 실례를 해야 할 일이 생긴다.

순례길 바로 옆에서 일을 치르는 분들도 있어 당황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미리 대비하기 위해 일과를 시작할 때마다 반드시 ‘밀어내기’를 하고 출발하는 것이 현명할 것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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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회장님이 들판 속으로 들어가셨다. 여기 어딘가에 숨어계신다. 뭘 하고 계실까?>

 

지금은 30대 중후반과 40대 초반의 죄묵상을 진행중이다.

이 시기에 나는 신문기자였다.

이 시기를 되돌아보면 악한 생각도 많이 했고,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일도 많이 했었다.

기자생활은 남들보다 뒤늦게 시작했다.

30살이 훌쩍 넘어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사회부 수습기자로 전북경찰청에 출입할 때에는 나이 어린 선배 기자들에게 말도 되지 않는 핀잔도, 상처도 받았다.

사회부 기장의 일상은 새벽 5시에 파출소(당시 지구대)를 한바퀴 돌고, 7시가 되면 완산경찰서와 덕진경찰서로 가서 사건을 확인한다.

오전 10시가 되면 전북경찰청으로 들어와 사회부장(데스크)에게 사건보고와 취재지시를 받는다.

새벽부터 고생해서 알게 된 사건들은 ‘단 3줄로 끝나는 사건단신’으로 기사를 정리한다.

나는 기자생활을 하면 사회에 대해 더 빨리 배우고 알수 있을 것 같았다.

30살때까지 산골에 쳐박혀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기에, 이것이 사회에 나와 적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 생각했다.

 

당시, 가장 기억 남는 사건은 ‘익산 신동 미용사 살해사건’이다.

20대의 남자가 미용사의 집으로 들어가 금품을 훔치고 그녀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한 사건이다. 그 죽은 여성을 옥상을 끌고 올라가 사간까지 했던 끔찍한 사건이다.

이 용의자가 경찰에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광역수사대로 들어갔다.

광역수사대에 들어갔더니, 용의자가 앉아 있고 그 옆에 그의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물어야 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러나, 취재를 하는 것은 옆에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 비수를 꽂는 일 같아 주변만 맴돌며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용의자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비웃듯 입가에 미소를 띄는 것이다.

그때 그 장면이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소름 돋는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악마다!’

나에게 있어서 사회부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게 하는 부서였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나는 함무라비법전이 최고의 법전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시절의 사회부 경험이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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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휴식을 취할때의 모습이다.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말리는 일은 너무 당연한 일이 됐다.>

 

나이가 많은 영향이 있어서인지, 정치부로의 발령이 빨리 났다.

도청에 인사를 가니, 가깝게 지냈던 선배 기자들은 ‘정치부로의 초고속 입성’이라며 비아냥소리를 해댄다.

도청은 보도자료도 많고, 기사꺼리가 넘쳐난다.

나는 경력도 짧기 때문에 당연히 실무부서인 2청사로 배정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뿔사! 회사에서는 나에게 1청사를 맡으라고 한다.

부장이 2청사를 맡는다고 한다. 나만 실컷 굴려 먹고 자신은 놀고 먹겠다는 심보다.

1청사는 도지사실과 부지사실, 기획관리실, 국장실 등을 담당한다. 실무부서가 아니기에 보도자료는 없다. 직접 취재해야 하는 곳이다. 대신 전라북도 전체를 흔드는 굵직한 정보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부와 비교하면 정치부는 천국이다.

취재도 편하고, 대접받는 수준도 사회부와는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기자로서 삶을 생각해보면 나의 편안함을 위한 타협을 해 왔던 잘못.

기자로서 삶을 돌이켜보면 나의 이득을 위한 둔갑을 해 왔던 잘못.

기자로서 삶을 돌이켜보면 나의 욕심을 위한 행동을 해 왔던 잘못.

마치 내가 하고 있는 잘못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이런 일 때문에 괴로워했다.

‘나는 기자와 맞지 않는구나!’

 

오늘 복음 말씀은 최후의 만찬이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식사중이었다.

그때 예수님은 마음이 산란해 제자들에게 드러내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 다른 모든 제자들이 배반하더라도 저는 배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 말을 들은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히 말한다. 너는 새벽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배반한 제자다.

그런 제자가 교회의 반석이 된다.

하늘의 눈은 베드로의 회심에 있다고 본다.

잘못을 알고, 통회하고, 다시 하느님께로 가는 것.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그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행동을 하느님은 가장 어여삐 보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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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틴 델 카미노를 가기 위해서 자주 마주치는 도로가 N-120번 도로다>

 

조금 있으면 오늘 목적지다.

우리 앞에 절뚝거리며 걷는 한국인 여성을 발견했다.

머리카락은 양갈래로 따고 햇(hat)을 눌러썼으며, 레깅스를 신고, 큼직한 배낭을 메고 걷고 있다.

나는 포니테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양갈래머리는 항상 귀엽게 느껴진다.

먼저 가서 말을 걸었다.

말을 들어보니 경상도 처녀다.

양갈래머리를 한 경상도 여자가 하는 말이라 더 귀엽게 보였다.

‘양갈래머리(삐삐머리)는 왜 귀여운걸까?’ 혼자서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다.

그녀도 오늘 목적지는 산 마르틴이라고 한다.

조심히 잘 오라는 안부인사를 전한 후 길을 서둘어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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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산 마르틴 델 카미노가 보인다. 로마시대에 산 마르틴이라는 군인이 투르의 주교가 되면서 그가 머물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마을이름이 그의 이름이 됐다고.>

 

이런 저런 생각속에 어느덧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에 도착했다.

산 마르틴 알베르게에 여장을 풀자마자 바로 근처 성당으로 향했다.

레온을 벗어나 시골 마을에 들어오니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이 작은 탓에 성당은 잠겨 있었다.

성당 앞에 홀로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듣고 싶었던 음악은 존덴버 ‘Today’다.

오늘 정말 듣고 싶은 노래였다.

볼륨을 최대로 크게 하고,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만으로 따라 불렀다.

갑자기 뭉클함이 밀려온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슬픔의 눈물은 아니다.

‘오늘은 슬픈 노래가 듣고 싶은거니?’

 

나는 슬픈 노래를 듣고 싶을때는 알레그리의 미세레레(Allegri-miserere)를 듣는다.

이 음악은 예수가 죽음을 맞이한 성 금요일에 부르는 시편이다.

교황청 소속 작곡가이자 사제였던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작곡한 참회곡이다.

시편 51장의 내용으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탐한 다윗이 간음에 대한 참회를 다룬 내용이다.

15분 동안 부르는 이 합창곡은 엄청 높은 음계를 왔다갔다 한다.

당시에는 여성이 부를 수 없었기에 변경기 이전의 정결한 소년(카스트라토)이 높은 음을 담당했다고 한다.

성주간 금요일에만 불리는 이 곡은 떼네브레(Tenebrae) 전례때 사용했다고 한다.

떼네브레는 기도를 시작하며서 열다섯개의 초에 불을 켠다.

기도를 바치는 동안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완전히 버리고 달아난 것을 가리키기 위해 한명씩 사라지는 상징으로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는 의식이다.

촛불이 15개인 이유는 예수가 골고타언덕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무덤에 안장되는 순간까지를 기억하기 위해서란다.

예수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촛불이 꺼진다.

이것이 성 금요일에 하는 떼네브레 예식이다.

이 전례 예식때 교황청 시스티나 성당에서 불린 음악이 미세레레 메이(Miserere Mei)다

미세레레 메이는 라틴어로 ‘주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이 노래가 너무도 아름답다는 이유로 성 금요일 로마 교황청 시스티나 성당에서만 부르도록 지시하고, 단 3부의 악보만을 보관했다.

필사 또한 금지시키며 철저히 관리했다.

전해지는 일화에는 1770년 이 음악을 한 번 듣고 필사해버린 14살의 소년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소년의 이름이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다.

모차르트의 채보 사건 이후 오늘날까지 이 음악은 전 세계에 오직 15개의 판본이 전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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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틴 마을 거리 모습.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

 

로마 바틴칸에 가면 시스티나 성당을 꼭 보게 된다.

시스티나 성당을 보러가는 이유는 이 곳에 명작이 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다.

나는 시스티나 성당안에서 이 프레스코 명작을 봤을때 너무도 아름다워 가슴이 콩닥콩닥 뛸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었다.

게다가 성당에 들어가야만 미세레레 메이를 들을 수 있다.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갈 때 음악 주파수를 반드시 보고 들어가야 한다.

주파수를 맞추지 않으면 이 노래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시스티나 성당은 ‘콘클라베’라는 교황선출만 알려진 곳이 아니다.

위대한 작품과 위대한 음악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정말 위대한 성당이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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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앞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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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종탑에는 황새들의 둥지가 꼭 있다. 성당은 사람만의 안식처가 아니다. 오히려 황새들이 성화가 더 잘 될 것 같다. 매시간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를 올리는 황새가족들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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