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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26편_스페인의 천년전주 아스토르가

중세를 보고 싶다면 이곳에 오라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2.0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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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르델을 떠나며 보는 일출모습>

 

오늘은 아스토르가까지 23km를 걷는다.

이 코스는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와 산티바네스 데 발데이 글레시아스, 산 후스토 델라 베가를 거쳐 아스토르가에 이르는 구간이다.

마을 이름들을 나열한 이유는 이곳에서 놓칠 수 없는 특별한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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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파소 온로소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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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부북에서는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나의 다리길이만큼 길다.>

 

먼저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에서는 엘 파소 온로소 다리를 주목해야 한다.

이 다리에서는 명예로운 결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13세기에 만들어진 20개의 아치가 있는 스페인 북붕서 가장 긴 다리다.

다리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1434년 레온 출신의 기사였던 돈 수에로 데 카뇬네스가 한 여인에게 실연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시합을 했다고 한다.

목둘레에 쇠로 만든 깃을 달고, 이 다리를 건너는 기사들에게 마상 창 결투를 벌였다.

돈 수에로는 300차례에 걸쳐 수 많은 기사들과 결투를 벌여 승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의 증표인 쇠로 만든 깃을 지켰다고.

이 승리로 그는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났고, 자신의 명예도 지켰다고 하는 이야기다.

마상 전투의 전통은 현재에 이르러서도 매년 6월초에 재현하고 있다.

누가 만든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왠지 TV 프로그램 ‘사랑과전쟁’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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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가까지 이렇게 생긴 길을 계속 걷는다.>

이 마을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있을 때다.

부르고스에서 타파스를 사줬던 재미교포 은퇴 간호사분이 카페에 들어왔다.

같이 아침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장 회장님은 종교의 역할이 바른 정치를 향해 소리치고, 함께하는 역할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은퇴 간호사분은 종교인이 신앙을 지키고, 자신의 개인적인 갈고 닦음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옆에서 두 분의 대화를 들어보니 서로 좋게 끝날 것 같지 않앗다.

장 회장님께 눈치를 주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때우고 우리가 먼저 일어나 길을 나섰다.

 

인지 심리학자들이 중요시하는 대화 방법이 있다. 대화할 때 명사형으로 끝내지 말라는 것이다.

“철수는 살인자야”와 “철수가 사람을 죽였데”의 차이다.

첫 번째 말은 명사로 끝나고, 두 번째 말은 동사로 끝난다.

그런데, 명사로 끝나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동사로 끝나는 말은 ‘왜’라는 물음이 가능하지만, ‘살인자’라는 명사로 끝나는 말은 ‘그렇구나’라는 긍정만 가능하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장 회장님과 간호사분의 대화속에서 대화할 때는 이것을 꼭 기억하고 있어야 겠다는 다짐을 가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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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바네스 데 발데이 글레시아스 순례자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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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회장님이 인형의 스카프에 새만금신공항백지화 배지를 달고 있다.>

 

둘째 산티바네스 데 발데이 글레시아스다.

이곳은 순례자의 휴식처로, 십자가와 인형(마네킹)이 있는 장소다.

장 회장님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배지를 꺼내셨다.

앞서 떡갈나무 십자가에 부착했던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배지다.

순례자 인형에 달아 놓으신다.

‘문규현 신부님은 스페인에서 새만금을 위해 삼보일배를 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장 회장님은 새만금을 위해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장 회장님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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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카페 앞 돌맹이 순례길 화살표. 창우씨 이거 만드느라 고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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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카페 모습. 순례자들이 여기 음식을 먹고 원하는 만큼 기부하고 간다.>

 

마지막으로 산 후스토 델라 베가다.

여기에 들어갈 때는 순례자들을 위한 무료 카페가 있다.

카페로 들어가는 길가에 만들어 놓은 돌맹이 화살표가 눈에 들어왔다.

“물 한 잔 드세요! 창우! 3/29/23”

일주일전 창우씨가 여기를 지나가다 써 놓은 글이다.

우리가 일주일 후에 올 줄 알고 있었나보다.

너무 고마워서 이 카페에서 무료 음료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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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가의 모습. 가운데 큰 건물이 오늘 우리가 묵는 숙소(알베르게)다.>

 

어느덧 아스트로가에 도착했다.

멋진 도시다. 아스트로가 공립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한 후 샤워와 빨래를 하고, 알베르게 뒤편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전날 만났던 양갈래머리 최영화씨(42)가 한쪽 발바닥 전체를 물집 곰발바닥으로 만들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루카와 그의 친구도 왔다. 이들은 우리와 같이 4인실 한방을 쓰게 됐다.

루카와 그의 친구는 폰페라다라는 도시에서 또 같은 방을 쓰게 되는 인연이 생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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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의 모습. 종각에 남녀인형이 시간마다 종을 친다.>


나는 스페인에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좋은 도시를 추천해달라면 ‘아스트로가’를 가보라고 하고 싶다.

아스토르가는 고대 로마의 흔적은 물론 중세 도시의 모습이 혼재해 있다.

마을 주변을 둘러싼 성벽은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아스트로가는 레온 지방에서 가장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자랑인 천년 전주처럼 말이다.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디즈니같은 주교궁도 있으며, 로마시대 고대 유적지들, 성모마리아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 de Astorga), 인형이 종치는 모습의 시청사, 기원전부터 10세기까지의 성벽, 600여점에 달하는 성물이 보관된 박물관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지금부터 무엇을 봐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나는 가톨릭신자이기에 산타마리아대성당과 박물관을 먼저 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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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토르가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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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왼편에 작게 나와있는 곳이 박물관 입구다.>

 

산타마리아대성당은 300년동안 지어졌다고 한다.

이 성당에서 봐야 할 것은 무엇보다 제대화다. 르네상스 시대 가스파르 베세라(Gaspar Becerra)의 작품이란다.

그는 스페인의 유명 화가이자 조각가란다.

마치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조각가로 아낌없이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화재로 소실됐다고 한다.

하지만, 아스토르가대성당에 조각된 제대와 제대화와 원형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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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가스파르 베세라의 작품>

 

대성당 코로석(성가대석)도 유명한 작품이라고 한다.

각 좌석마다 구약과 신약의 인물을 조각해 놓은 것이 특별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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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의 모습. 각 좌석마다 신구약의 인물들이 조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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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오르간의 모습>

 

박물관에도 성물들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 유독 내 눈에 들어왔던 성물은 갈대로 만든 상자였다.

상자 옆면은 열두제자가 그려져 있고, 덮개에는 성서에 관련된 내용들이 그려져 있었다.

‘아스토르가 정말 대단한 도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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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사도의 이름이 써 있으며, 뚜껑에는 성서내용이 그려져 있다. 수태고지부터 여러가지 성서이야기다.>

 

성당과 박물관을 둘러본 후 성벽을 보기 위해 마을밖으로 나갔다.

아스토르가는 2,000년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라고 한다.

이 성벽의 기원이 로마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로마시대 모습은 파괴되고, 지금 볼 수 있는 성벽은 중세에 재건된 모습이란다.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전쟁도 이곳 아스트로가에서 펼쳐져 일부 성벽까지 파괴됐다고 한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내가 본 성벽에 대한 생각은 전체적으로 잘 보존돼 있다는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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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궁>

 

마을 성벽을 끼고 한바퀴 둘러본 후 시나고가 정원(Jardín de La Sinagoga)으로 가서 ‘게으름’을 즐겼다.

두어 시간가량 여기에 앉아 있으니, 저녁놀을 서쪽 하늘에 뒤덮었다.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고, 아무것도 생각할 일이 없는 시간이다.

그저 한가로이 멍때리는 중이다. 너무 편안하다.

게으름을 찬양하는 것처럼.

게으른 이 시간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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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고가 정원에서 찍은 성벽 모습>

 

저녁시간이 돼 시나고가 정원 근처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이날 엘클라시코(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로셀로나 축구클럽 경기) 경기를 중계중이다.

카페에 주민들이 한가득이다.

소리를 질러가면 열렬한 응원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했다.

‘아스트로가는 레알 마드리드 지역인가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메시가 있는 FC 바르셀로나를 더 좋아한다.

여기서 혼자 바르셀로나를 응원했다가 뼈도 못추릴 것 같다.

혼자 속으로 ‘바르셀로나FC 파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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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토르가의 석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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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토르가의 석양2>

 

밤이 되자 세마나 산타를 준비하는 아스토르가 주민들이 바르톨로메오 성당앞으로 몰려들었다.

이곳에서부터 성모마리아대성당까지 9시부터 행렬을 한다고 한다.

우리 알베르게가 닫히는 시간도 9시다.

오늘 아스트로가 행렬을 보지 못해 아쉬움만 남기고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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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토르가 세마나산타는 스페인 전역에서 펼쳐지는 행사 가운데 볼만한 행사라는 것을 관광청에서 공인했다는 내용의 포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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