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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28편_몰리나세카와 폰페라다

철의십자가에 집착을 버리다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2.0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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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페라다의 아침. 새벽 노을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침 6시 30분. 길을 떠날 준비를 마치고 순례자의 아침을 먹었다.

아침 식사는 먼저 내려온 사람이 챙겨 먹는 시스템이다.

오늘 일찍 출발하는 이유는 갈 길도 멀지만, 철의 십자가에서 조금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베르게를 출발해 철의십자가가 있는 이라고 언덕(Monte Irago)정상까지는 1시간정도 소요된다.

커다란 돌맹이를 가슴에 안고 오르니 더 힘이 들었다.

어느덧, 내 눈앞에 철의십자가(Cruz de Ferro)가 보였다.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곳에 도착했구나!’

도착한 것을 반기는 듯 아침 노을이 철의십자가 뒤로 피어올랐다.

무척 황홀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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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십자가에 도착해 이 나무에 스며든 애환의 깊이를 느껴본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무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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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나를 얽매는 것에서 해방되야 한다.>  

 

철의십자가는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익히 알던 장소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기억난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딸을 잃은 어머니가 있었다.

그 딸을 죽인 살인자는 지금 감옥에 있단다.

그 어머니는 앞서 용서의 언덕에서 펑펑 울며 ‘그 살인자가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한 적 있다.

그녀가 이곳 철의십자가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딸을 고히 보내줘야 할 시간’이다. 또 펑펑 눈물을 쏟으신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그 어머니의 눈물이 딸을 잃은 슬픔의 기억이 아닌 한없이 약한 자신의 향한 눈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흘린 눈물의 의미는 어머니와 하느님만이 알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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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십자가로 속속 순례자들이 도착한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는 철의십자가에서 내가 지었던 죄를 놓고 오는 의식을 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철의십자가에서 해야 할 기도문도 따로 있다.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 순례자들이 해 왔던 전통이다.

본래는 출발 장소인 집에서부터 돌(죄의 상징)을 가져와 여기에 놓고(정화) 가야 한다.

그 돌을 이 곳에 놓고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주님, 제가 구세주의 십자가 아래에 저의 죄를 바칩니다. 심판의 날에 여기에 놓인 물건이 당의신 심판에 놓이게 하소서.

나는 철의십자가에 ‘집착’을 놓고 왔다.

집착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집착으로 인해 나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었던 행위가 있었다.

집착으로 인해 타인을 이용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순례길을 걷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다.

집착이 나에게는 죄의 원인이자, 하느님께 향하는 방해물이었던 것이다.

‘주님! 저는 여기에 집착을 놓습니다. 이제 자유롭고 행복한 영혼으로 거듭나도록 이끌어 주세요.’

 

장 회장님을 앞서 보내고 나는 철의십자가 옆에 있는 소성당 쉼터에 앉아 혼자의 시간을 보냈다.

순례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기억에 남는 순례자는 뚱뚱했던 외국인 여성이다.

십자가로 올라가기 바로 앞 난간 나무를 잡고 펑펑 눈물을 흘린다.

그 옆에 한 남성이 그녀의 눈물의 의미를 아는 듯 아무 말 없이 옆에 서 있었다.

철의십자가에는 한국사람들이 놓고 간 물건도 많이 보인다.

한국어는 대부분 무엇을 청하는 기원의 글이 많았다.

철의십자가에는 순례자들의 기원과 애환이 함께 스며있는 장소다.

다른 의미로 나에게는 철의십자가에서 영적기운이 품어져 나오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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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에서 만나는 첫마을 아세보.>

 

철의십자가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났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다. 산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야 한다.

내리막길이 길어질수록 발과 종아리, 허벅지에 전달되는 고통이 커진다.

아뿔사! 70세가량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넘어지셨나 보다.

그 할머니 주변에 순례자들이 모여 있다.

우리는 그분이 순례길이 아닌 도로를 따라 계속 걷고 있던 것을 목격한 바 있다.

“회장님? 저 할머니 도로로 저렇게 다니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다리가 안 좋아서 그래. 돌길을 걷지 못하는 거야. 조심히 잘 가시겠지.”

그 할머니가 결국은 넘어지셨던 것이다. 이 후 택시를 타고 폰페라다로 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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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이렇게 푸드코트가 있다. 여기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잔 시켜먹었다.> 

 

장 회장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내리막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산 중턱에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이름은 아세보(Acebo)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 마을에서 하루 쉬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매력넘치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 첫 번째 카페에 도착하니 순례자들이 한가득이다.

재밌던 일은 그들이 장 회장님과 나를 보더니 마치 결승선에 도착한 사람을 환영하는 듯 소리쳐 준다.

그 상황이 재밌고 웃겨서 껑충껑충 뛰며 화답했다.

그랬더니 축구 결승골을 넣은 장면에서처럼 모두가 일어나 ‘와’ 하며 더 크게 소리친다.

창피함이 확 올라와 얼른 다음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카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산마르틴 마을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최영화씨가 스페인 순례자와 함께 마을에 도착했다. 반갑게 인사하니 우리 옆에 자리를 잡는다.

최영화씨는 새벽에 폰세바돈에서 출발했단다. 아마도 가장 앞서 출발했을 것 같다.

우리가 그녀를 만난 것은 철의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길목에서였다.

천천히 걷고 있는 그녀에게 조심히 오라는 인사를 건넨 후 그녀를 추월했었다.

이제야 아세보에 도착한 것이다. 아마도 그 속도면 쉬지 않고 계속 걸어온 것 같았다.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모습이 무척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그럼에도 환한 표정으로 웃음짓는다.

카페에서 최영화씨가 발바닥을 보여줬을 때,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건 도저히 걸을 수 있는 발이 아니다.’

물집이 겹겹이 쌓여 발바닥의 두께가 확연히 커진 것을 보았다.

저 정도면 발을 내디딜때마다 고통이 엄청났을 것이다.

“걸을 때 고통이 아주 심할 것 같아요. 지금 통증이 어느 정도나 심하나요?”

“너무 아파서 발바닥을 디딜 수 조차 없어요. 지금 한 발로 걷고 있어요.”

다행히 장 회장님은 메디폼(상처에 붙이는 우레탄폼)을 가지고 계셨다.

가지고 있던 모든 메디폼을 최영화씨한테 건네줬다.

장 회장님은 메디폼을 어디에다 버릴까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몰라 계속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조심히 오라는 인사를 다시 건넨 후 우리는 아름다운 아세보마을을 출발했다.

‘최영화씨는 오늘 장종혁이라는 천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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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나세카마을. 아기자기하니 참 이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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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나세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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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루엘로 강에 발을 담근 장 회장님. 귀여운 표정을 해 보랬더니 저렇게 하신다. 참 귀엽다.>

 

산길을 계속 내려간다.

무척 싫어하는 뱀도 봤다. 이제 봄이라 뱀도 나오나보다.

‘너무 싫다.’

뱀을 본 후 발걸음이 빨라진다. 계속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2시간 넘게 왔나 보다.

저 멀리 몰리나세카 마을이 보였다. 처음엔 그 마을을 폰페라다로 생각해 목적지에 도착할 순간이 다가온 것 같아 너무 기뻤다.

“회장님 드디어 다 왔어요.”

아! 마을 이름이 몰리나세카다. 실망감이 크게 올라왔다.

그래도, 이 마을도 너무 이쁘니 기분이 좋다.

메루엘로 강 위에 세워진 몰리나세카 다리(Puente Romano)와 뒤로 보이는 니콜라스성당(Iglesia de San Nicolas de Bari)의 어울림이 환상이다.

전망대에서 마을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건너편 카페에서 누군가 손을 흔든다.

앞서 몇 차례 만났던 재미교포 은퇴 간호사분이다.

우리도 그분에게 반갑게 인사한 후 그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이 내 생일이에요. 혼자 생일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잘 됐어요. 같이 점심을 먹읍시다.”

“생일 축하합니다.”

오늘 점심은 푸짐한 생일상이다.

각각 좋아하는 메뉴와 함께 마실 와인을 시켰다.

‘순례길에서 맞는 생일의 느낌은 어떨까? 나는 혼자 맞는 생일도 혼자 식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 나는 감정의 흐름이 다른 사람보다 무딘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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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페라다 템플기사단성. 성이 온전하게 보전돼 있다.>

 

한참을 얘기 나눈 후 우리는 폰페라다로 향했다.

몰리나세카에서 폰페라다까지 순례길을 걷는 동안 가장 지루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도로를 따라 가면 곧장 폰페라다에 들어가는데, 순례길을 따라 걸으면 캄포와 오테로라는 작은 마을을 거쳐 빙빙 돌아가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1시간이면 갈 도시를 2시간 넘게 가야 한다.

이미 지칠데로 지친 상태에서, 곧장 가는 길을 보았음에도 돌아서 간다는 것은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순례길 바닥에 그냥 배낭을 두어 차례 내던졌던 것 같다.

나만 감정이 상한 상태가 아니었다.

장 회장님도 죽을 맛인가 보다. 장 회장님을 보니 한편으로 지금의 상황이 위로도 된다.

“이 놈의 길이 사람 미치게 만드네.”

계속 하소연하신다.

이 구간은 ‘진정 사람 미치게 만드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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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보이는 건물이 폰페라다 시청삳.>

 

우여곡절 끝에 폰페라다에 도착했다.

우리가 찾은 숙소는 오비스포 카밀로 로렌조(Albergue de peregrinos parroquia san nicolas de flue) 공립 알베르게다. 여기는 기부제 알베르게로 각 방당 4인씩 들어가는 곳이며, 성당에서 운영한다.

여장을 풀고 나오니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 루카와 그의 친구가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카르멘성모성당(Capilla de Nuestra Señora del Carmen)으로 가서, 기도 드린 후 순례자의 일상을 시작했다.

이 성당에서 봤던 그림은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정중앙에 예수님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 둘레로 야고보의 기적사화가 그려져 있었다.

주변 기둥에는 4대 복음사가의 상징을 표현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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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성모성당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모습>

 

폰페라다로 시내로 나섰더니, 세마나산타 행렬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은 성 금요일이나구나!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이들이 매고 가는 파소의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힌 장면까지다.

십자가의 길 14처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었다.

‘세마나산타는 요일별로 달라지는구나!’

새로운 발견이다.

‘코스탈레로(파소를 끌거나 매고 가는 사람들)’들의 어깨에 붙어 있는 마크는 어떤 파소를 담당하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는 표지였다.

관악대도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예수 무덤에 묻히심을 상징하는 장면 앞에는 다른 관악대가 이끌고 간다.

이 장면에서는 슬픈 연주를 계속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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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형선고 받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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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십자가에서 내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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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부인들 예수 따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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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은 세마나산타에서 꼭 함께 움직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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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죽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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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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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 맨 선두의 관악대. 어린이들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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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무덤에 묻히심을 상징하는 관과 앞서 관악대가 슬픈 음악을 연주하며 움직이고 있다.>

 

필리핀 순례자 벨에게 어디에 있는지 메시지를 보내니, 폰페라다에 들어왔다는 답변이 왔다.

내일 벨과 템플기사단성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를 구입했다.

내가 느낀 폰페라다는 아기자기한 이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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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페라다 시계탑. 세마나산타 행렬이 이 곳을 통과한다. 여기를 통과하면 시청 앞 광장에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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