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획

산티아고순례길 13편_벨로라도와 공립알베르게의 모습들

아름다운 마을에는 베드로가 있다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1.22 01:03

20230323_084719.jpg<크루즈 데 로스 발리엔테스가 서 있다. 처음엔 순례자를 위한 장소로 생각했지만, 내용을 검색해 보니 전쟁에서 승리를 기념한 십자가다. 십자군전쟁이 생각나 전쟁승리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이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이제 곧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길의 초반부에서는 용맹의 십자가(Cruz de los Valientes)를 만나게 된다.

이 십자가는 순례길과는 관련이 없다.

19세기 초에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와 그라뇽 마을 사이에 땅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 두 마을간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그라뇽이 승리해 이를 기념하기 위한 십자가라고.

그라뇽 마을을 지나서부터는 카스티야 지방이다.

‘카스티야와 카스테라(Castella)’

카스테라는 카스티야의 빵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서 탄생한 빵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프랑스빵 크로와상을 먹어왔지만, 드디어 카스테라의 본고장에 도착했으니 오늘부터 빵 선택은 카스테라다.

 

20230323_093056.jpg<그라뇽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그려진 벽화들을 보며 순례자들이 좋아할 만한 곳임을 느꼈다.>

 

오늘은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를 출발해 벨로라도까지 20km를 걷을 계획이다.

이미 터질 만큼 터진 물집으로 한발 한발 내딛일 때 더욱 어려움을 느낀다.

내 발에는 물집이 3단계로 번져있다.

맨 앞은 작게, 중간은 크게, 그 뒤에 새로운 물집이 또 생겨난다.

발에 문제가 없을 때는 흙길이 편했지만, 물집이 생긴 이후에는 흙길을 걷는 것이 포장도로보다 고통스럽다.

조그마한 돌멩이를 밟을 때마다 온 몸에 전해지는 통증이 굉장히 심하다.

 

벨로라도로 가면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도 5명 정도 만났다.

이들도 물집(blister)으로 걸음이 불편한 상황이다.

눈만 봐도 그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고,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 뿐이다.

이때의 대화는 이미 결정돼 있다.

안부와 응원.

 

Are you ok?-괜찮아?

I’m not ok(Not good) , I got a blister(hurt ankle)- 안 좋아, 물집 잡혔어.

Cheer up! Keep going! It’ll be okay. - 힘내, 계속 걷자, 곧 괜찮아 질거야.

Buen camino - 좋을 길 돼

 

‘순례자는 누구나 고통을 짊어지고 걷게 된다.’

이것은 순례길 공통 제 2법칙이다.

 

그라뇽을 지날 때다. 지금 시간은 오전 10시.

이전 토레스 델 리오의 호스텔에서 함께 했던 네덜란드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장 회장님을 보더니 아주 큰소리로 “오빠” 소리치며 달려온다.

장 회장님도 무척 반갑게 맞이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절로 웃음이 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 네덜란드 여성은 그라뇽 기부제 알베르게에서 하루를 머물기 위해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고 한다.

20230323_093353.jpg<그라뇽의 성 세례자요한 성당(Iglesia de San Juan Bautista)이다. 12세기에 지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형은수 선생님께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숙소로 추천해 주신 곳이다.

그라뇽 기부제 알베르게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인 사모스 베네딕도 수도원의 세족례에 대한 체험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여기서 머무를지 잠시 고민했다.

장 회장님과 상의한 결과, 시간도 너무 많이 남아 목적지인 벨로라도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그라뇽 알베르게 숙소를 사전에 살펴봤을 때, 베드버그가 나올 것 같은 환경이라 나 역시 머물기에는 꺼려졌다.

느릿느릿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벨로라도다.

벨로라도 입구에 들어서면 한쪽은 바위산이 늘어져 있고, 다른 한쪽은 아담한 마을이 있다.

바위산을 바라보니 나루토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나뭇잎마을 호카게들의 큰바위얼굴이 떠오른다.

그 중 특히 관심이 가는 바위가 있었는데, 나에게는 스핑스크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20230323_145947.jpg<벨로라도 입구의 서있는 기암괴석. 위로 올라가지 못해 바위 이름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나는 마치 스핑스크가 앉아 있는 것 같아 스핑크스 바위라고 불렀다.>

지금은 오후 3시.

우리는 벨로라도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앞에 도착했다.

성당 앞에 벤치가 있어, 휴식과 함께 오늘의 숙소를 검색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초췌한 모습의 벨이 절뚝이며 걸어 왔다.

옆 벤치에 배낭을 놓고 앉아마자 첫 말이 죽겠단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이분 더 이상 걸으면 안 되겠는데!’

오늘 벨로라도에서 함께 쉬자는 제안을 드렸다.

그런데, 벨은 오늘 목적지가 토산토스 마을이라고 한다.

토산토스는 여기보다 한 마을 더 가야 하는 곳으로 보통 걸음이면 30분 이내에 도착한다.

그러나 벨의 모습을 보면 적어도 1시간 아니 그 이상은 가야 할 것으로 느껴졌다.

잠깐의 휴식을 가진 벨은 토산토스까지 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무거운 발을 끌고 가는 그의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큰 소리로 응원하는 것 뿐이었다.

“벨! 부엔까미노~”

벨은 우리에게 손을 흔든 후 다시 절뚝걸음을 내딛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공립 알베르게 운영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공립 알베르게는 예약이 되지 않는다. 이곳은 선착순이다.

열리는 시간이 오후 2시라고 해서, 관리자가 2시부터 리셉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통해 알베르게 관리자들이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알려주고자 한다.

 20230323_163419.jpg

<성 베드로 성당(Iglesia de San Pedro)>

 

장 회장님과 나는 가장 가까운 마리아 성당 근처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그런데 닫혀 있는 것이다.

여기도 1년 내내 열림이라고 앱에서 추천했던 알베르게인데, 알베르게 문은 굳게 닫혀 있다.(나중에 저녁식사 후에 돌아오니 문이 열려 있더라.)

다른 알베르게를 검색해 숙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런데 여기도 닫혀 있다.

공립 알베르게가 모두 닫혀 있으니, 이제 선택해야 할 숙소는 비싼 호스텔이다.

닫힌 알베르게 앞에 앉아 숙소를 찾고 있는데, 로그로뇨 기부제 알베르게에서 만난 적 있는 독일 청년이 왔다.

그는 문 앞에 쓰인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더니, 배낭을 놓고 기다린다.

숙소 관리자와 통화 후 기다린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모습을 보고 똑같이 했다. 이때 발카로스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나 역시 문 앞에 쓰인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여성분이 전화를 받았다.

“여기에서 1박 하려구요.”

그녀는 급한 일 때문에 지금 밖에 있단다. 30분만 기다리란다. 곧 가겠다는 응답을 들었다.

‘아 맞아! 닫혀 있다고 생각지 말고 문에 쓰여진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야지.’

다시 한번 느긋하고 워라벨에 충실한 그들의(스페인) 문화가 생각났다.

 

30분을 기다리니, 알베르게 관리자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왔다.

숙소 체크인이 무척 빠르다.

그러면서 일 때문에 나가야 한단다.

문을 열어 놓고 갈테니 다음 순례자들이 오면 우리보고 맞이하라고 한다.

저쪽에서의 일이 끝나지 않았단다.

1시간 후에 다시 오겠다며.

졸지에 숙소 관리자가 됐다.

 

이곳 알베르게는 1층에 체크인 리셉션과 주방, 화장실, 샤워실이 있다.

2층은 공용숙소 1개로 12명이 잘 수 있는 방과 2인실 2개가 있다. 2인실은 50유로, 공용 알베르게는 1인 13유로다.

첫 번째 도착한 독일 청년과 1층에서 한참을 있었다.

이 독일 청년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가 ‘학교활동’과 관련이 있었다.

독일 대학생은 순례길을 걸으면 학점은 물론 이수해야 할 사회활동 부여 점수 등의 혜택이 있던 것 같다.

 

30분이 지나자 로그로뇨 기부제 알바르게에서 함께 했던 청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독일 여성 1명, 항상 술에 취한 사람처럼 보이는 프랑스인 2명. 이들 4명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함께 걷는 듯 했다.

알베르게에 들어오자마자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로그로뇨에서도 이들 4명이 밤 늦게까지 떠들길래 많이 거슬렸는데, 오늘도 편히 잠자기는 틀린 것 같다.

리셉션은 이들에게 맡기고, 장 회장님과 나는 내일 걸을 동안 먹을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슈퍼로 향했다.

 

20230323_185709.jpg

<성 베드로 성당은 내부가 깨끗하다. 18세기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제단화에는 중앙에 성 베드로의 성상을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인에서 주의할 점은 낮에 쉬는 ‘시에스타(Siesta)’다.

시에스타는 보통 오후 4시까지지만, 이 시간이 지나도 열리지 않는 상점도 꽤 된다.

하지만, 시에스타에 적용되지 않는 곳이 우리나라 하나로마트와 같은 ‘슈퍼마켓’이다.

이곳은 평일은 9시까지, 주말과 휴일은 8시까지 대부분 열려 있다.

반면 슈퍼가 없는 작은 마을일수록 시에스타에 주의해야 한다.

주일(일요일)은 아예 열지 않는다.

여기는 작은 마을이고 내일이 주일이라면, 월요일까지 먹을 음식을 미리 구해놓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배낭은 더 무거워지겠지만 말이다.

 

벨로라도의 성 베드로 성당(Iglesia se San Pedro)을 들어갔다.

이 성당에 들어서면 제대화 중앙에 있는 베드로 상이 눈에 띈다. 한 손엔 승리의 십자가를, 다른 한손에는 천국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어 베드로 성상임을 알 수 있었다.

 

벨로라도. 콜라라도(붉은 것이 가득한 곳). 엘도라도(황금이 가득한 곳).

라도(rado)라는 스페인어는 가득한 것에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벨로라도는 ‘아름다움이 가득한 곳’이라는 의미란다.

나에겐 다른 마을과 비슷해 특별히 아름답게 보이진 않는 마을이다.

20230323_202513.jpg

<벨로라도 바닥 타일에 순례길을 그려놓은 그림들이 많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