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획

산티아고순례길 15편_카스티야 왕국의 수도 부르고스에 오다

신앙을 증거해야 하는 떡갈나무 십자가와의 만남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1.22 16:43

20230324_200233.jpg

<달과 새벽 별이 떠 있는 하루의 시작>

 

알퐁스 도데의 별.

양치기와 주인딸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였던가?

갑자기 이 소설이 생각나는 것도 신기하다.

하늘에 별이 떠 있기 때문일까?

이 소설에서 은하수도 등장했던 것 같다.

은하수는 수많은 영혼이 수놓은 별들의 길이라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야고보라는 큰 별이 인도하는 길이자, 많은 순례자들이 수놓은 별들의 길이리라.

 

20230325_072121.jpg

<앞에 보이는 마을이 아헤스다. 우리는 이 마을에 도착해 간단하게 빵과 커피, 쥬스로 아침식사를 가졌다.>

 

아침 6시 40분.

오늘은 부르고스까지 27km를 걸어야 하는 날이다.

어제 밤에는 점프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오늘까지 상태가 좋지 않다면 부르고스로 점프할 계획이라고 장 회장님께 이미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발 상태가 어제와 너무 다르다. 물집에 굳은 살이 배긴 듯 아물어 있다.

신발끈을 매고 뛰어봐도 아픔이 없다.

물집으로 언제 고생했냐 비웃듯 몸도 가볍다.

‘오늘 걸어 갈 수 있겠는데!’

 

20230325_091950.jpg

<떡갈나무 십자가 앞>

20230325_091554.jpg

<장 회장님은 여기에 새만금신공항백지화 배지를 염원으로 달아 놓으신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출발한 시간은 오전 7시.

오늘의 길은 초반과 후반으로 나누고 싶다.

후반을 부르고스라는 도시로 들어선 순간으로 정한다면, 그때부터 무척이나 지루하다고 지치는 구간이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Cathedral de Santa Maria de Burgos)이 있는 구시가지까지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초반은 여러 마을을 거치다 보니 지루한 감이 없다.

게다가 아헤스(아침식사를 함)를 지나 아타푸에르카(Atapuerca)에 도착하면 떡갈나무 십자가를 만나게 된다.

잠시 잊었던 순례길의 의미를 되새기는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하는 장소다.

돌무더기 위에 세워진 십자가를 보니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한 골고타 언덕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돌무더기는 해골의 모습으로 연상됐다.

떡갈나무는 그 썩지 않는 재질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영원한 생명, 구원을 상징하는 나무다.

예수 그리스도가 매달렸던 십자가 나무도 떡갈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여기 서 있는 떡갈나무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만나는 장소로 여겨졌다.

신앙을 증언하고 떠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오늘부터 죄 묵상을 시작해야겠구나!’

 

스물아홉 청년시절, 30일동안의 이냐시오 대침묵 피정을 해 본 적이 있다.

30일로 구성된 이냐시오 피정은 15일은 자신의 죄를 묵상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이후 15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부활을 체험하는 과정으로 나눠진다. 그 당시 나는 죄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탓에 지도교사였던 예수회 신부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었었다.

‘이번엔 제대로 해 봐야지’ 결심하며, 떡갈나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약속을 했다.

 

떡갈나무 십자가 밑에는 순례자들이 두고 간 수많은 물건이 쌓여 있다.

얼굴 사진부터 글이 쓰인 형형색색 끈들, 그림들, 십자가 밑에 놓인 돌멩이까지.

그 물건들에서 왠지 모를 슬픔과 애절함이 전해오는 기분이다.

마치 그 무엇인가를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는 애절한 울림처럼.

그곳에는 한글로 쓰인 돌멩이도 있었다.

‘엄마 사랑해요.’ 어떤 이는 엄마에 대한 사랑을 증언하지 않고서 지나칠 수 없는 장소였다보다.

 

장 회장님은 떡갈나무 십자가에 소망을 담았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라고 쓰인 배지를 나무 밑둥에 걸어 놓으셨다.

회장님은 욕심 그득한 새만금이라는 탐욕의 땅에 대한 변화를 기원하시나 보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다.

우리는 뒤에 도착한 외국 분에게 기념사진을 부탁드렸다.

이곳을 지나 내려가는 길에 호박돌로 만들어 놓은 동심원이 있다.

여기에서 부르고스가 보인다.

 20230325_111507.jpg

<부르고스 공항에 착륙하고 있는 비행기. 바로 머리위로 내려가기에 순간포착 카메라에 담아봤다.>

 

‘목적지가 보이는 순간 그곳은 닿지 않는다’는 순례길 법칙이 갑자기 적용되기 시작했다.

12시 30분. 드디어 부르고스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 지겨운 길이 시작된다.

부르고스 구시가지로 들어간 시간이 오후 2시쯤니, 1시간 30분을 도로변 인도를 따라 걸었던 셈이다.

이 지겨운 구간을 걸으면서 두어 차례 쉬어갔던 것 같다.

부르고스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여기서부터는 또 다른 풍경이다.

들어선 순간 보이게 되는 부르고스 성모 마리아의 대성당의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와!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니!’

누가 중세를 암흑기라고 했는가! 누가 고딕미술(건축)을 예술의 암흑기라고 말했는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20230325_143146.jpg

<코로나 호텔 입구에서 바라본 부르고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모습. 우리숙소가 성당까지 너무 가까워 좋았다.>

 

‘꼬지또,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대학 시절 너무도 많이 외웠던 단어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를 좋아했던 학생이었기 때문일까!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이다.

사실 데카르트의 인식론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한 아오스딩(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근원을 두고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 세계사 시간에 중세를 경제, 문화, 사회의 암흑기라고 배웠다.

신만이 전부인 시대로. 지금은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모르겠다.

누가 그렇게 정의했을까?

나는 왜 그 정의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걸까?

‘그 시대가 정말 암흑기일까요? 경제가 후퇴하면 암흑기인가요? 문화가 달라지면 암흑기인가요? 사회가 변화하면 암흑기인가요?’

정말 암흑기든 아니든 간에 당당하게 함께 의심해 보자는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암흑기 예술이라는 고딕미술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작품으로 보인다.

고딕건축의 진수인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보는 순간 그 형언할 수 없는 넘치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다.

 

하늘을 향해 높이 쏟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대단하다.

그리고 엄청난 높이에 서 있는 성상들과 조각품들은 경외감을 들게 한다.

‘고딕예술은 천상의 작품 같아요.’

부르고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 de Burgos)은 내일 시간을 내 자세히 볼 계획이다.

20230325_171910.jpg

<아시아마트로 가면서 둘러본 부르고스. 대성당 주변을 돌면서 시내구경을 시작했다. 트립바이저앱에서는 부르고스의 10대 볼거리를 추천하고 있다. 내일은 걸어서 갈 수 있는 볼거리를 둘러볼 계획이다.>

20230325_173313.jpg

<르네상스 시대에 붙여 놓은 벽돌모습. 매우 잘 보존돼 있다. 대성당 바로 옆에 있다. 현재 시립 기록 보관소로 쓰여지는 건물이다.>

 
어제 산 후안 데 오르테가 호스텔에 머물 때에 부르고스에서 2박을 쉬어 갈 호텔을 예약했다.

우리의 숙소는 4성급으로 코로나 호텔(Corona de Castilla)이다.

성모마리아 대성당까지는 5분 이내의 위치로,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이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 숙박 요금 정산은 체크 아웃때 하라고 한다.

우리 방은 5층 구석쪽이었다.

호텔 조식을 예약하려 했지만 가격이 비싸 외식으로 할 생각이다.

부르고스는 대도시이기에 식사를 하는데에 문제가 생길 것이 없고, 오히려 더 다양한 것들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부르고스를 둘러보기 위해 나왔다.

우리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은 성 고스마와 다미아노 성당(Iglesia de San cosme y San Damian)이다.

‘주일미사는 이 성당에서 드려야겠군.’ 첫 번째 스캐닝을 마쳤다.

이 성당 앞을 지나는데 벌써 부활절(Semana Santa) 행사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면 부활 주간이다.

 

20230325_181153.jpg

<성 고스마와 다미아노 성당 신자들이 부활(세마나산타) 행사 연습을 하고 있다. 음악에 맞춰 몸을 좌우로 흔들며 걷는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옛날 상여를 매고 나가는 듯하다.>

 

오늘은 성모 마리아 개선문(Arco de Santa Maria)만 구경할 생각이다.

장 회장님을 먼저 숙소로 보내고, 나는 성모 마리아 개선문 앞 벤치에 앉아 하나하나씩 검색을 시작했다.

개선문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부르고스로 들어가기 위한 성문이라 한다.

지금 서 있는 모습은 16세기 신성 로마 황제 카를로스 5세에 의해 재건된 모습이라고 한다.

아치 정면에 있는 동상들은 맨 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다.

그 밑은 부르고스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있다. 그 아래로 카스티야 독립왕국 백작 페르난도 곤잘레스, 신성로마 황제 카를로스 5세, 레콩키스타의 영웅 부르고스의 수호자 엘시드다. 맨 밑단에는 부르고스를 만들었다고 하는 창시자 디에고 로드리게스 포르셀로스를 사이로 카스티야의 판사인 누노 라수라와 라인 칼보가 앉아 있다.

건물 내부는 아담한 전시장이다. 입구에 기사의 검과 대포도 볼 수 있다. 또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부르고스 예술가 호세 벨라 자네티의 작품이라고 한다.

개선문으로 앞 알란손 강 위에 산타 마리아 다리(Puente de Santa Maria)도 인상적이다.

최초로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한다.

14세기 들어 강물을 이용할 목적으로 보수가 이뤄졌다는 기록이 시작이다. 예술적 모습을 갖춘 때는 16세말이라고 한다. 이 다리는 잦은 전쟁으로 수없이 무너지고 재건됐다고 한다. 또 홍수로 파괴되는 일이 빈번해 수세기 걸쳐 다리 공사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다리는 지난 2006년 옛 모습을 되찾는 목적으로 재건된 모습이다. 이때부터 다리의 안전성을 위해 완전 보행자용으로 바꿨다고 한다.

20230325_160107.jpg

<산타 마리아 개선문. 부르고스의 영웅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조각상으로 만들어 놨으니 부르고스 시민들이 인정하는 사람들이겠지!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20230325_173942.jpg

<내부관람은 무료다. 내가 들어갔을때는 스페인의 대항해시대를 전시주제로 만든 것 같다.>

 

호텔에 돌아가니 내일부터 썸머타임(Summer Time)이 시작된다는 내용이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다.

해가 늦게 지는 나라인데, 내일부터는 더더욱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 같다.

내일은 부르고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구경할 계획이다. 너무 기대된다.

 

20230325_210709.jpg

<우리가 머물렀던 코로나 호텔 복도의 모습>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