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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17편_끝없는 밀밭길 온타나스 오아시스로

드디어 메세타 평원에 발을 들이다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1.25 16:12

20230327_104952.jpg<부르고스를 벗어나니까지 도로변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부르고스 달콤한 하루를 보내고 쉬었으니, 몸도 많이 회복됐다.

오늘은 어디까지 걸어야 할까?

순례길은 일반적으로 20여km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을 이미 몸으로 터득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오늘은 더 멀리 가고 싶었다.

이제는 ‘썸머타임’이 적용돼, 해가늦게 질텐데 그런 점을 고려하면 더 가도 괜찮을 듯 싶었다.

‘그래! 오늘은 더 많이 걷자. 온타나스까지 가보는거야.’

온타나스까지 31km를 강행군이다.

물집이 잡혔던 발바닥은 굳은 살로 채워져 있는 상태다.

나는 로그로뇨 기부제 알베르게에서 머물때 김예솔씨가 두고 갔던 발가락양말 2개를 챙긴바 있다.

지금은 그 양말을 신고 걷는다.

내 발이 작아서 여성용 양말이 오히려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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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든 쉼터. 여기에서 버스도 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오늘 아침은 9시에 출발했지만 썸머타임이니, 사실상 8시에 출발하는 것과 같다.

출발은 늦은 시간이다.

그래도 해가 늦게 질테니, 걱정은 없다.

 

부르고스는 큰 도시다. 도심을 빠져나가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순례길에서 도심을 통과해야 하는 구간은 헷갈리는 함정이 많이 있다.

이미 팜플로나에서 경험한 바 있다.

이젠 걱정 없다. 나에겐 ‘부엔까미노’앱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부엔까미노 앱에 대한 공부가 이제는 빛을 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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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산티아고까지 몇 km가 남았는지 수시로 확인 가능하다. 옛날 드라마 선덕여왕 비담의 대사가 생각난다. 화살을 맞으며 한발한발 나아간다. 그는 "그녀에게 닿기까지 앞으로 몇미터!" 그러나 그는 닿지 못했다.(이상 스포였음)>

 

사실 부엔까미노 앱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어플로, 네이버 ‘카미노의 친구들’ 카페에서 추천받았었다.

처음에는 앱의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해 생장에서 발카로스, 발카로스에서 론세스바야스까지는 구글맵을 사용했었다.

구글맵은 순례길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실제 순례길과는 다른 길로 안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구글맵이 알려준 루트로 가다보면 순례길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론세스바야스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다.

여기서 한국인 사진작가 한 분을 만났었다.

그분은 여러차례 순례길을 걸었고, 이번에는 풍경과 인물을 담아 가려고 왔다고 한다.

그는 나의 구글맵 사용기를 듣더니, 부엔카미노 앱을 이용하지 않냐고 오히려 반문했었다.

내가 구글맵으로 헤맸던 경험을 듣고 부엔까미노 앱의 사용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부엔까미노 사용법을 익힌 후 이젠 순례길을 걷는 동안 ‘오직 부엔까미노 어플’만 봐도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엔까미노 앱에 대해 더 공부했다.

이 앱을 구글과 연동시켜 놓으면 순례길 구간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몇 개의 숙소가 있으며, 카페와 순례자들의 추천, 평가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앱 관리자들이 만들어놓은 순례길 문화유산과 중요 장소에 대해 영상도 소개하고 있다.

구간 구간별 특징과 난위도도 들어있다.

다만, 이 앱은 유료다. 내 기억으로는 5,000원의 비용이 들었던 것 같다.

‘부엔까미노, 오천원 이상의 가치는 충분히 한다.’

장 회장님도 어플을 잘 사용치 못하셨다. 사용법을 알려줘도 익히지 못하신다. 구글지도 연동도 되자 않아 앱 자체가 엉망이다. 회장님께 앱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것은 한참 걸릴 것 같다는 생각에, 연동시스템을 내 폰과 같게 만든후 길 확인 방법만 집중적으로 설명해 드렸다.

그것만 가능해도 길을 가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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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회장님께 점프 사진을 부탁드렸다. 이 사진이 내가 장회장님께 전달받은 최상급이다. 사진을 너무 못찍으신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때가 많은데, 사진이 항상 이렇게 나오니 짜증난다. 내가 짜증내니 그 담부턴 셔터를 쉼 없이 눌러댄다. 한번에 20장은 나온다. 그래도 맘에 드는 사진이 없다. 이를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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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타 평원의 모습. 2주동안 내내 보며 가야 할 구간이다. 어떤이는 이 구간을 지루하다고 하고, 나 같은 사람은 아름답다고 한다.>

 

오늘은 끝없이 펼쳐진 ‘메세타 평원’을 걷는 구간이다.

메세타 평원에 들어서면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밀밭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멋지다.’ 저 끝엔 무엇이 있을까 상상해 본다.

도착지가 보이는 순간 그곳은 닿지 않는다는 내가 만든 순례길 제 1법칙.

눈으로 짐작하는 축척은 끝까지의 거리는 5km(?)정도 예상해 봤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그 두배 아니 세배의 거리다.

미세먼지가 없어서일까? 고원이라 산소농도가 낮아서일까? 가깝게 보이지만 정말 멀다.

여하튼 멀다는 말밖에 더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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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목적지였던 오르니오스 델 까미노 공립 알베르게. 점심때가 되서 이곳에 왔다. 너무 일찍 도착했다. 숙소가 열리지도 않았다. 마을도 작아 더 가도 괜찮겠다 싶어 온타나스까지 넘어가기로 했다.>

 

목적지인 온타나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정말 길고 힘든 길을 걸어왔다.

뻥 뚤린 평지라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구간은 전혀 없다.

걷는 동안 가장 기억 남는 사람중 한명은 100kg 이상의 몸무게를 가진 듯한 외국인 순례자였다.

거대한 체구이기에 했지만 엄청 힘들어하며 걷는 모습이 역력했다.

땀도 무척 많이 흘리고, 절뚝거리는 모습까지.

‘저분이 완주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까지 들게 했다.

온타나스로 가는 길목에는 몇몇 카페들이 있다. 다만 샛길로 빠져나가야 하는 곳이 꽤 있다.

그 외국인 순례자는 카페가 보이자 마자 샛길로 빠졌다.

저분도 목적지가 온타나스라고 하는데, 올 수 있을지 불안하다.

‘잘 걸으셔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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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타나스로 가는 길. 이런 길을 계속 가야 한다. 햇볓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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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길의 연속이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밀밭아 니가 이겼노라)!>

 

우리는 온타나스로 바로 향했다.

도착한 오후 4시. 바로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이 작은 마을은 슈퍼가 없고 순례자를 위한 카페 한 곳만 문을 열었다.

그래서 저녁식사(세나)와 다음날 아침식사(데사유노)까지 알베르게에서 모두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키로 했다.

온타나스(hontanas)는 샘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마을은 땅으로 숨어 들듯 움푹 들어간 위치에 있다. 메세타 평원에서 마치 샘물이 고일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공립 알베르게 바로 앞에는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원죄 없이 태어난 성모성당(Iglesia de Nuestra Sra. de la Concepción)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무염시태’라는 말을 더 익숙하다.

무염시태의 성모성당. 이 성당에 들어가 순례자 여권 앞장의 마지막 스템프(세요)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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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보이는 마을이 온타나스다. 온타나스는 샘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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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던 것은 마을 가까이까지 오기 전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순간 쏙 들어간 자리에 마을이 있다. 신기루에 홀리는 신기한 경험이다.>

 

재밌었던 일은 우리 알베르게 건너편에 3성급 호텔이 한 개 있다는 점이다.

저녁이 되니 한국에서 오신 분이 배낭을 배고 마을로 들어오셨다.

그분은 부르고스에서 여기까지 택시를 타고 오셨다고 한다.

그분은 순례길이 세 번째다.

두 번째는 부르고스까지 끊어 걷기를 하셨다고.

그래서, 세 번째 순례길의 시작은 온타나스부터 하기로 했단다.

첫 번째는 우리처럼 공립 알베르게를 주로 이용했는데, 자신이 코골이에다 이빨 갈갈이여서 다른 순례자들에게 폐를 끼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혼자만 쓰는 방을 철저히 이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앞 호텔의 숙박 비용을 검색했더니, 식사까지 포함한 금액이 100유로다.

저분은 하루에 15만원 이상을 쓰시는 분이다. 30일 걷는다면 450만원을 쓰실 것이다.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부러워하면 지는거니까!

이분은 앞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메세타 평원에 대해 잠시 알려주셨다.

‘무척 지루한 길이라고’

돌이켜보면 그 말이 정말 어울린다.

대부분 주변은 밀밭뿐인 직선 길를 걷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이 길이 너무 좋았다.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길, 나에겐 왠지 더 편안하다.

‘나는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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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타나스 무염시태 성모성당. 여기에서 순례자여권(크레덴시알)의 앞장 마지막 스템프(세요)를 찍었다.>

 

어제 벨이 추천해 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OST(1972년작)를 들었다.

그리고, 이날 함께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나는길이다공동체 단톡방에 OST를 올렸더니, 박병훈 교장선생님이 ‘좋은 노래’라고 답변하신다.

 

오늘 단톡방에 올린 노래의 제목은 ‘Brother Sun, Sister Moon’

개인적으로는 Buddy Comfort가 부른 노래가 좋다.

더불어 같은 영화의 OST인 ‘Stone by Stone’-돌을 하나씩 쌓듯이-도 순례길에서 매일 듣는 노래가 됐다.

 

브라더 썬 씨스터 문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고백의 기도다.

 

Brother Sun and Sister Moon – 형 태양과 누나인 달
I seldom see you seldom hear your tune –나는 당신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도 듣지 못해요
Preoccupied with selfish misery – 이기적인 비참함에 마음을 빼았겼나봐요
Brother Wind and Sister Air – 형 바람과 누나인 공기
Open my eyes to visions pure and fair – 순수하고 공정한 관점에 내 눈을 열어요
That I may see the glory around me – 그러자 내 주변에 영광(은총) 가득함이 느껴져요
I am God's creature, of Him I am part – 나는 하느님의 피조물, 나는 그의 한 부분이이에요
I feel His love awakening my heart- 그분의 사람이 내 마음을 뒤 흔들어요.
Brother Sun and Sister Moon – 형 태양과 누나인 달
I now do see you, I can hear your tune – 나는 이제 당신이 보여요,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요
So much in love with all that I survey –가득한 사랑을 나는 찾아다녀요

 

의역하지 않고 직역했다.

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청이 있다면, 이 글을 나에게 맞게 의역해봤으면 좋겠다.

나는 세상에 가득한 그 무엇인가가 나와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도 정말 감사한 하루였다. 온타나스는 나에게 오아시스같은 하루를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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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타 평원(고원)은 카스티야 이 레온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앞으로 2주간 계속 이 구간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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