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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영하 10도의 찬 날씨에 시청 앞 농성장을 지키는 조합원들이 화롯불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얼얼해진 손을 녹이러 불 가 자리를 슬며시 비집고 들어갔더니 현재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전 한국노총 버스노조 간부에 대한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한참 열변을 토하는 조합원 한 분이  “이런 게 노총이냐”며 일갈을 했다. “다른 사업장 같았으면 해결이 되도 진즉 됐을텐데, 지금 교섭이 안되는 건 한국노총이 끼어있어서”라고 했다. 이렇게 많은 사업장이 한번에 민주노총으로 옮겨간 사례도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전국의 버스노동자들이 전북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총과 사업주로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버틸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부족한 휴식시간과 18시간 노동


물꼬가 터지니 버스를 운전하며 겪었던 이야기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이 조합원은 전일여객에서 20년동안 근무한 김성용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20년동안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시간이 부족한 것을 꼽았다. 운행 노선마다 주어진 시간이 있다고 한다. 기사들에게는 따로 쉬는 시간, 점심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안에서 알아서 생리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해 도시락 먹을 시간도 안되는 게 힘들다고 호소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으니까 도시락을 싸갖고 다녀요. 그런데 어떨 때는 그 도시락 먹을 시간도 없어.”

 

▲전일여객 조합원 김성용씨


대부분 5분 안에 식사를 해결하고 버스를 다시 운행해야 한다. 그렇게 급하게 먹으니 위장약을 달고 살 수 밖에 없다. 종점에 버스 기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한끼 식대로 3000원을 받는데 기사식당이 없으면 자신의 사비를 보태서 밥을 먹어야 한다. 150만원 남짓의 박봉에 그렇게 식사를 하는 기사들은 없다. 시간도 부족하니 아예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기사들이 많은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올 시간을 놓치는 때도 많다.
“2시간이 넘는 코스는 한 번 안 쉬고 돌면 4시간 동안 계속 타야하는 거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닐 봉지를 갖고 다니는 기사들도 있다 한다. 소변을 오래 참으면서 방광염이나 요실금을 앓는 분들도 많다.


예전에는 한 달 18일을 종일 일했었다고 한다. 하루 16시간 노동이 기본이니 8시간 노동으로 바꿔보면 한 달에 36일을 일한 셈이다. 그런데 그 때보다 요즘 12일 만근을 하는 게 더 힘들다고 한다.


“옛날에 비해 도로에 차가 늘었잖아요. 신호등도 늘었고. 그럼 운행 시간을 더 줘야 하는데 시간을 안줘요.”
낮 시간에는 운행하고 시간이 조금 남기도 하지만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에는 종점에 들렀다 바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5분, 10분 늦게 도착하면 더욱 그렇다. 조금이라도 쉬었다 출발할 것 같지만 회사에 찍히는 게 무서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김성용 조합원은 “잘 실감이 안나면 하루만 운행하는 데 같이 따라다녀보면 알아요”라고 씁쓸하게 덧붙였다.


하루 노동시간이 16시간으로 정해져 있지만 모두 17~18시간 일을 한다. 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나와야 하고, 차를 차고지에 집어넣고 가스를 충전하고 나면 12시가 된다. 가스 충전이 늦어지면 새벽 1시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사장 눈치 봐야 하는 일터


같은 방향으로 운행하는 차량이더라도 종점이 다르면 운행시간을 다르게 줘야할텐데,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코스여도 종점에 따라 쉴 수 있는 시간이 크게 다르다. 이런 걸 이용해 회사는 자기들에게 잘보인 사람은 좀 더 편한 노선에 배차를 시키고 밉보이면 힘든 노선에 배차를 시킨다고 한다.


차량 내 CCTV를 판독해 신호위반을 적발해 협박하기도 한다.
“예쁜 놈은 여러 번 걸려도 그냥 넘어가고 미운 놈은 한 번만 걸려도 불러서 해고한다고 해요. 여기에 항의하면 신호위반을 안하면 될 거 아니냐고 그러고.”


하지만 시간에 맞춰 운행을 하려다 보면 신호위반을 피할 도리가 없다. 특히 운행거리가 긴 시골 노선에서 모든 신호등을 다 지키면 운행시간이 한정없이 길어진다. 현실에 맞지 않는 운행노선을 짜놓고 노동자들을 편가르고 길들이는 데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우리 사정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남은 사람들(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비조합원)은 조합장 눈치 보지, 사장 눈치 보지.. 속으로는 아닌데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있는거죠.”


버스노동자의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것을 떨치고 나설 용기가 있었는지의 차이라고 한다. 하지만 파업이 길어지다 보니 파업참가자와 비참가자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기기도 하고 김성용 조합원도 이게 걱정이 된다.
회사 간부들이 버스를 운행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새벽에 차고지로 나가기도 한다. 근 20년 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지금 천막에서 자는 사람들, 20년 동안 무사고로 일한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한 번도 안쳐다보고 운행 격려한다고 나가는 거.. 회사가 서로 갈등 조장하고 있는 거죠. 타결되면 같이 일해야할 거 아니에요.”

 

세상을 바꾸는 파업


파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도 많다.
“예전에는 전주에도 최루탄 많이 날아다녔어요. 그래서 차 밀리고 하면 저 새끼들은 왜 저러냐고 욕 많이 했지요.”
김성용 조합원은 그 때는 당장 내 앞만 보았기 때문이라며 그렇게 나온 사람들의 고통을 몰랐었다고 술회했다. 그런데 지금 파업을 해보니까 그 사람들이 이해가 된다고 한다.
“이런 단체들,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상이 조금씩 변해왔구나... 그때 불평했던 게 지금은 죄스럽고..” 라며 멋쩍게 웃어보이면서 몇 마디를 덧붙인다. "이제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온 건지 절실히 알겠어요."  그래서 김성용 조합원은 지금 버스노동자들의 파업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파업 집회나 문화제가 있으면 되도록 가족들과 함께 나온다. 자신의 파업을 가족도 쉽게 이해해주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가족이 이해못하면 어떻게 시민들이 이해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가 벌어서 밥 먹이는 자식도 이해 못하는데 시민들이 이해 못해준다고 서운하다고 못하겠더라고..”
 

 

김성용 조합원의 소망은 소박했다. 가족들이 버스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접 보고 느낀 다음 누가 버스가 안다녀 불편하다고 타박하면 말 한 마디라도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비단 가족 뿐 아니라 이렇게 말해 줄 수 있는 지지자들이 늘어난다면 버스노동자가 인간다운 조건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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