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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5편_팜플로나에서의 휴식

대성당에 모셔진 은으로 만들어진 성모상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1.13 21:36

20230316_082231.jpg<팜플로나 카스티요광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산페르민축제 재현 동상>

 

순례길을 시작한 지 4일째 첫 큰 도시에서 쉬는 날이 도래했다.

오늘은 팜플로나 대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성당 박물관을 둘러볼 예정이다.

점심에는 맛있는 식사를 즐기며 카스티요 광장을 거닐고, 유심도 구입할 계획.

그 후 카르푸(마트)에 들러 신선한 계란과 식재료를 구매해 순례길을 떠날 준비를 하려한다.

성당 입구엔 오늘의 미사가 10시로 예정되어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카스티요 광장의 '카페 이루나'에서는 아침 커피를 즐기면서, 장 회장님과 함께 일정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루나로 향하던 도중 우연히 필리핀 순례자 벨을 다시 만났다.

벨 역시 식사를 위해 카페를 찾고 있어서 그와 함께 성당 근처의 아늑한 카페에서 아침을 나누기로 했다.

우리가 아침을 먹은 곳은 커피와 빵이 함께 나오는 저렴한 세트메뉴가 있는 곳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데 벨이 우리 몫까지 모두 계산했다.

벨과 함께한 아침, 나의 세례명인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옛날 세부에서 했던 관광도 나눴다.

벨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신독한 가톨릭라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에겐 현재 의사인 아들과 변호사인 딸이 있다.

그런데 의사인 아들에게 수차례 권했던 일이 ‘가톨릭 신부가 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신부를 탄생시키는 것이 자신이 사명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아직 독신이라고 하니, 그때부턴 나에게 신부가 되라고 권한다.

 

‘벨? 내 생각엔 당신이 신부되는 것을 도전했으면 해요. 내가 응원할께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67세의 벨이 사제가 되어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20230316_091819.jpg<순례자들이 꼭 들른다는 카페 이루나. 여기는 헤밍웨이가 즐겨찾던 카페로, 다시 태양이 떠오른다를 집필한 장소라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 이루나로 향했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다던 카페 이루나, 그 곳은 팜플로나의 중심지인 카스티요 광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곳에서, 나는 헤밍웨이가 사랑한 팜플로나를 커피 한 모금과 함께 음미하는 시간을 즐겼다.

10시가 다가오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20230316_105643.jpg<성당박물관 옆에 있는 정원에서 바라본 팜플로나 대성당. 이 정원을 통해 대성당 첨탑으로 올라갈 수 있다.>

 

빨리 팜플로나 대성당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 양식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었다.

하지만 두꺼운 벽과 거대한 기둥, 아치 형태의 구조로 판단하면 로마네스크일 것이라 생각했다.

에스테반이라는 스페인 건축가에 의해 14세기에 지어진 이 대성당은 화재로 손상되어 고딕 양식으로 보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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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당에서의 미사. 남들 모르게 미사 집전 모습을 촬영하는데 심장이 콩닥콩닥하더라.>

 

9시 40분쯤, 대성당 안으로 다시 들어가니 이미 작은 소성당에서 미사가 시작됐다.

할머니 두 분만이 오늘 미사 참례자다.

이날은 가장 젊은 보이는 신부님이 집전을 맡았다.

80세 이상으로 보이는 신부님은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했다.

성당에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와 성가가 마치 대성당을 가득 메워 퍼져나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아름다운 순간 속에서, 팜플로나 대성당은 내 마음 깊이 감동을 주고 있었다.

팜플로나 대성당은 그 안에 다양한 보물들이 숨어 있다.

20230316_100952.jpg<제대 위에 놓여 있는 성모상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다. 처음엔 성모님만 있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 아기예수가 만들어져 성모님의 품에 안겨졌다고 한다.>

 

먼저 눈의 띄는 것은 12세기에 만들어진 은으로 된 성모상이다.

나바라에서 왕이 될 때 반드시 성모상 앞에서 대관식을 거치도록 하는 전통에서 이 성모상이 큰 의미를 지닌다.

그 성모상이 팜플로나 대성당에 있는 것이다.

주변의 소성당들은 성인성녀들에게 헌정된 특별한 장소로, 특히 골룸바 성녀에게 헌정된 방이 가장 인상 깊이 남았다.

성녀 골룸바의 뼈가 들어있는 유물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골룸바 성녀를 여기서 만나는구나’

골룸바가 있는 이유는 그녀가 스페인 출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골룸바의 일화를 소개하면, 그녀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간수가 그녀를 범하려고 했단다.

그 때 곰 한 마리가 나타나 간수를 공격해 그녀를 구해주었다.

골룸바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징은 곰 또는 개가 연관돼 있다.

사람과 함께 곰과 개가 있거나, 사람이 공작의 깃털을 들고 있으면 골룸바 성상이다.

이 성당에는 바로셀로나 인근 몬세라트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있는 검은 성모상 짝퉁이 놓여 있다.

3년전 스페인 남부를 여행할 때 들렸던 모세라트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검은 성모상은 치유의 기적으로 유명한 성모상이기에 이 성당에서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대성당 중앙에 놓인 나바라왕 카롤로스 3세와 왕비 레오노르의 무덤도 이 곳에 있다.

그 위치가 성당 중앙이라 마치 팜플로나 대성당이 그들의 것인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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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이 카를로스 3세 왕과 레오노르 왕비의 무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이 무덤이 설치된 장소는 성당의 정중앙이다.>

 

과거에는 팜플로나 성당에서 면죄부를 판매했다는 사실이 눈에 띄게 부끄러웠다.

그 시절에는 돈을 많이 낸다면 천국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고 믿는 가톨릭의 신앙이 불편하기도 했다. 현재의 입장료가 5유로인데, 이를 통해 천국으로의 문이 열릴지 잠깐이나마 상념에 빠져본다.

이어서 첨탑과 박물관을 둘러봤다.

성당 건립 과정을 보여주는 장소에서 장 회장님의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서민들 피를 빨아 세운 성당이구만!"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모호하듯, 팜플로나 대성당을 보는 눈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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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의 유명 타파스바. la mandarra de la ramos라는 카페로 바로 들어가면 하몽이 늘어서 있다.>

 

우리는 성당을 둘러본 후 타파스 골목으로 가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라 만다라 데 라 라모스라는 타파스 가게에 들어가 다양한 종류의 타파스를 시켰지만, 이 스페인 전통 음식이 내 입맛을 즐겁게 하진 못했다.

 

저녁시간이 되어갈 무렵, 프랑스 유심 오렌지 유심을 구입했다.

우리 앞에 중국에서 온 청년들이 유심을 사고 있었는데, 사회주의 국가라 승낙절차가 까다로운 것 같다.

중국에서 얻어야 하는 해외 통신 승락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만 30여분이 넘어간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승락만 기다리며 컴퓨터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

답답함을 견디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더니, 내 차례가 되었다.

내 것을 처리하는 데는 시간이 빠르다. 유심을 등록 거주국의 승낙이 쉽게 열렸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 그런지 접속과 승낙이 빠르게 이뤄졌다.

‘역시 우리나라는 빨리빨리의 나라다!’

이날 내가 산 유심은 데이터 100기가에 통화무제한(국내만) 29일짜리 유심이다.

100기가는 원래 50유로인데 지금 반값 이벤트여서 25유로에 샀다.

‘진정 개이득이다’

조금 더 외국에 오래 있을것이라면 현지 유심 구입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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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 성터. 과거엔 보이는 자리에 물이 가득차 있는 해자였다고 한다. 오늘 저녁은 팜플로나에 유명하다는 패스트푸드점 KFC를 찾아 갔고, 가는 길목에 팜플로나 성터가 있다. 저녁먹기 위해 걸은 시간만 1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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