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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9편_로그로뇨 성모경당의 웅장함

침묵과 행복의 발견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1.17 18:10

20230320_100202.jpg<비아나를 지나 가는 길. 순례길을 걸으면서 중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골목길을 자주 마주친다.>

 

오늘은 로그로뇨가 목적지다.

로그로뇨는 팜플로나에 이어 두 번째 만나는 큰 도시다.

토레스 델 리오에서 로그로뇨까지의 거리는 겨우 20km에 불과하다.

비교적 짧은 거리임에도 날씨가 더워 걷기 힘든 날이다.

로그로뇨까지는 그늘은 거의 없고, 햇빛에 노출된 채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토레스 델 리오를 출발한 시간은 아침 7시.

끝없이 펼쳐지는 포도밭이 멋진 풍경이다.

와인을 즐기는 순례자들은 로그로뇨에 도착해 한 잔 하는 상상만해도 걷는 데 도움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장 회장님이 주신 양말을 신었다.

나의 순례길 준비물 중 양말은 발목 양말 3켤레였다.

걷는 일주일 동안 트레킹화 속으로 작은 돌맹이들이 들어와 벌써 양말 바닥에 구멍을 2개나 뚫어 놓았다.

장 회장님은 내 양말 상태를 보고, 새 양말을 건네주셨다.

 

순례길을 오기 전, 나는 한국에서 하루 10km 이상을 걸었다.

주말과 휴일에는 20km도 걸었기에, 걷는 것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나인데, 설마 물집이 잡힐까! 한국에서도 그렇게 걸었는데 물집은 안잡혔었지!’

물집이 잡히는 이유는 평소 걷지 않다 무리하게 걸어 발바닥에 부담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피레네 산맥도 넘었고, 일주일 넘도록 20여km를 걸어온 상태에도 물집과 관련된 문제가 없었기에 방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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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멀리 로그로뇨가 보인다. 이 곳에서 혼자 오랜시간동안 앉아 있었다. 발에 물집이 올라와 걷는데 너무 힘들다. 순례길 제1법칙 마을이 보이면 더 힘들어진다가 적용되니 더 괴롭다.>

 

로그로뇨로 향하는 길에서 결국 물집이 올라 온 것이다.

발바닥 앞쪽에 생긴 작은 물집으로, 원인은 장 회장님이 주신 등산 양말이었다.

그 양말은 내 발에 맞지 않게 큰 편이었고, 걷다 보니 앞쪽에서 양말이 겹쳐져 뭉퉁한 느낌이 들었다.

걷는 동안 계속 거슬렸고, 불편했다.

‘이러다 물집 잡히는 거 아닐까?’

걱정 속에, 쉴 때마다 신발을 벗어 양말을 다시 강하게 끌어올려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계속 조치했다.

걷기가 불편해 비아나라는 마을을 지날 때부터 장 회장님을 앞서 보냈다.

천천히 걸어 로그로뇨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로그로뇨에 들어섰을 때에, 내 걸음걸이는 이미 이상해져 있었다. 오른쪽 발을 땅에 댈 때마다 엄청난 아픔이 느껴졌다.

‘올 것이 왔구나!’

체념과 함께 이런 양말을 주신 장 회장님이 원망스러웠다.

 

생장에서 순례길을 출발하기 전 회장님과 약속한 일이 하나 있다.

그 약속은 순례길을 걷는 동안 상대방에게 탓을 돌리지 않고 걷는 것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모든 일은 내 탓이다.’ 이것이 회장님과 내가 만든 규칙이었다.

순례길을 준비하는 동안 갈등이 생기는 다양한 상황을 확인한 바 있다.

함께 온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의외로 많았다.

서로가 살아 온 환경이 다르기에 투정과 다툼이 되는 상황들이 펼쳐질 수 밖에 없다.

분쟁의 원인을 정리해 보면 ‘너 때문에’라는 말이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과 통하는 듯 했다.

 

‘우린 서로 탓하지 않기.’

 

이런 규칙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원망의 감정이 쏟구쳤다.

‘주님! 물집 생긴 것도 내 탓이잖아요. 왜 자꾸 장 회장님을 떠오르게 하세요?’

원망의 대상이 장 회장님을 넘어 생각나게 한 하느님까지 확대된다.

‘자꾸 떠오르게 한 것도 그 분 탓이 아닐텐데!’ 말이다.

 

나는 로그로뇨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가장 큰 중앙광장인 메르카도로 향했다.

메르카도 광장 성 마리아 성당 근처의 멋진 카페 발견하고, 곧장 들어가 맥주 한잔과 샌드위치를 시켰다.

‘맥주가 이렇게 맛있다니! 천상의 맛이다.’

한참을 이 카페에서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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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마리아레돈다대성당. 이 성당은 쌍둥이 탑이라 불리는 종탑이 있다. 내부에는 메인 제단화와 성모 경당, 미구엘 앙헬의 리오하의 구세주라는 제목 작품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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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금으로 장식된 제단화. 이 곳 기둥에 붙어 있는 십자가의 길 14처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다른 것보다 초라해 보이는 것도 신기할 일이다.>

 

쉬면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성 마리아 대성당(ConCatedral Santa Maria de la Redonda)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이 성당의 특징은 두 개의 첨탑 사이에 둥근 아치가 있는 것으로, 이 모양 때문에 성당 이름에 Redonda라고 붙여졌다.

마리아 대성당을 검색하면서 성당을 뜻하는 이글레시아(Iglesia)와 주교좌성당을 뜻하는 카테드랄(Catedral)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이 성당이 카테드랄이면서도 앞에 콘(Con-함께)이 들어간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의 예를 들어보자면, 전주에 있는 중앙성당은 전주교구 주교좌성당이다. 반면에 서울에 있는 명동성당은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따라서 전주교구 주교는 중앙성당에 대한 관할권을 가지고, 명동성당은 서울대교구 주교가 관할권을 갖는다.

만일, 전주교구 주교가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서울대교구 주교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가톨릭교회의 복잡한 관할 문제를 성 마리아 대성당에서는 두 교구가 함께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성 마리아 대성당은 팜플로나-투델라 대교구와 칼라오라-칼사다-로그로뇨 교구가 함께 관할권을 가지고 있었다.

 

마리아 대성당은 3개의 경당이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경당은 성모경당(프루덴시오)이다.

성 푸루덴시오(축일 4월 28일)의 유해가 있는 경당이기도 하다.

그는 아르멘시아라는 곳에서 태어나 은둔생활을 하다 서품을 받고, 아라곤 지방 타라조나 주교가 됐다고 한다.

현재 타라조나 교구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스페인에는 총 70개의 교구가 있다.

타라조나 교구 위치를 살펴보니 성 마리아 대성당의 관할지역이 아니었다. 이웃에 있는 교구다.

관할 교구가 아닌 타 교구의 수호성인이 여기에 잠들어 있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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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경당. 어떤 이는 평화의성모 예배당이라고 하는데, 나는 왠지 푸루덴시오 성인 유해가 있는 방이기에 푸루덴시오방이 더 어울릴듯하다.>

 

성 마리아대성당 내부 경당에 들어가기 전에 엄청난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순례자들이 이 성당에 가게 된다면 꼭 그 문구를 확인했으면 한다.

‘침묵으로 들어와라, 행복한 이 땅으로, 천국으로 바뀔지니!’

경당에 발을 들였을 때, 마치 바티칸 박물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돔에 그려진 천정화부터, 성령을 상징하는 빛이 들어오는 장미창, 그리고 그 이래 놓인 푸르덴시오 유해까지 내 눈을 압도했다.

 

경당에서 기도 중에 장 회장님으로부터 카카오 메시지가 왔다.

광주에서 온 김예솔씨가 산티아고 교구에서 운영하는 기부제 알베르게가 열려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나는 즉시 장 회장님을 만나, 오늘의 특별한 경험을 가져 올 알베르게로 향했다.

‘순례자 산티아고 교구 알베르게.’

산티아고 교구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기부제다.(산티아고 대교구에 소속 되어 있는 것도 신기하다. 여기는 로그로뇨 교구의 관할 지역이다. 어쩌면 이름에 억매여 잘못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기부제는 내가 원하는 만큼 내고 오는 비용을 내는 곳이다.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부제 알베르게에서는 특별 프로그램이 운영되지만, 이조차 순수하게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왔으니, 이곳의 규율을 따르기로 하고 특별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저녁 7시 식사와 공동기도.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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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마트로 가던 도중 만난 순례자상. 많은 순례자들이 손을 많이 잡아서 번질번질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아시아마트를 가서 라면과 김치를 사는 것이다.

숙소에서 마트까지는 1시간 거리였다.

이미 물집이 잡힌 발로 절뚝이며 천천히 걸었다.

온 몸에 고통이 올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라면.

‘라면은 천상의 음식일까’

신라면과 볶은김치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즐거웠다. 로그로뇨 시내 구경도 동시에 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내일 아침엔 든든하게 먹고 출발해야지!'

 

저녁식사 시간이 돼, 2층의 응접실로 향했다.

저녁식사를 하기전 우리에게 순례길과 관련된 노래를 가르쳐준다.

나이 지긋한 남자 관리자 분께서 의미를 하나씩 설명해 주시는데, 영어를 잘 하지 나에게는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대충 내용을 조합해보면 ‘순례길을 걷게 되면 받게 되는 은총(선물)’을 얘기같다.

노래의 내용도 비슷한 의미다.

‘Keep Going’-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걸어라 이 말 뜻이리라.

이 말을 자주, 가장 많이 했다.

노래가 끝나면 모두 식사를 시작하고, 후엔 설거지도 함께 한다.

오늘 저녁 식사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15명가량이었다. 대부분은 20대 유럽 청년들이다.

내 옆 자리는 마드리드에서 온 부부였는데, 그들은 2주간 시간을 내서 레온까지만 걸을 계획이라고 한다.

오늘 주 메뉴는 마카로니 파스타였다.

가정식파스타, 맛있었다.

20230320_170334.jpg<산티아고성당(parroquia de Santiago el Real)으로 과거에는 시의회가 이 성당에서 열렸고, 의회문서도 이 성당에서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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