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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현대차 파업, 이제 공은 사쪽으로

합동취재팀( 1) 2010.11.28 21:12 추천:1

울산 현대자동차 1공장 비정규직 점거 농성장. 이곳을 점거한 비정규 노동자들은 26일과 27일 종일 각 조별로 격론을 벌였다. 울산 비정규직지회 쟁의대책위원회도 48시간 내내 격론이 이어졌다. 그리고 27일 밤 11시 40분께 조합원들은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회사 쪽과 교섭을 진행하기 위해 금속노조와 현대차 정규직 지부, 울산, 아산, 전주 비정규직 3지회 등 3주체가 만든 의견 안에 대한 입장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공장안에서 점거를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안을 두고 폐기, 찬성, 무조건 지도부 결정에 따르기 등의 입장으로 갈렸지만 언제나 결론은 정규직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였다.



3주체 의견접근 안은 교섭의제를 무엇으로 할지가 논란이었다. 한마디로 현대차 정규직 지부와 함께하는 특별 교섭요구안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견 접근 안은 농성장 비정규직들에게 논의가 넘어오면 계속 난항에 빠졌다. 이렇게 회사와 정식 교섭도 아닌 노조 3주체의 의견 접근조차 난항에 빠지고 앞으로 교섭도 방향이 잘 안 보이는 것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정서와 현재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관계가 깊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수 년간 현대차 사쪽의 노무관리와 노조탄압을 봐 왔고 직접 겪기도 했다. 그간 비정규직 지회를 이끌어온 노조 집행부들은 현대차에 목소리를 낼 때마다 갖은 탄압으로 해고 되고 탄압을 받아 왔다. 7월 22일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이 나자 조합원들의 수가 늘어나자 사쪽의 탄압은 더욱 거셌다.


이렇게 현대차를 통해 들어오는 직간접적인 노무관리와 현장 통제를 익히 알고 있는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카드를 놓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비정규직들이 갖고 있는 유일한 카드는 점거농성이다. 이로 인해 교섭국면에서 조합원들의 현대차 원청에 대한 신뢰 문제는 하나하나 확답을 받고 가지 않으면 언제든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본능이 깔려 있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는 조합원 4만 5천명의 탄탄한 조직력과 안정적인 단체협약을 바탕으로 한 힘으로 회사 쪽과 협상이 풀리지 않아도 이를 뚫고 나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비정규직은 조그만 파열구라도 생기면 복구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비정규직에 대한 현장 탄압과 강도 높은 노무관리로 인해 비정규직들은 사쪽을 전혀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5일 기습 점거 사태의 발단이 된 동성기업 문제도 회사 쪽이 강력한 물리력을 동원하면서 분노가 폭발해 사태가 더욱 커졌다.


이상수 울산 비정규직 지회장은 "회사가 05-06년도에 비정규직에 한 일이 있어 신뢰를 못한다. 당시 대화를 전제로 파업과 농성을 풀었지만 그 이후 회사가 칼을 들이댔다. 지도부를 구속하고 고소 고발을 철회하지 않았다. 조합원을 징계하고 노조를 박살냈다. 회사를 믿지 못하는 것은 회사의 과오"라고 교섭의 전제조건으로 농성을 풀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서 비정규직 쟁의대책위는 3주체 회의에 참가하기 전인 27일 새벽 1시 30분까지 쟁의대책위원회 회의를 통해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 있는 합의 없이 농성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합의안에 문구로 요구했다. 이런 결정 사항을 바탕으로 이상수 비정규직 지회장은 이날 새벽 정규직 지부 상무집행위원들의 호위를 받아 3주체 회의장으로 향했다.


지회 쟁대위는 여기에 정규직과의 연대가 이번 투쟁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제라는 것을 확인하고 3주체 합의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는 전제만 보장된다면 정규직과 연대하기 위해 교섭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쟁대위가 전제로 한 “성과있는 합의” 부분은 쟁대위가 조합원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안이라는 판단 하에 쟁대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런 비정규직 지회의 안을 두고 3주체는 상당한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고 최종 의견 안에선 전제로 삼은 ‘성과있는 합의’ 부분은 빠졌다.


지회가 ‘성과있는 합의’와 ‘농성해제’ 문제의 연동을 문구에 요구한 것은 비정규직 지회 농성의 절실함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방어적인 문구가 없을 경우 교섭이 잘 안되고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때 회사의 악선전을 비정규직 노조가 적절하게 방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이는 비정규직 노조가 농성이라는 유일한 대응 방식밖에 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발동한 자기방어 체계다. 비정규직 노조에 방어적 문구가 없는 상황에서 예상되는 회사의 악선전은 ‘비정규직이 고집을 부려 교섭을 깼다’는 책임론으로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임론이 휴업조치와 병행되면 현재까지 우호적인 정규직 조합원들의 태도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섭이 깨지더라도 농성을 유지할 명분인 문구가 빠진 것을 두고 조합원들은 많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현대차 정규직 지부는 이런 전제가 교섭요구안에 들어갈 경우 교섭 자체가 열리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해 문구화 하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쟁대위는 문구화 대신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에 ‘성과있는 합의’에 대한 지지, 엄호, 연대 의사를 요청하고 이를 기자회견과 성명서로 나타내는 것으로 정리했다.

 


정규직화냐, 불법파견 교섭대책이냐


이번 3주체 안의 또 다른 핵심 논란은 사쪽과의 교섭이 ‘불법파견 정규직화’냐 ‘불법파견 교섭대책 마련’이냐 는데 있다. 비정규직지회는 장시간에 걸쳐 금속노조, 정규직 지부와 논의를 했지만 문구상으론 ‘불법파견 교섭대책 마련’으로 나왔다. 이 문구가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3자 합의 내용이 회사에 발송할 교섭 요구안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교섭요구안이 불법파견 교섭대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법파견 교섭대책은 엄밀히 말하면 문구상 정규직화 교섭 요구는 아니다. 불법파견과 관련한 교섭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합의하자는 것으로 읽힌다. 문구가 읽히는 대로 합의 안이 나와도 조합원들의 주요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문구상의 미묘함을 느낀 조합원들은 1차 3주체 합의안이 이번 사태를 촉발한 ‘동성기업 폐업 사태 해결’로만 국한되는 교섭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교섭이 열렸다가 정규직화 문제에 대해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농성을 해제 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다.


비정규직 지회가 9월 29일 결정한 8대 교섭 요구안은 정규직화를 위한 요구안이이다. 이번 파업도 이 8대 교섭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한 파업임을 지회는 그 동안 누누이 강조해 왔다. 또 2차 3주체 회의에서도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 있는 합의 없이 농성을 중단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정하고 문구에 넣을 것을 요구했지만 끝내 관철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는 절박했다. 하청업체 폐업이 발단이 된 농성이지만 어차피 이런 수준의 파업을 하기 위해 준비해왔다. 이번 파업과 농성으로 정규직화 교섭을 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판단이 주를 이룬다. 이런 조합원들의 판단은 분임토의 등에서 터져 나왔다.


농성장의 한 조합원은 분임토의 중에 “이런 정도의 교섭의제면 우리가 농성을 시작한지 3-4일 쯤에 나왔어야 할 의제다. 지금 13일 동안 양말하나 팬티하나로 버텨 온 게 이정도 교섭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다른 조합원은 “이번 국면에서 정규직화 교섭을 못하면 다시는 정규직화 교섭을 못한다. 손해배상이나 피해최소화 등에 합의해도 형사는 그대로 간다. 이런 낮은 수준의 교섭을 할 바엔 차라리 경찰이 들어올 때 까지 버티자”고 강조했다. 그는 “경찰이 들어와 하루만 버텨내면 여론은 우리에게 돌아 선다”며 “교섭에 들어가는 것은 요구안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인데 이번 요구안은 정규직화 요구안이 아니라 면책, 손해배상 교섭 요구안이다. 이미 2006년에 원청과 교섭을 해 봤기 때문에 원청과 첫 교섭을 해본다는 의미조차도 없다“며 이번 2차 3주체 의견 접근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이런 조합원들의 우려와 반발을 읽은 쟁대위는 일단 내부 논쟁을 불식시키고 쟁대위 안을 확정지었다. 이상수 비정규직 지회장은 “이번 3주체 합의는 정규직화 교섭의 과정임을 분명히 밝히는 성과 있는 합의가 없으면 농성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쟁대위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라며 기자회견 등을 통해 쟁대위의 입장을 사회적으로 여론화하기로 결론 냈다.

 


공은 현대차 사쪽으로, 교섭 거부 부담스러울 듯


이렇게 울산 공장 농성단이 정규직 지부의 중재로 입장을 정리하면서 현대차 사쪽과 금속노조, 현대자 지부, 비정규직 지회의 교섭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그러나 암초는 여전히 있다. 일단 사쪽이 계속 비정규직 지회는 하청업체 노조라 협상에 나설 수 없다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차 정규직 지부가 무려 62시간에 걸쳐 비정규직을 설득해 교섭요구안을 만들었기 때문에 정규직 지부의 노력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회사가 교섭요청을 거부하면 오히려 비정규직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 지회도 교섭요구안의 문구가 100%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정규직 지부의 안을 받아들인 것은 물리적 충돌이 아닌 대화와 교섭을 통한 해결을 하자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는 정규직 조합원들과의 연대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원칙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사쪽이 교섭을 거부할 경우 정규직 조합원들의 여론은 사쪽에 불리해 진다.


이번 농성 투쟁은 98년 현대차 정규직 정리해고 분쇄 투쟁 이후 최초의 비정규직 공장 점거다. 벌써 신형 액센트 생산 라인은 14일째 멈춰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규직 조합원들이 불만보다는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보내고 있는 것도 사쪽엔 계속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규직 노조도 계속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회사가 이를 거부할 경우 더 강한 연대 투쟁의 명분이 생기게 된다. (울산=미디어충청,울산노동뉴스,참세상 합동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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